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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Apr 17. 2023

암,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

삶을 완주한다는 것

조기완화치료 영역에서 정신적인 관리는 결국 암을 치료하면서 암을 가진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영역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암과 함께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그 삶의 궤적을 통해 지금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의미를 회복하고 간직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구나 언제가 맞이하게 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함해서요.


표현은 쉽지만 막상 실제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만만치 않은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나중을 위해 바라봐야 하는 과정이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를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막상 환자를 대하는 의사 입장에서나 도움을 받는 환자 입장에서도 이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암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너무 다양한 치료법 및 상담법이 있기 때문이죠. 인지행동치료나 문제해결스킬, 마음 챙김, 수용전념치료, 전통적 지지정신치료 등 암뿐 아니라 일반 정신적 상담 영역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정신치료 이론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종교적인 영역까지 섞여서 들어오기도 하죠. 의미중심치료나 존엄치료처럼 인생의 마지막에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의미와 존엄함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도 있습니다.


현대 정신치료에서 어느 한 가지 치료법만 고수하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암처럼 신체 질환으로 인해 여러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치료가 바람직하다고 딱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만큼 이 영역에서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정신종양에 대한 부분을 접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이 영역이었습니다. 암 치료를 하는 와중에 잠을 못 자거나 불안하거나 일시적으로 혼동증상이 왔거나 하는 부분은 약물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 상황에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을 하고 불필요한 불안은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면서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행암에서 지금 현재가 아니라 언제 올지도 모를 암의 재발이나 악화, 언젠가 다가올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이 아직 젊은 정신과 의사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저도 환자의 두려움을 회피하곤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당시 이런 부분을 배우거나 같이 고민할 선배 정신과 의사도 딱히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캐나다 토론토대학 암병원에 정신종양영역의 대가인 Rodin 교수님의 제안으로 진행암 환자를 위한 CALM 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전공의 시절 단기연수로 가볍게 경험해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저도 정신종양으로 박사과정을 하며 암 환자의 진료 및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는 시점이었고 Rodin 교수님이 개발한 CALM 치료도 국제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정도로 활발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 중에서 CALM치료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우선 CALM치료는 'Managing Cancer And Living Meaningfully'로 번역하자면 '암을 관리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 환자가 진행하는 질병의 상황을 마주하면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두려움에 대해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치료입니다. 즉 암으로 인한 실제적인 문제 상황을 다루되, 질병이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다루고,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그래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치료 상황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털어놓고 같이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갈 수 있습니다.


CALM치료에서는 크게 4가지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순서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CALM 치료의 전반을 아우르는 주요 테마입니다.


1. 증상 관리와 의료진과의 소통

그 첫 번째는 암 상황과 관련해서 스스로가 어느 정도 질병을 관리하고 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의료진과 어느 정도 소통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암 상황에서는 암이라는 질병이 가지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의료진과의 소통을 회피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작정 모든 치료나 관리의 과정을 의료진에게 맡기고 불편한 부분이나 궁금한 부분이 있어도 속으로 삼켜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신체적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필요한 도움을 놓치게 됩니다. 반면 의료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사소한 증상도 과민반응을 하기도 하죠. 이런 경우에는 과잉진료로 오히려 더 몸을 망치게 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반응을 예방하려면 내가 어느 정도 선에서 꾸준히 의료진과 내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자기 스스로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 몸 관리를 하고 있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암이라는 질환이 지금 주된 문제의 배경이기에 암을 치료하는 과정이나 추적 관찰을 하는 과정, 그리고 이후 완화치료 과정까지 다 필수적입니다. 내가 의료진에게 믿음이 가지 않거나 혹은 무작정 다 맡겨버리거나, 이야기해야 할 부분을 감추거나하는 행동이 반복되고 있다면 스스로 왜 그런 반응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통할지 치료 환경에서 같이 고민해 갑니다.


2. 자아와 가까운 관계에서의 변화

두 번째 영역은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암은 이 모두를 크게 바꾸어 버립니다. 나 자신의 삶의 영역을 크게 변화시키면서 약해져 버린 자신으로 인해 자존감, 자신감이 모두 손상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나의 직업적, 사회적 역할이 변하고 동시에 내가 함께 했던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이전보다 더 의지해야 할지 모르고 더 외롭게 느낄지 모릅니다. 그렇게 암을 우리 삶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그 와중에는 그럼에도 내가 나 자신을 간직하며 스스로 극복하고 돌보려 노력하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점점 약해지는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독립된 성인이었는데 마치 독립과 의존 사이에 고민하는 아이처럼 자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돌보아주던 가까운 이들도 어느덧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양가감정이 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암으로 인한 부정적인 불안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털어낼 건 털어내고, 대처할 건 대처하고, 무시할 건 무시하는 것이 필요한데, 혼자서 하기란 참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위한 공간이 필요한 거죠.


3. 의미와 목적

세 번째는 암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간직해 가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미와 목적이란 지금 갑자기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았온 삶의 궤적을 통해서 내가 추구해 왔던 삶이라는 것이 있고 그 안에 의미와 목적은 감겨있습니다. 때로는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힘겨워하기도 하고 멈춰 설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기억과 흔적이 있고 그 가운데 함께 했던 소중했던 성취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서사는 더 넓은 시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전에는 단순히 절망으로만 보였던 암이라는 질병도 물론 힘겹지만 지금의 나에게 다양한 의미를 다가옵니다. 시련일 수도 있고, 책임일 수도 있고, 정리일 수도 있고, 안식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하다보면 암을 고통스런 병이 아닌 나의 몸 일부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를 암 경험자 중에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현재에서도 이전의 삶에서 이어지는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가치는 암을 가지고도 유효하고 지속가능합니다. 


4. 미래와 언젠가 맞이할 죽음

그럼에도 미래는 다가옵니다. 암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의 삶을 어느 방향으로 이어갈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역시 언젠가는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막연하게 공포에 질려 있으면 우리는 또 회피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막역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바꾸어 갈 때 그나마 미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일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일지,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일지 등등입니다. 영역의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섞이면 그건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이지만 영역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어느 정도 대처하고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의학적 영역이 있고, 종교적 영역이 있으며, 법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언젠가 다가올 마지막에 대한 준비의 과정입니다. 동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는 마지막까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함께 시간을 가지는 겁니다. 갈등, 상처, 아쉬움, 미안함, 책임감, 소중함,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다시금 정리하면서 바라보는 죽음이란 절망보다는 오히려 차원이 다른 숭고함이 묻어나옵니다.


진행암 환자를 대하다 보면 저 역시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때로는 필요한 치료를 회피하려는 환자에게 내과 주치의사보다 더 열심히 의학적인 설명을 하며 다그치기도 합니다. 몸을 망칠 것이 뻔히 보이는 위험한 민간요법을 하려는 환자에게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내과 주치의사에게 환자가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용을 구구절절 의뢰서에 적어 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같이 소파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이 됩니다. 간병하면서 지쳐 있는 가족들을 따로 만나며 고충을 듣고 위로하고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가족 분들을 위한 진료를 잡기도 합니다. 그간 살아온 삶을 이야기 나누며 같이 울컥할 때도 있고 같이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솔직히 제가 인격적으로 더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 앞에 공포가 엄습해 올 때 환자가 자주 듣는 종교음악을 같이 듣기도 하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경계는 지키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에게 다양한 감정이 들고 다소 감정이입을 하는데에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대할 때 병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마음은 특히 삶의 마지막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치료를 할 때 항상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점과 시간입니다. 여러 암환자를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죽음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건 의사도,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기완화치료의 중요성을 저도 강조하지만 막상 진료실에서 이런 영역을 다루게 되는 순간은, 결국 말기암에 다다러서야 인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 앞에 우리는 누구나 두렵지만, 그 과정에서의 공포를 줄이면서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간직해 가기 위해서는 이런 대화를 나누기 위한 시점이 앞당겨져야 하고 시간도 더 필요한데, 아직까지 그 시기가 항상 늦고 시간은 부족합니다.


최근 일부 국가의 의료체계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넘어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영역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대표적인 국가이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일부도 조력자살을 시행받았거나 신청했다고 합니다. 일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경우에는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력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죽음의 선택지가 공공연히 확산되는 데에는 우리 시대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준비되지 않은채 지나치게 압도되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한 공포 앞에 우리의 심리 반응은 억압하고 회피하기도 하지만 반동형성이라고 해서 오히려 더 과하게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감추고 회피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메멘토 모리"(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기억하라)에 의미를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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