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유럽여행
2007년. 3월.
유럽으로 두 달 가까이 이탈리아 in 런던 out 만 결정한 채 통장에 있던 돈을 다 털어 13살이었던 아이와 둘이 비행기를 탔다. 내가 믿는 거라곤 말도 안 되는 조잡한 여행 책자의 지도와 튼튼한 두 다리, 무작정 낙천적인 나의 멘탈 뿐. 핸드폰도 없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아기가 울면 같이 울며 지내던 어느 날 ‘네가 13살이 되면 그때 우리 둘이 세계여행을 떠나는거야!!’라고 나 혼자 결심했었다. 세계여행은 아니지만 일단 떠났다. 후회는 딱 12시간 후 이탈리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집시와 많은 흑인과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목소리 큰 이탈리아 사람들( 요즘은 영어가 잘 통한다), 그리고 갑자기 추워진 이상기온까지 당황스러웠고 겁이 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도착하자마자 병이 났다.
난 원래 엄청 겁이 많다. 믿으셔야 한다.
두 달여의 좌충우돌 여행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엮으라 해도 엮을 만큼 파란만장하다. 로마에서 민박을 경험한 아이는 “엄마 비싼 호텔 예약한 거 있으면 다 취소하자. 남는 돈으로 재밌는 거 다 하자!” 우린 예약했던 몇몇 호텔을 다 취소했고, 그 돈으로 음악회를 가거나 뮤지컬 제일 앞자리에 앉는 등 사치를 즐겼다.
제네바에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에서는 밤새 아이를 지키느라(걱정이 많음) 꼬박 밤을새기도 했고, 스위스 인터라켄에선 자전거를 빌려 빛나는 호숫가를 몇 바퀴씩 돌았었다. 그 날의 반짝이던 푸르름. 그리고는 훌쩍 아무 기차나 타고 아무 역에 내려 산책을 하고 다시 숙소가 있던 라우터부른넨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레일패스 만세!!
전화하느라 들른 파리의 어느 ‘인터넷 카페’에선 키가190cm는 되어 보이는 흑인이 우리 둘에게 ‘petit lapins(작은 토끼들)’ 같다며 자기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가 전화하러 간 틈에 우리 ‘작은 토끼들’은 재빨리 토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썰렁하다.
아말피의 절벽, 레몬 향이 날 것 같던 소렌토, 사크르퀘르 성당 뒷골목, 아씨씨의 세실리아 성당, 내 가방에 한 손이 들어간 소매치기와의 아이컨텍, 고흐가 숨을 거두었던 그 작은 방, 오베르의 시냇가,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두오모, 추웠던 베네치아,수많은 미술관, 박물관. 바티칸,피에타, 팡테온,리쪼 아이스크림, 라오콘 상, 지오또의 종탑, IAEA에서 근무하던 리투아니아 출신 여인, 런던에서 밤마다 보았던 뮤지컬, 노팅힐 시장, 뮌헨역의 빵,일주일 내내 갔었던 토이저러스, Boots!, 다리가 후덜덜 떨리던 런던아이, 4000m가 넘는 융프라우요흐 얼음산에서 만난 부리가 노란 새, 우리들의 웃음, 운동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짤즈 캄머쿤트, 영국의 유채꽃, 도버, 리즈성,스위스 산꼭대기 샬레에서의 일주일. 별, 그리고 신라면.
십 육 년이 훌쩍 지난 오늘. 그날들이 떠올랐다. 그 여행이 나에게 주었던 용기와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게다가 얼마나 긴장하고 흥분했는지 지금 가도 길을 외울 지경이다.
미술로 진로를 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다녀 온 여행 이후, 아이는 뒤늦게 예중 입시를 시작했고, 대학원까지 졸업하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겁을 내면서도 더욱 무모하다.
2023년의 봄이 2007의 봄을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