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 청천 Sep 21. 2022

집 꾸미기 & 집들이 : 밀당

20O年07月










벼르고 있던 집들이를 해치웠다. 결혼하고 4개월 만에 집들이는 늦었다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 정도면 적당한 시기였다. 비워진 집에 가구를 다 들여놓고, 결혼식 후에 갖추어진 신혼집에서 '이제 시작!' 할 수 있다면 나이스 타이밍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동거를 하다가 정해진 결혼식 날에 예식을 할 수도 있고, 결혼식 후에도 각자의 집에 살다가 신혼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결혼식 후에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결제하면서 집을 채웠다. 우리는 몇 주나 바닥에서 음식을 먹다가 식탁을 샀다. 눕고 앉는 모든 곳은 침대였다가, 소파도 사고 카펫도 샀다. 탁자, 책장, 베드 테이블, TV 선반을 구매하고 화분이 무거운 식물을 들이기도 했다. 월세입자로서, 샹들리에로 교체하는 것과 파이프 전등을 사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짙은 그린색으로 한쪽 벽에 셀프 페인트 칠은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다음에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합리적인 선에서 취향을 반영하여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 물건을 구매할 때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이 집의 결정권자가 두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이는 고동색을 보고 고급스럽다고 생각했고 나는 칙칙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각자 다르게 느낀다. 정말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성격이 어떻든 어떤 사람이든, 적어도 20년 넘게, 하루에 수번의 선택을 하며 산다. 선택을 했다는 것은 기준이 있다는 뜻이고 그 기준은 취향을 반영한다.


몇 번 서로가 제시한 물건이 서로에게 거부를 당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서 몇 가지는 각자 구매해 보기도 했다. 가령 나는 조명에 투자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조명은 비싸고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이상한 조명을 들일 바에 조명을 포기했는데, 그이는 자질구레한 플라스틱 미니 조명 몇 개를 골라왔다. 침대 옆 테이블도 고르다가 포기하고 각자 구매했더니 아주 제각각 멋도 없고 그렇다고 통일성도 없고 만족도도 떨어졌다. 


그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인테리어에 관한 의사를 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눈치챘구나. 고마워. 내가 주도권을 잡았고 그때부터 일은 진행되었다.






인테리어의 90%가 채워졌을 때 시부모님과 그이의 외할머니인 왕할머니를 모셨다. 토요일에는 장을 봤는데 한 꼬집 정도의 소량만 쓸 감자 전분이나 한 톨 쓸 생강까지 챙겼다. 내가 한 요리는 된장찌개와 고추잡채였고 그이는 곁들여 먹을 카레소스를 만들었다. 오리고기와 양념 주꾸미, 채소를 사서 조리하고 기타 반찬을 내놓았다. 나의 요리는 편차가 들쑥날쑥인데 다행히도 먹을만한 음식이 나왔다.


어른들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과일에 커피까지 마시고 거실에 누워 아버님은 한숨 주무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맛있게 먹어주시고 잘 살 것이라는 덕담도 감사했지만, 특히 감사했던 것은 12시부터 3시까지 있다 가겠다며 미리 시간을 제시해주시는 어머님의 배려에 감사했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집들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이의 형 부부와 두 명의 조카가 왔다. 우리는 호탕하고 유쾌하게 고량주를 들이켰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1시부터 점심을 먹기 시작하여 지금은 저녁 10시 30분이다. 어머님이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신혼여행지 정하기 : 로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