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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na Sep 09. 2019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당연한 사실을 왜 자주 잊고 살까

엄마는 오늘 엘림이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낮에 회사 앞 공터의 잔디를 덩치 좋은 두 사람이서 열심히 깎고 있더라. 잔디깎이 기계들은 왜 그렇게도 시끄러운지 그 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난 너를 도닥이고 점심을 먹이려던 찰나였어. 잔디깎이 기계 소리에 여전히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네게 "엘림아, 아저씨들이 잔디를 깎아야 하나 봐" 하고 말했단다. 그러자 엘림이가 "까까" 하고 대답하는 거야. 엘림이가 아는 단어 '까까(과자)'가 들려서 따라한 모양인데 엄마는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을 웃었어. 

엘림이가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단어가 있단다. 엄마, 아빠, 맘마, 까까(과자), 음(물), 이(치즈), 하마.  

하필 잔디는 '까까'야하는 것이어서 우리 엘림이를 설레게 했네.


사는 게 정말이지 그래.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지.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게 돼.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오해하고 살기도 하고, 내가 들은 것만이 진리인 양 오만하게 굴기도 하지.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참 많아, 좋은 것도 그리고 나쁜 것도. 


그렇다면 아는 것이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꼭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행복지수와 문명 지수는 반비례한다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문명화되었다고 해서, 최첨단의 문물을 모두 가졌다고 해서 그가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어. 원하는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볼 때는 아무 감흥도 없는데, 비 온 뒤 맑은 밤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볼 땐 황홀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언젠가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를 읽고서 내가 참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단다. 기나긴 인디언들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갈 무렵인 1854년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지금의 워싱턴주에 살고 있던 인디언 수꾸와미쉬족의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했대. 그에 대한 답변으로 널리 알려진 이 편지는 실은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이라는 인디언의 오랜 믿음이 담긴 대 서사시라고 해. 아주 긴 편지라 전부다 적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엘림이가 꼭 찾아 읽어봤으면 좋겠다.


...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따라서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겠다고 한 제의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대추장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그에게는 우리의 땅 조각이 다른 땅 조각들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땅을 손에 넣기 위해 한밤중에 찾아온 낯선 자다. 
대지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는 대지를 정복한 다음 그것으로 이주한다. 
그는 대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머니인 대지와 맏형인 하늘을 한낱 물건처럼 취급한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들의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가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공기이며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하는 것도 그 공기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다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게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당신들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대지에게 가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가해진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것을 안다.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게 속해있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시애틀 추장의 편지 중 일부분.



얼마나 아는가 보다는 무엇을 아는가, 그것이 정말 중요한 거야. 우리가 알고 싶어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릇 선한 것들 이기만을 기도해본다. 우리 엘림이가 날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엄마는 기도해. 순한 봄의 햇볕에서, 반짝이는 파도에서, 이슬 머금은 풀잎에서 또 노을 지는 풍경에서 삶을 배우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늘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이 날마다 조금씩 성실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이즈음 엄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작고 소중한 아기 엘림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란다. 엄마 곁에서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우리 엘림이. 엄마는 부지런히 너라는 우주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게, 너는 온 우주를 조금씩 배우며 그렇게 성장하기를. 오늘도 잘자렴.


- 2019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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