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아이돌과 팬의 이상적인 거리 측정하기
* 이 글에 사용된 숫자는 모두 과학적인 수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쓴이가 임의로 설정한 값임을 밝힙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정한 거리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느끼는 친밀감에 따라 '편안함'의 거리는 조절되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하더라도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면 피차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퍼스널 스페이스'라고도 하지 않나. 때로 상대가 나의 공간을 과하게 침범할 때, 나는 그 거리없음이 매우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반대로, 그 사이가 너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실제 상대와의 거리도 한없이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신경을 쓰게 만드는 범주에 두면서도, 그 관계가 나를 좀먹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관계의 거리'다. 좋아하는 아이돌과의 (일방적인) 관계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그 사이의 거리가 0에 수렴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보통의 인간관계와는 체감 거리가 다를지라도 말이다. 다음은 내가 덕질을 하면서 느끼는 애정의 대상과의 거리다.
(1) 콘서트에 갔을 때(최대값: 2.7km)
콘서트 장에서 아이돌과 나의 거리는 팬이 많을수록 멀어진다. 내가 경험한 최소 거리는 홍대의 한 클럽이고, 최대 거리는 고척 스카이돔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의 크기까지 거리에 영향을 받진 않는다. 좋은 건 가까이서 봐도 좋고, 멀리서 봐도 좋다. 서로 다른 느낌으로 좋을 뿐이다. 일단 멀리서 본다는 것 자체가 멀리서 봐야하는 걸 감수하고도 무대를 보러갈 정도로 애정이 깊다는 것일테니.
고척 스카이돔 4층에 앉아 무대를 봤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애정의 기운이었다. 내 옆과 앞과 뒤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너가 객석을 바라볼 때, 내가 그 우주 속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 우주가 너한테 다정한 위로와 벅찬 기쁨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기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너는 나의 욕심이지만, 너의 행복은 나에겐 더 큰 욕심이다. 나는 먼 거리에서 너를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2) Vlive을 볼 때(중간값: 0.9km)
사실 브이라이브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평생 실감할 일 없을 줄 알았지만, 감사하게도 워너원이 월드투어를 하면서 호텔 방에서 불쑥불쑥 브이앱을 켜준 덕에 요즘은 그 존재 가치에 대해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됐다. 좋아하는 아이돌과의 감정 교류는 확실히 그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킨다. 브이앱을 하는 동안 소소한 일상을 나누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 노래 등 자신의 취향에 대한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주기 때문이다. 콘서트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월드투어를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쉴 때는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나는 너와 나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음을 체감한다. 나는 이제 너를 짐작하는 대신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고, 말할 때 너의 표정이 어떤지, 어떤 말투를 쓰는지, 그리고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습관까지도 알아갈 수 있는 게 좋다. 나의 새벽이 너의 목소리로 가득차는 게 좋다. '매일 하루의 끝에 시답지 않은 얘길 하는 것'은 정말이지 다정한 위로다.
(3) 직업상의 특수한 상황(최솟값: 0.27km)
가끔은 좋아하는 가수를 촬영 현장에서 마주하는 행운을 누린다. 이 때는 상대의 범위가 조금 확장된다. 열렬히 덕질을 하는 대상보다는(도 있었지만 대개)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할 때, 그를 카메라 앞에 꼭 세워보고 싶을 때, 섭외를 한다. 그리고 운과 때가 맞다면 우리는 만난다. 물론, 엄청 신기하다. 촬영 전에는 내내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등장한 순간에는 찰나의 안도감을 느끼고, 그 후 30분 정도는 묘한 흥분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촬영이 진행되어 갈 때쯤에는 놀랍게도 좋아하던 상대 역시 여러 스텝들과 함께 현장의 풍경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까봐 뇌가 배려하는 건가? 아무튼, 촬영을 끝내고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을 때 우리는 완벽한 마침표를 찍게 된다. 대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나는 너를 좋아하는 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받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실망을 한 적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모두는 늘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미묘한 감정의 전복 역시 피할 수 없는 결말이기도 하다. 그 한번의 만남에서, 비록 하루라고 하더라도, 너는 나의 현실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의 '일', '직업'의 일부. 잠시라도 인간 대 인간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 때문에 덕질은 늘 시름시름 힘을 잃었다. 그건 네가 별로였기 때문이 아니라, 너는 너무너무너무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냥 내 맘이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식간에 너무 가까워져버렸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거리없음은 뭔가 날 어색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그게 늘 너를 꿈꾸면서도 너에게서 한발짝 떨어져 있고 싶은 이유다.
좋아하는 너와 나의 적절한 거리.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