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뭘까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지난 며칠을 눈물로 흘려보냈다. 요 며칠 힘든 일을 연달아 겪게 되니 혼자 끌어안고 살던 고민들이 우르르 터져 나왔고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더 이상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놨다. 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했을까? 마음의 버거움을 털어놓으니 모두가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심지어 그날 저녁에 바로 번개 하자고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나 한 잔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었다. 그렇게 감정을 다 소진하고 났음에도 '프랑스에 남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나의 곁에 남았다.
마음이 한 번 뜨고 나니 프랑스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흐릿해지고 단점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물론 금방 손쉽게 일을 구했으면 감사하게 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운명론자가 아님에도 이 정도면 세상이 내가 한국에 가길 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과연 앞으로 더하면 더할 마음고생을 감당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물론 한국을 늘 휴가나 방학으로 갔기 때문에 막상 일을 구해 정착하면 어떨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다. 그럼에도 내 나라, 매 순간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내 나라 아닌가. 해외에서 취업을 해서 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해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잘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데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내 글을 읽게 된다면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프랑스에 있고 싶은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워라밸이다. 주 35시간의 짧은 근무 시간, 연간 40일 이상의 유급 휴가, 그중 한 달은 여름휴가. 일에 매몰되지 않고 여유가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이 또한 양날의 검이라 워라밸과 등가교환한 높은 세금과 그만큼 낮은 실수령액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 프랑스에 남고 싶었을 때는 '큰돈을 벌러 온 것도 아닌데'라는 합리화를 했으나 감당해야 할 한 달 월세는 터무니없이 높아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그냥 근근이 살아가는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연봉은 업계별로 차이가 있지만, 연봉이 높으면 또 누진세도 그만큼 붙어서 실수령액이 보잘것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진데 내가 가고자 하는 업계는 심지어 박봉이다. 이곳에서 사는 게 과연 수지타산이 맞는 일일까?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 보장 시스템에 자부심이 대단하지만(큰 병이 생겼을 때 나라가 전부 부담하는 것은 맞다) 사실 평소 조금 더 사소한 이유로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의료 시스템은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다. 갑자기 어디가 불편해도 병원에 한 번 가볼까? 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높은 확률로 진료를 보기 위한 예약이 가능한 날짜는 2주 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충 약국에서 해결하고 그냥 더 아프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내가 낸 세금은 물론 내가 이곳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면 후에 복지로 누릴 수 있겠지만 은퇴 때까지 이곳에 살 거 같진 않다.
이 외에 다른 소소한 이유, 유럽 여행을 쉽게 다닐 수 있다거나 문화생활을 맘껏 누릴 수 있다거나 도시가 미치도록 아름답다 등등의 이유는 모두 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근데 살아보면 살아 볼수록 내가 여기서 인생의 파트너를 만날 것 같지가 않다. (마음을 쉽게 주지 못하는 내 성향과 망한 데이트들의 총합)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이 모든 낭만과 아름다움은 그 의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그것도 그렇고 해외에서는 싱글로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여유가 있고 개인 시간이 많은 삶 속에서는 오히려 남는 시간이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풀었다면 나이가 서서히 들면서부터는 늘 누군가와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서 만나는 게 예전 같지 않고 피곤해졌다. 인생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지내냐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타는 타입이고 살아보니 이런 성격은 외국생활을 오래 하기에 크게 적합하지 않다. 성공이라고 믿는 삶을 위해 나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게 맞나? 그리고 그걸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어느 산꼭대기에 힘겹게 올랐는데 그 정상에 나만 혼자 남겨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주저앉아 울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대단한 위인이 될 만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ㅋㅋㅋㅋ) 영 위인은 못 될 인간인가 봐.
한편으로는 어째서 나만, 취업을 못하고, 마치 실패해서 돌아가는 것 같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자책, 과거의 어떤 선택이 현재의 나를 바꿔놓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지? 에서 비롯된 자괴감 등등.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세상이 끝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막상 돌아가서 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또 그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물론 어떤 면은 프랑스가 그리울 수도 있겠지만 해외살이에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그만큼의 단점이 있다는 것도 아니까. 또 나는 이런 치열한 삶의 끝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약간은 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게 원점일까? 지난 5년간 넓은 세상을 겪으며 내가 모르던 나도 찾게 됐고, 조금 더 세상과 타협할 줄도 알게 됐고, 사람들을 다시 사랑하게 됐고, 해외생활의 미련도 떨쳤다. 삶의 우선순위도 다시 세우게 됐고, 어느 정도는 좀 더 성숙해졌다. 그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무분별하게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내야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번 마음을 다쳐서 너덜너덜해졌다면 멀리 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강해지는 게 과연 중요할까? 시련이 다가올 때마다 매번 유약하게 느껴지는 나 스스로를 미워했다. 이렇게 하면 멋있는 사람이 못 돼. 대체 나는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집착했는가. 그렇지만 이제 멋있다는 말은 예전만큼 뿌듯하게 들리지 않고 더 이상 내게 큰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컸던 나머지 그게 날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을지는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텅 빈 방에서 무한대로 반복되는 플레이리스트에 마음을 기댄 채 매일 밤 외로움을 삼키는 삶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50년간 15만 명을 돌본 정신과의사는 말한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고.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 이근후,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