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전일생 Mar 12. 2022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결혼은 현실이고 정리도 현실이야



이별은 모두 추하다.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있담. 둘 사이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 아름다웠나? 그 뒤에 남겨진 상처를 수습하고 보듬는 시간도 아름다운가?



동화책 속 결말 ‘그 후로 둘은 정말 행복했답니다’ 만큼 믿기 어렵지만 적어도 연인관계에서는 미화가 가능하다. 그저 서로의 감정의 교감인 관계니까. 그렇지만 부부는 다르다. 현실적인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함께 해 온 관계이다. 이 둘이 갈라선다면, 특히 부부생활이 십 년 정도 오래 지속되었던 사이라면 더더욱 둘을 엮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3개월의 숙려기간이 끝났고 그 기간 동안 각자 가까운 법원에서 자녀양육에 관한 교육을 듣고 코로나로 밀린 2차 확정 기일에 법원에서 만났다. 일주일이 밀린 터라 법원 안 협의 이혼하는 부부들이 콩나물시루만큼 많았고, 그저 신분증을 내밀어 출석했음을 확인하고 사인한 뒤 판사 앞에서 ‘네’라는 대답을 한마디 하기 위해 무려 한 시간 반을 넘게 기다렸다.


그렇게 이혼 확인 서류를 각자 챙겨 들고 나와서 간단하게 만둣국을 먹었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집에 가기 전 할 말 없냐고 묻는다. 만나면 꼭 해줘야지라는 말은 없었지만 내내 걸리던 게 있어서 말을 꺼냈다.


참. 땅문서 어머님한테 받아서 보내줘.’


어이없다는 웃음소리와 ‘너는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냐’라는 말로 대답한다.


물론 내 명의의 땅이고 어차피 거래하는데 내가 가면 문제 될 것 없는 거 알아. 그렇지만 땅문서를 어머니와 당신한테서 건네받는 것과 내가 그냥 가서 땅을 처분하는 거랑은 완전 다른 이야기이고 그건 나한테 중요한 문제야.라고 설명하며 감정적으로 안 휘말리고 잘 대답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는데 어김없이 시작하는 감정 팔이.


그동안 고생했어. (응 맞지만 이혼 전에 좀 알아주지 그랬어)

아이들 본다고 누나랑 엄마가 고생이지 (그러게 내 핏줄 내가 거둘 수 있으니 두고 갈 거면 가라고 큰 소리는 왜 쳤대. 나는 애 안 데리고 나왔니?)

그래서 나는 죄인이라 한마디도 못해 (당신도 아이들 어떻게 해서든 키운다고 큰소리쳤잖아. 내가 같이 미안해해야 해? 난 우리 부모님한테 미안한데 넌 우리 부모님한테 미안하지 않잖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이혼도장 찍기 전에 했어야 할 말을 왜 굳이 지금 와서 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3개월 쉬어서(응? 내가 쉬긴 뭘 쉬어? 아예 이혼을 결심한 이유조차 알지 못하면서 심지어 궁금해하지도 않고 혼자 결론.) 회복될 건 아닌 거 같으니 천천히 시간 갖고 생각해보자니. 한 2년 내가 열심히 살 테니 그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자니.


그럼 그동안은 열심히 안 살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하고 살아온 11년을 당신은 그냥저냥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거야? 나는 내 할 도리는 다 해서 특히 어른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아.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라는 말을 꾹 삼키고 두고 나온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만 흘리다가 왔다.




이 눈물이 제발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그 사람에게 가닿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친해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