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는 끝났고 삶은 계속 된다.
판사 앞에서 의사확인을 하고 각자 서류를 받아들었다. 같은 서류의 복사본.
“구청에 가서 서류내시고 신고하면 됩니다”
-한쪽만 가서 신고해도 상관없나요?
구청은 거리가 더 있으니 외출 나간 김에 동사무소(현 행정복지센터)에 들려 문의했다. 서류를 보여주며 여기서도 신고가 가능한지를 확인하려고.
공무원은 여기서 담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친절히 전화를 돌려 물어보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혼신고서를 두분 모두 작성한 뒤 구청에 가서 신고하셔야해요.”
복사본 두개 앞에서 난 분명 질문을 했는데 그렇다는 대답이 무색했다. 신고서에는 부부 모두의 도장 혹은 자필서명이 필요했다.
결국 딸이 아빠에게 주말에 다녀오기로 했으니 그 전에 동사무소에 비치된 신고서에 본인분을 작성하여 아이편에 보내달라 했다. 지난 번에 이야기했던 토지등기문서와 함께 보내면 될 일이었다.
바빠서 못했고 등기로 보내준다고 하더라. 3개월 안에만 신고하면 되니 여유는 있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으로 인정받고 혜택을 받게되려면 사실상 빠른 서류정리가 도움이 될 터이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서인지 등기가 도착했다. 내 명의 계좌에 있던 시어머니 돈과 통장내역 일년치를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 핑계를 대며 급하다고 얼른 처리해달라 한다. 그 은행은 내가 아예 쓰지않고 OTP도 넘겼고 심지어 등록한 휴대번호도 내것이 아니었기에 실상 계좌이체는 본인들이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아이아빠의 카톡 프로필화면에는 (마지막으로) 싸우고 집을 나갔던 날과 나에게 등기를 보낸 날짜가 차례로 적혀 있었다. 그마저도 금방 내리긴 했지만. 타인을 의식한 감성팔이.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래 이혼해. 라는 말을 내뱉고 난 뒤 애아빠는 그냥 그렇게 구렁이 담 넘듯 지나가길 바랐나보다. 그냥 내 눈치 살피며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지 재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하면 이 상황을 더 좋게 할 수 있는지는 아무것도 제시하지도 않았고 바꿔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잦은 싸움 중에 한번은 ‘나 진짜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너무 우울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이러면 안되지라고 생각하여 괜찮은 척 하며 살았던 그 때.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말을 내뱉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나는 또 그렇게 방치되었다. 나조차도 ‘척’하면서 방치했고.
시모에게 소리지르고 대든 날. 여태까지 참았으면 계속 참지그랬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나 배려따위는 없었고 난 또 괜찮은 척하며 할 일을 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부부가 있다. 친구가 임신하고 육아하는 동안 남편은 혹시 우울증이라도 오지않을까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듣고보니 내 결혼생활이 너무나도 보잘것 없어졌고 정말 이렇게는 안되겠구나를 실감했다.
준비가 된 상태에서 이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사실 나는 살 길이 막막하다. 설마 입에 풀칠 못하겠냐는 심정으로 나왔지만 경력없는 39살의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고, 딸을 양육하는 입장에서 따지는 것도 많아졌다. 내 한몸뚱이 그저 막 굴리다 가는 것은 어차피 내 선택이니 상관없지만 딸은 잘 키워야하는거니까.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낮아진 자존감과 그간 내가 당한 가스라이팅이, 또 결혼 생활동안 꾹꾹 눌러져왔던 나의 욕구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억울하다.
진짜 욕을 한바가지해주고 싶다. 평소에는 안하지만 진심일 때는 단전부터 우러나오는 욕, 잘할 자신 있는데.
신고서를 내고 처리완료까지 일주일정도 소요되고 처리가 되면 문자로 알림이 오는데 그동안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