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 유아기~7 years
행복 1편 Seven!
금북 선교원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7살 소녀는 졸업식에서
한글을 잘 읽는단 이유로 답사를 낭독하게 되었다.
답사를 하는 똘똘해 보이는 꼬마의 옆모습을 찍은
그 빛바랜 사진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정엄마가
거울에 꽂아놓고 흐뭇히 보시는
엄마의 작은 가보들 중의 하나이다.
어린 시절
행복 게이지를
튼튼히 계속 위로위로 쌓아 올려준 뒷받침이 된
배경~
1980~83년....
동네 구석구석을 막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놀던 철없던
동네 어린아이들 속 한 명이었던 나... 그리고 3살 어린 남동생
( 어릴 땐 참 많이 싸웠고 참 많이 친했다. )
80'년대 아날로그 필름 화면이 느껴지는
감성풍의 공기 내음
( 그냥 지금보다 못살던 시절 허름한
약간 돈 없는 분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살던
공동주택 최대층 2층 < 지금의 공동주택 생각하면 난감 >
동네임 ㅋㅋ)
그 당시 2-5살 이런 어린 영아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같은 그런 애기들 학교는 전혀 없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은 부잣집에 들어갈 정도였고,
안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 있던
공용 쓰레기장에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뛰어놀고
그러다 어떤 아이는 매트리스에서 넘어져
튀어나온 철사에 찔려 이마 위에 피를 줄줄 흘리며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
진짜로 위이이이이잉
모기소리를 흉내 내듯 울어대는
리얼똥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던 ( 이상하게 또렷이 기억남)
그런 자연친화적인 공동 쓰레기통 마당에서
동네 친구& 동생들과
꾸질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때를 묻히며
매우 아주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던
최고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논 기억밖에 안 난다. 솔직히 ㅋㅋ
그 당시 방문판매를 통해
엄마가 영어교재를 주문해 주셔서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공부하고
엄마가 책도 매일 읽어주셨는데
가장 큰 기억은 재미있게 놀았던 것이다.
매일 쉬지 않고 주말도 거의 없이
친구들과 맘껏 나가서 놀았던
그 오래전 기억은
이젠 중년이 되어버린
침착함 속에서도
급 흥분해 휘파람을 부를 정도의 신남이었다.
7살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난 동네 친구들과 똥파리를 친구 삼아
망가진 침대 매트리스를 아지트로 삼아
"이보다 더 이상 행복할 순 없다 "
행복하디 행복한 유아&유치 시절을 보냈다.
내가 살던 주택은 1-2층으로 길게 쭉 이루어진 공동주택이었다.
지금의 아파트랑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빌라도 아파트도 아닌
뭔가 작은 단독주택들을 작게 만들어 모아놓았다고 해야 할까?
수도랑 화장실이 각 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중에 비싸고 좋은 집에 속하는 몇몇 집들만이
수도가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그 공동주택 중에 아무리 크고 넓고 비싼
그 누구의 집에도 없었다.
우리 집에는 수도가 있었고 심지어 자가였다.
여기도 자가 월세 전세가 다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난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우리 집은 큰 방 1개 작은 방 1개에 수도도 부엌도 잘 갖춰진 1층에 위치도 좋은
그 공동주택 중에선 상급인 집이었다.
알뜰하고 살뜰하신 부모님은 우리 4 식구는 한방을 사용하고,
뒤쪽에 심지어 계단면적이 있어서 더 낮고 작은방은
세를 놓아서 돈을 불리실 정도로
정말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일명 공동화장실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 왕 공포호러... 밤에는 무서워서 가기조차 힘들었던 곳 )
이 2층 구석에 100프로 "푸세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 1층까지 쭈우욱 깊게 파여있어서
일명 여기
똥 간.ㅠ..ㅠ 에 수도 없는 사람들이 볼일을 보다가
빠져서
119에 실려갔었다.
똥독이 올라서.......ㅜ.ㅜ..ㅜ.ㅜ
만들 때 사람들이 다리 구부리고 앉아서 조준을 하는
그..... 변기? 아니 구멍을 조금 더 작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공동 화장실은
진짜 지금도 너무 무섭고 공포스럽다.
왜 그리도 어둡기까지 했는지
시꺼먼 콘크리트로 타일 마감도 없이 해놓은
우중충한 그레이의 공포.,,,,,,,,,,,,,,,,,,,,,,,,,
야밤에 화장실 갔던 할머니께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이런 못된 덩치 커다란 남자 귀신이 나왔다며
ㅠ.ㅠ 환청을 들으며 쓰러지셔서 돌아가실 뻔한 적도 있었다.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난 어린아이였고
나랑 남동생은 거기에서 볼일을 보지 않았다
아니 못 봤다.
볼일 보다가 1층 아래로 몸집이 작으니 빠져서 떨어지기 쉬우니
7살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집에서 엄마가 간이변기에 볼일을 보게 해 주셨고
그걸 다 버리고 치우고 해 주신 엄마께
나는 그 무엇을 해도 은혜를 갚지 못할 것이다.
화장실이 안 좋든 수도가 있든 없든
어린아이들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들의 걱정이었을 뿐
우리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차가운 부모님들의 따스한 품아래서
아무 걱정도 생각도 없이 매일 모여서 뛰어노는 행복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허름한 동네에서
티브이는 사랑을 싣고에 나간다면 꼭 찾아달라고 하고 싶고
가끔 수소문해보는데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도 보고 싶고
언제나 보고 싶은
우리 집에서 50걸음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 박보나" 라는 친구와 둘도 없는 막역지우가 되었다.
보나( 본명임 ) 야 혹시라도 내 글 보면 연락좀 주지 않겠니
보고싶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