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지난 날1

동생의 운동화

by 꿈부

금요일 저녁이다.

딸들이 기숙사에서 나오는 날이다. 쇼핑몰에 갔다. 저녁도 먹을 겸 가족 모두가 함께 나갔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도 필요하고, 운동화도 새로 사야 한다면서 몇 주 전부터 둘째 딸이 성화다. 20살, 18살의 딸들은 여러 브랜드의 옷과 신발들을 보면서 연신 ‘예쁘다’를 외친다. 사고 싶고, 입고 싶고, 신고 싶은 것 천지란다. 스포츠 브랜드 코너로 가더니 브랜드별로 한 바퀴 돌아본다. 디자인을 살핀다. 가격표는 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신발을 신어보고, 거울에 비춰보고, 몇 발자국 걸어본다.

“어때?”

둘은 서로의 모델이 되어주면서 귀엽다, 예쁘다, 별로다, 개성 없다 등의 평가를 하면서 서로를 보며 끊임없이 웃는다. 그런 딸들을 보면서 나도 웃는다.

딸들에게 운동화는 신발이 아니라 패션이다. 치마에 어울리는 운동화, 청바지에 어울리는 운동화, 운동복에 어울리는 운동화 등 종류도, 색깔도 여러 가지다. 딸들은 오늘 각자의 운동화를 각자의 패션을 위해 샀다. 딸 들은 손에 들린 쇼핑백을 흔들며 말한다.

“엄마, 고마워”



눈이 오는 날이었다. 겨울방학 소집일 전날이었다. 4학년인 나와 2학년인 동생의 소집일이었다. 우린 준비랄 것도 없이 그냥 마음이 설렜다. 겨울방학 동안 좁은 집 안에만 있던 우리는 학교 가는 날이 반가웠다. 동생은 학교 가서 선생님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날 일에 들떠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며칠 동안 내리는 눈을 보면서 걱정을 했다. 더 오면 안 되는데, 잔등길을 ‘어떻게 넘어가지?’하는 걱정으로 11살인 나는 잠을 뒤척였다.

분홍색의 운동화가 흰색인지, 흰색에 붉은빛이 살짝 물든 건지 모르게 바랬다. 뒤 축은 닳았고, 옆은 실밥이 터져서 구멍이 나 있었다. 내가 신다가 작아서 물려준 동생의 운동화였다.

‘저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눈이 다 신발 안으로 들어갈 텐데….’

내 운동화라고 멀쩡하지 않았다. 살 때부터 내 후년까지 신으라고 큰 치수를 사줘서 운동화는 걸을 때마다 철퍼덕거리며 슬리퍼를 신은 것처럼 뒤를 끌어야 했다. 그 당시 우리의 운동화는 패션이 아니었다. 그냥 ‘신발’이었다.

‘괜찮을까?’




지금 같으면 학교에 전화하고 하루 쉬었을 텐데, 그때는 학교에서 오라는 날 안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난 4년 전에 오래 입으라고 크게 사줬던 빛바랜 회색 겨울 코트를 입었고, 동생은 먼 친척이 입다가 물려 준 빨간색 코트를 입었다. 보풀이 일어났고,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검은 얼룩이 남아있던 코트였다. 그 흔한 목도리도, 장갑도 없었다. 우린 그 낡은 코트와 걸으면 걸을수록 눈이 들어가는 신발들을 신고 학교로 출발했다. 낡은 코트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목은 움츠릴 수 있을 만큼 움츠려서 코트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겨울날 학교 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학교까지는 보통 날 걸으면 10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이었다. 우린 돌아서 가는 정문이 아니라, 지름길이 있는 후문을 이용했다. 정문으로 가면 10분 정도 더 걸렸다. 엄마는 출근하시기 전에 빗자루로 대략 한 걸음 정도 폭의 길을 쓸어 놓으셨다. 비질로 만든 길 위에 연탄재를 깨서 미끄러지지 않게 해놓으셨다. 그 길은 대략 50m 정도로 끝났고, 그 뒤로 대략 350m 정도의 눈길을 더 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길의 반 정도를 가면 나뉘는 길이 있었다. 학교로 가는 지름길과 돌아가면서 정문과 시내로 통하는 길이었다.




엄마가 비질로 쓸어 놓은 길의 끝 지점에 올라와서 내리막길을 보니, 어른들이 지나간 발자국이 보였다. 조심조심 내가 먼저 발자국 하나를 따라 건너고, 동생 손을 잡아주고, 다시 건너고, 뒤돌아서 동생 손을 잡아줬다. 그렇게 징검다리 건너듯 나뉘는 길에 도착했다. 학교로 가는 지름길엔 하얀 눈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채 쌓여있었다. 동생에게 물어봤다.

“돌아갈래? 그냥 이 길로 갈래?”

겨울 칼바람에 그 잠깐의 추위는 돌아갈 엄두를 못 내게 했을 것이다.

“언니, 그냥 빨리 가자.”

내가 먼저 눈을 밟았다.

푹.

발목을 넘기는 깊이로 신발이 빠졌다. 내가 먼저 빠지고, 발을 빼면 그 자리로 동생의 발이 빠지고, 내가 먼저 빠지고, 발을 빼면 그 자리로 동생의 발이 빠지면서 눈은 우리 신발 속으로 들어가 쌓이고 있었다. 눈길에 빠지고, 바람을 가르며 우린 학교 현관 앞에 도착했다. 동생의 얼굴이 빨갛고, 눈물과 콧물 자국이 범벅이었다. 겨울바람은 동생의 깨끗한 얼굴을 지켜주지 않았다. 난 코트 소매를 손끝으로 잡고 끌어다가 동생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동생 신발을 벗기고, 신발 안에 눈을 털었다. 신발을 털면서 동생의 발을 보니 구멍 난 곳을 안으로 여러 번 기워 신은 동생의 양말에 눈이 엉겨서 붙어있었다. 난 동생의 바지와 발에 붙은 눈을 뜯어내듯 털었다. 꽁꽁 언 동생의 손과 발에 입김을 쐬어줬다. 입김인지 한숨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아팠다.

“손 시리지? 발 괜찮아?”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난 다시 운동화를 신겨서 교실로 데려다줬다.



그날 이후 난 동생의 운동화를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몇 년을 신다 물려주는 운동화를 신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용돈이라고 할 것 없는 형편이었지만, 어떻게든 생기는 돈을 모으고 모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빈 병과 고철을 주웠고, 담배 농사하는 집의 담배를 묶어드리고, 고추 농사하는 집의 고추를 따드리면서 받은 돈을 모았다. 친척들이 많아서 세뱃돈을 많이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세뱃돈으로 갖고 싶은 것 사서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쩔 수 없지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필요한 참고서를 덜 샀던 기억도 있다. 엄마에게 받은 참고서비 일부를 속이기도 하면서 그 비밀 저금통을 난 어언 3년 동안 키웠다.

중학생이 되고,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그 당시 친구들이 사 신었던 나이키, 아디다스, 아식스 등의 신발 대리점을 돌았다. 신고 싶은 예쁜 운동화들이 많았다. 고르고 골라서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가장 예뻤던 아식스 운동화를 샀다. 까만 봉지에 담기는 시장 운동화가 아니고, 상자 안에 담기고 종이봉투에 담긴 브랜드 운동화였다. 벅찼다. 숨을 크게 쉬어야 했다. 눈물도 났다.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꽉 찼다.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거야. 네 운동화야.”

동생은 운동화를 받아들고, 상자를 꺼냈다.

“아식스다.”




그날 동생은 5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브랜드 운동화를 신었다. 철퍼덕거릴 정도는 아닌, 살짝 넉넉한 치수를 샀다. 동생에게 잘 맞았다. 좋아하는 동생을 보면서 뿌듯했고, 그동안의 미안함에 대한 답을 한 것 같아서 후련했다. 행복했다. 동생은 흰색 아식스 운동화를 신어보고 또 신어봤다. 사진을 찍듯 일기장에 그리기도 했다. 동생은 그 운동화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니, 고마워.”



딸들의 운동화를 사줄 때면 난 그날의 동생 운동화가 생각난다. 장녀의 책임에 대한 버거움에 불만을 말할 때가 많았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받는 급여 대부분을 줄줄이 이어진 동생들의 학비랑 용돈으로 쓰였던 과거의 희생을 말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날의 운동화를 떠올릴 때면 장녀로 받았던 특혜에 대한 미안함을 깨닫게 한다. 난 적어도 가장 가난한 시절에 가장 깨끗한 옷을 입었고, 신발을 신었다. 동생들에게 말한다.

“미안해, 참 고마워.”



뒷이야기 – 동생의 운동화는 하루, 아니 반나절 동안의 꿈이 되었다. 동생의 친구들이 장난으로 한 짝을 숨겼고, 그 한 짝을 찾기 위해 동생은 몇 날 며칠을 학교의 곳곳을 뒤지고 또 뒤지며 찾아다녔다. 울음은 한 달을 넘겼던 것 같다. 나의 3년의 노력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 허무감을 표현하기에는 동생의 슬픔이 너무 컸다. 동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머지 한 짝을 꽤 오래 간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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