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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e이다인이효진 Nov 27. 2020

베이비수트를 잘 입히는 건 첫 단추가 다 한다

성공하는 육아의 정답은 ‘처음’에 있다

기대했던, 오랜만에 신랑과 함께 졸린 눈 비비며 아이가 잠들길 기다려 보았던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8회만에 종영되었다. 과장된 코미디를 싫어하는 나 조차도 눈물삼키며 보게 한 작품이었다. 출산이 임박한 나에게 지난 8개월보다 긴 9개월째 한 달은 너무도 길었지만 이 드라마를 기다리고 울고 웃으며 보냈고 나는 이제 막달에 접어들었다. 수술을 예정하고 있으니 막달이지만 출산까지는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엄지원’ 역에 홀딱 몰입해서,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여러가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 육아기에 비슷한 또래이며 유사한 상황에서 첫 아이를 낳고 일과 아이 사이에서 나는 못난 엄마라고 자책하며, 괴로워 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큰 아이가 태어난지 1년 반, 나는 어느덧 다 잊어버린 것처럼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막상 출산을 준비하면서 보니 그 사이에 바뀐 트랜드도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출산 가방에는 대체 무엇을 넣어야 하는 것인지, 처음에 젖병을 몇 개나 준비했었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또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의지하게 되리라. 약은 약사에게 산후조리는 산후조리원에서 아이의 첫 케어는 도와주실 이모님께. 참 무책임한 엄마 같다. 거기에다 얼마 전에 방송된 조리원에서 기본으로 나눠주던 신생아 젖병의 미세 플라스틱 문제로 나는 고심 끝에 유리 젖병을 구입하기로 하고 나름 시장 조사를 열심히 했는데 막상 주문하려고 하니 그 젖병이 품절이다. 곧이어 다른 유리 젖병들도 하나둘씩 국내 전면 품절 상태가 되었다. 역시 나는 정보력도 판단력도 없는 꼬리칸 엄마, 저 잘난 줄만 아는 어리석은, 엄마 자격 없는 엄마다. 큰 아이와 남편을 두고 약 3주나 집을 비울 무책임한 죄인이다.

출산을 앞두고는 뭐든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간 미뤄왔던 큰 아이 성장 앨범도 만들어 줄 겸, 이것저것 그 때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클라우드 앨범을 뒤지다보니, 엄마가 처음이라서 허둥댔던 1년 반 전의 내 모습이 하나둘 생각난다.

아기들 옷 중에 유난히 단추가 많은 옷들이 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아기가 감기가 들면 안 되니까 목욕 후에는 얼른 옷을 입히고 싶은데, 아기 옷의 단추는 왜이리 자그마한지, 하나를 잠그는데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다 했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보면 옷은 비뚤게 입혀져 있고 단추와 구멍이 짝이 안 맞다. 아뿔싸, 또 잘못 입혔다. 그것도 첫 단추부터. 초보 엄마는 오늘도 자책모드가 된다. 사실 첫 단추만 잘 끼우면 줄줄이 하나씩 순서대로 끼우면 되니 별 문제 될 게 없었을 텐데 말이다.


10년 넘게 영어 교육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부모 상담과 행동 수정을 했다. 나이에 비해 오래되고 다양한 현장 경험과 학교에서 책에서 배운 이론을 연결해 나름의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진행하니 더러 입소문이 났다. 3살 무렵 말문을 뗐다가 5살 무렵 입을 닫고 몸으로 말하게 된 아이부터, 자기 주도 학습이 전혀 되지 않거나 영어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 비뚤게 행동하는 초중등 아이까지, 엄마들과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이 쌓여 갔다.

이 경험이 내가 진행했던 많은 미래 교육-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미래에 필요한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키려는 교육-에 있어서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코딩 교육 몇 살부터 해야 해요?
로봇 교육은 초등학생부터인가요?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이런 ‘시점’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질문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한다. 매체를 활용한 미래 교육이 문제해결력 향상, 나아가서는 궁극의 메타인지(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의 습득까지를 목표로 할 때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이 교육의 과정은 나선형으로 단계적으로 잘 조직되는 것이 맞다. 사고력 교육에서 보는 사고 능력의 발달 단계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어느 중간에서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한 그것이다.

초등학생은 되어야 코딩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코딩 교육을 기술 교육이나 진로 교육으로 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보편 교육에서 교육과정의 필수요소로 볼 때의 코딩 교육은 코딩을 수단으로 하는 사고력 향상 교육에 지나지 않다. 사고력 향상 교육의 관점에서 코딩 교육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초등학생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이 앞단계의 사고력 교육이 선행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다.

내 결론은 시기에 맞는 교육 방법이 서로 다를 뿐 유아는 유아에게 초등은 초등에게 중등은 중등에게 맞는 교육 방법이 서로 다를 뿐 언제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점이다. 굳이 시점을 따진다면, 아이가 발달적 사고 기능을 발휘하는 시기에 인위적인 과제를 통한 개입-교육-이 사고력 향상에 도움을 주며, 그 이번의 기초 사고 기능의 단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 아이의 사고를 확장시켜 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양육- 수준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예를 들어 코딩 교육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리고 그들에게 교육을 해 보려는 성인과, 치매 예방을 위한 사고력 교육을 받으려는 실버 세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사고력 교육으로서의 코딩 교육을 7-8년 간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해 본 결과 각각의 시기에 맞는 사고력 고육이 있다는 점이다. 아니, 시작 시점에 대해 묻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할 정도로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시기에 맞는 교육이 있다니?!




이것은 비단 인위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서의 코딩 교육이나 로봇 교육만을 대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학은 발달 심리를 배우는 학문이다. 발달 심리학을 응용하여 다양한 분야에 적용, 응용하는 학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의(아이만이 아니다) 발달 수준과 과업 성취도에 맞추어 필요한 환경 설정과 개입을 여러 분야에서 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그러므로 발달 심리, 임상심리, 교육학, 창의성, 도서와 매체를 연관지어 보려는 전공들이 있다. 이 아동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고력의 발달 수준에 맞추어 각 단계에서 양육자나 교육자가 인생 선배로서 해주어야 할 촉진이 있다. 즉, 언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늘 진행되어야 하며 발달에 맞는 서로 다른 또다른 ‘수준’-양육자와 교육자에게 기대되는-의 양육적 개입과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개념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그에 적합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다음 수준의 코딩 교육과 같은 인위적인 사고력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할 때 시작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해 진다는 것이다. 이미 굳어진 굳은 살을 벗겨내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단계에서 우리 아이는 안 되나봐,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유아 영어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딜레마로 생각하고 있는 ‘조기영어교육의 실효성’ 문제가 있다. 여기에도 유사한 상황이 적용되는데. 언제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좋으냐, 라는 질문에 나는 또 질문이 잘못 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많은 이들이 조기 영어 교육의 폐해에 대해 짚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전체 조기 영어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 교육을 어떤 아이에게 어떻게 진행했느냐의 문제에서 오는 폐해의 확률이 크다. 어떻게보다는 언제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늘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교육시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언어는 원래 습득되는 것이 기본이며 모국어의 경우에는 아마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제2국어나 외국어를 바라볼 때, 그것이 제2국어나 외국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관념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정했을 뿐 큰 범주에서 다른 언어도 언어는 언어다. 언어는 언어가 습득되는 시기에는 환경을 잘 만들어 주고 약간의 도움만 근접발달영역 안에서 줄 수 있다면 탄생 몇 개월 몇 일이라고 정해지는 것은 아니나 발달적 관점에서 상호 유사한 시기에 ‘습득’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다. 이것이 이중, 삼중-요즘엔 중국어까지 3종 세트로 다가가는 교육기관도 많으니- 언어로 접근되려면 그에 맞는 방법을 연구해서 -예를 들어 비교 언어 교수법과 같은-적용하면 될 일이다. 방법적인 측면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이 언어의 습득기에 모국어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나서,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나면 그 다음에 -제대로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습득한 모국어를 수단으로 해서 다른 언어는 학습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습득을 통해 둘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려면 교수자나 양육자에게 다양한 도전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습득하려는 어린이 학습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과정이 될 것이다. 반면, 학습을 통해 추가적으로 다른 언어를 교육시키고자 한다면, 교수자와 양육자는 수단으로 활용할 모국어를 이미 습득하였으므로 교육을 제공하기 한결 수월할 수는 있겠으나, 어린이 학습자는 습득이 아닌 학습이라는 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언어를 ‘공부’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뿐이다. 교육 서비스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서비스의 측면에서 당연한 논리다. 그리고 기질이나 성향, 그리고 교육 방법 등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영어 교육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성인이 되어서 새로운 외국어를 학습하려는 경우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 교육 방법 중에 소위 영어를 영어로 배운다는 것은, 가능하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모국어의 틀에서 벗어나 습득의 환경을 재현해 주려는 시도가 될 것이다.

안 되는 것도 잘못된 것도 없다. 다만, 그 때 그 때 적합한 ‘어떻게’의 방법적 논리가 남을 뿐이다. 다른 관점에서의 ‘시점’에 관한 접근이다.


유아영어교육의 학기말 평가시 내가 작성한 평가표에서 특히 발음에 대한 언급이 좀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발음이 정확하다, 그렇지 않다의 언급만으로 유아의 언어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구강 구조의 발달 수준도 고려할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서너살 아이에게 영어의 발음이 잘 전달 되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 발음을 명확히 구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시기에 잘 ‘습득’한 아이라면 구강 구조가 잘 발달 되어 조음 기관의 운용이 원활해 지는 시기에 좋은 발음을 구사할 확율은 훨씬 더 높아진다. 그 시기를 지나 모국어에만 특화하여 발음을 습득한 아이에게, 외국어가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은 아닌 상황에서 잘못된 외국어 발음 노출-이를 테면 발음이 좋지 못한 성인 발음에의 노출-이나 전혀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7,8세가 되고 나면 ‘학습’을 통해 발음을 익혀야 하니 좋은 교수자와 교수방법이 있다면 안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굳어진 조음 기관 활용 방법을 새롭게 익혀 나가는 데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3,4세 유아의 영어 발음을 자꾸 듣다보면 약간의 개입 만으로도 7,8세 때 발음이 유창해 질 수 있겠다는 예측이 가능한 때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평가서에 기입해 넣었다.

 


코딩 교육과 사고력 교육 이야기로 돌아가서, 프로젝트 교육까지 받는 6,7세, 어느 정도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경험이 부족했던 아이들에게 코딩이 어렵다고 해서 5,6학년이 되어서야 사고력 교육을 코딩 교육으로 진행하려고 하니 논리적 문제해결력 향상을 교육 목표로 달성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초반에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학습자를 몰입시켜 끌어 앉히고, 내적 동기가 유발되어 스스로 학습하도록 유도하기까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을 기획하려는 사람들, 교육을 구성하려는 교육기관장들이 ‘언제’ 코딩 교육을 시작하냐고 물어오면 유아에게 맞는 교수 방법을 활용해서 할 수 있다면 6-7세가 적합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답의 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육자가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첫 만남 첫 인상에서 좌우된다고. 첫 만남이 잘못되었다고 모두 망쳐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첫 만남이 이후의 더 적합한 방법들을 좌지우지 할 수는 있다고. 지난 번 글에서, 나는 큰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태어난 이후에 관심을 보이는 어느 시점부터 언제든지 내주었다고 이야기했었다. 내 경우에 휴대전화에 대한 노출은 절대적으로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매체 활용에 최적화된 사람이었고, 늘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휴대전화를 오디오 플레이어 삼아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 주었으며, 짬짬이 나름의 짧은 육아일기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산후 우울을 막기 위해 틈나는 대로 휴대전화로 드라마와 다큐, e-book 등을 보았으며 심지어 온라인 회의까지도 진행했다. '산후조리원' 드라마 마지막 편에서 조리원 원장은 퇴소하는 주인공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예요. 아이와 함께 행복한 엄마지.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닐 수 있다. 한동안 여기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내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든 그 무엇을 위해서든 최근에 와서는 함께 행복한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육아템도 사용하고 '때문에'라는 단어로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애쓰는 육아를 실천하려고 한다. 누구나 휴대전화 없이는 못 살 정도로 시대도 바뀌었고, 나는 그 중에서도 컴맹이지만 얼리어댑터로 불리우는 - 여기에 관해서는 차차 풀어나가도록 해 보자. - 나름 미디어 교육을 연구해 온지 10년이 넘는 사람이니 나에게서 휴대전화를 떼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이에게, 휴대전화에 대한 노출을 차단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택한 것은 첫 단추이다. 첫 만남을 잘 성사시켜보자. 그래서 아이에게 안 돼, 이리 주세요, 와 같은 부정적 언어와 태도로 첫 만남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아이의 기초 사고 기능의 발달에 도움이 되도록 휴대전화에 대한 탐색을 원할 때 휴대전화를 거부감없이 내주었다. 사실 아기의 집중 시간은 길지 않다. 원하는 탐색을 마치고 나면 휴대전화를 자연스럽게 내려 놓았고, 나는 일부러 휴대 전화의 잠금을 풀어 주거나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시연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휴대전화를 통해 콘텐츠를 경험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도전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물론 나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휴대전화에 있어서만큼은 그 첫 단추를 잘 채웠노라고, 그래서 잠근 단추를 다시 빼고 처음부터 다시 채우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플래쉬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교육용 콘텐츠 회사였던, 동영상 기획에도 경험이 오랜 나도 가능하면 내 아이에게 동영상을 늦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제2양육자로서의 조부모님과 이른 사회 생활로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에 노출되면서 이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빔 프로젝터로 - 우리집 거실에는 TV 없다. - 대형 화면에서 노래 영상을 가끔 틀어주고 이 역시도 지정되어 있는 자기 의자에 앉아서만 보는 것으로 약속하고 보여주고 있다. 휴대전화로는 보여주지 않고 식사 시간에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미디어 중독 수준의 우리 부부도 - 차차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우리 신랑은 로봇 엔지니어다. - 식사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어쨌든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도 첫 단추 원리는 적용될 것이다.

휴대전화 뿐만이 아니다. 사운드북과 사운드펜도 그랬고, 디지털 피아노와 장난감 기차도 그랬다. 아직 노출하 기 좋은 방법을 못 찾은 내 바이올린은 케이스 안에서 잠자고 있다. 두어 번 오케스트라 연습에 아이를 데리고 출동해서 꺼낸 적은 있지만, 그건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고. 나는 아직 바이올린과 아이의 첫 만남을 거부감없이 아름답게 해낼 방법을 찾지 못해서 태교로 뱃속 아이와 함께 오케스트라 공연 무대에도 섰지만 아이 앞에서 바이올린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내 양육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철칙은 가능하면 좋은 첫 만남이다. 노출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면, 첫 만남을 잘 하게 해 주자는 생각이다. 많은 아이들을 행동 수정하면서 어렵고 아쉬웠던 것도 다 첫 단추에 대한 미련이다. 첫 만남, 첫 시도, 첫 경험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와 아이와 웃고 울면서 행동 수정했던 마음 아픈 시간들을 경험했던 나는, 우리가 매사에 처음을 아쉬워 하며,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시간들을 경험했던 나는 아이에게 되도록이면 좋은 첫 만남을 선사하고 싶다. 이것은 양육자로서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하는 육아의 정답은 결국 '처음'에 있다. 여기서의 성공은, 행복한 육아, 아이와의 행복한 생활이라고 할 때 말이다. 우리는 늘 후회 속에 인생을 살아간다. 물론 거기서 얻는 깨달음이 많지만, 그리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그 이후에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지만, 아이는 실험 도구가 아니니까. 물론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아이에게 모든 '첫 만남'을 거부감 없이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측면이든, 사고력의 측면이든, 생활적인 측면이든, 미디어 오남용에 관한 것이든, 그 첫 단추를 잘 끼운다면 단추를 다시 모두 풀고 처음부터 끼우는 수고는 필요없을 것이다.

아직 할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디지털 육아, 더 크게는 전반적인 육아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참 많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여기지 두 편의 글에서 당신과 나의 첫 만남이 긍정적이었다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 육아로 지친 그대와 나의 아름다운 첫 만남을 축하하며, 그대와 나의 앞으로 이어질 성공적인 육아기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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