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파리에서는 자주 자전거를 탄다. 서울의 따릉이처럼 파리에도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Vélib(벨립)이라는 서비스가 있고 누구나 시내 곳곳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서울에서도 자전거 타는 걸 꽤나 좋아했고 휴가 차 돌아갈 때마다 한 번씩 꼭 따릉이를 빌려 타긴 하지만, 파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서울의 그것과는 꽤 다르다. 서울에서는 주로 한강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 기분 전환을 위해 빌려 타거나, 아니면 운동을 목적으로 목동 본가에서 출발해 안양천, 당산, 여의도를 거쳐 한강 반포대교까지 왕복하는 일이 많았다면 파리에서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교통수단 중 하나로 애용하는 편이다.
자전거가 하나의 필수 교통수단이 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파리 면적은 서울의 약 6분의 1 밖에 되지 않고, 센 강의 폭(200m) 또한 한강의 폭(1000m)의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 현저히 적다. 예를 들어 시내 중심에서 우리 집까지 자전거로 대략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고, 센 강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가는 것 또한 30분을 조금 넘는 정도다. 그렇다 보니 어딘가를 갈 때, 특히 날씨가 좋고 바람을 쐬고 싶은 날이면 쉽게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지하철, 버스를 대체할 교통수단으로 이처럼 쉽게 자전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센 강 아래쪽에 사는 내가 센 강을 가로질러 바로 윗동네로 가야 할 경우에는 지하철을 타고 빙빙 돌아가거나 제 때 오지 않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자전거 도로만 뻥 뚫려있을 때의 우월감이란. ‘이것 봐, 자전거를 타면 교통체증도 없다니까?’라고 절로 소리치고 싶어 진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게 유일한 선택지일 경우도 있다. 파리 지하철은 고장이 잦고, 이동 중 지하철이 갑자기 멈춰서는 경우가 제법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한두 시간은 예사로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그럴 때면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전거를 타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4년 전 겨울, 한 달간 대중교통 파업이 있던 때는 칼바람이 귀를 스치는 추운 날씨에도 알바를 가기 위해 손을 호호 불어가며 편도 30분이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다녀야 했다. 걸리는 시간은 비슷해도 소모하는 체력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달라 집에 오면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던져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중에 갑자기 마른하늘에 소나기가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탄 자전거를 내리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직 갈 길은 멀 때, 앞사람들은 전부 외투에 달린 후드를 쓰는데 나만 혼자 쫄딱 젖은 채로 이마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목적지로 향할 때 스스로가 불쌍하고 애잔해서 참을 수가 없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꺼이 자전거를 타길 선택한다. 처음에는 차들이 다니는 일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어느새 자전거에 올라탄 지도 4년이 되어가고, 코로나 이후 일반 도로 옆에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따로 만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점점 자전거를 타는 게 쉽고 편해졌다. (그만큼 자전거 이용자도 늘어서 출퇴근길에는 자전거 도로에도 약간의 정체가 있다!) 이제 자주 다니는 코스는 따로 지도를 보지 않아도 중간에 길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도시를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가끔은 처음 가보는 곳도 출발하기 전 대충 구글지도를 한번 보고 길을 익힌 후, 중간중간 길을 체크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 제법 파리지엔 같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으쓱하곤 한다. 이렇게 열렬히 도시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다니 이럴 때면 역시 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그리고 자전거를 탈 때마다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해방감! 페달을 힘껏 밟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는 자전거와 나만 남은 듯했고, 그럴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곁을 스칠 때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진정 됐고, 그 어떤 무거운 마음도 다 먼 곳으로 훌훌 날아갔다. 좌우를 살피면 엽서 같은 파리의 멋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외로움이나 공허함 같은, 평소 나를 지배하던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내가 파리에 살고 있다니’ 같은 심플하고 새삼스러운 감각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특히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내가 그토록 추구하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자전거를 멈추고 다시 현실에 두 발을 딛기 전까지 적어도 20분은 그런 기분에 젖어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면 될 뿐이라는 것, 그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 나를 먼 곳까지 데려가 준다는 것, 별 다른 고민과 어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세상의 어떤 것은 때로 놀랍도록 명쾌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자전거를 타는 시간을 사랑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