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
띵동.
학교 알림장 앱의 알람이 울린다. 내일 수업에 필요한 열 살 아들의 준비물은 스마트기기와 이어폰이라는 알람 문자다. 일하는 엄마에게는 유용한 앱이다. 준비물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요즘 학교는 스케치북, 컴퍼스, 색종이 등 웬만한 준비물을 갖춰 놓는다. 엄마가 따로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지 않다. 정말 편리해진 세상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입을 뾰족이 하고, 우산을 든 채로 마당 한쪽에 서서 애먼 땅만 차고 있다. 앞집 사는 같은 반 친구 진이 같이 가자고 부른다. 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먼저가’라고 한다. 진의 손에는 파란색 리듬악기 주머니가 들렸다. 난 다시 고개를 숙이고 빗물에 흙이 튀는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엄마에게 준비물인 리듬악기를 사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며칠 전부터 엄마한테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잊은 건지 살 돈을 주시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 아빠에게 소리친다. 아빠는 또 밤을 새우고 아침에 들어오셨다.
“어제 일하고 받은 돈 어떻게 했어요? 쌀 떨어져 가는 거 몰라요, 애들 안 보이냐고요.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어떻게 그 돈으로 또 놀음을 해요?”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아무 대답도 안 하시고 밥만 드신다. 답답해 죽겠다. 나는 아빠가 밉다. 매일같이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밉다. 우리가 힘든 건 모두가 아빠 탓인 것 같다.
6학년인 오빠가 우산을 펴면서 나온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한다.
“가자, 교실에 가 있으면 오빠가 갖다 줄게.”
“어떻게?”
난 기어가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한다.
“갖다 줄게. 3교시라고 했지?”
“응.”
우린 우산을 쓰고 학교로 향한다. 10여 분 거리인 우리의 등굣길은 매일매일이 무거웠고, 걱정이 많았다. 하루라도 조용하고 편안한 등굣길이었으면 했다. 학교까지 가는 동안 우린 아무 말이 없다. 오빠의 표정은 심각해서 말을 걸 수가 없다. 그저 뒤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문구점이다. 가던 발길이 멈춘다. 학교 앞 문구점은 준비물을 사는 아이들로 정신이 없다. 색종이 하나, 공책 한 권, 도화지 한 장, 풀등을 들고 문구점 아줌마에게 ‘아줌마, 여기요.’를 외치고, 아줌마는 한 아이, 한 아이의 물건과 돈을 확인하느라고 바쁘다. 등굣길 가장 바쁜 곳은 문구점인 듯하다. 문구점에서 나오는 같은 반 친구들은 빨간 주머니, 파란 주머니에 들린 리듬악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내 눈에는 친구들 손에 들린 리듬악기만 보인다. 준비물을 못 가지고 가는 나는 아파지고 싶다. 배라도 아팠으면, 머리라도 아팠으면 한다.
“빨리 와.”
넋 놓고 있던 나를 오빠가 부르고 난 뛰어간다.
그 당시의 학교는 절대적 힘을 지녔던 곳이다. 선생님은 절대적 군주다. 선생님 말씀은 법이었고, 그래서 숙제를 안 해가고, 준비물을 안 챙겨가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숙제를 안 해가고, 준비물을 안 챙겨간 학교의 하루는 수치심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고, 선생님이 교단 앞에서 이야기한다. 선생님의 말씀이 뿌옇다. 난 계속 복도 쪽 격자무늬 나무 창문을 본다. 오빠가 언제 리듬악기를 가져오려나 하는 마음이 자꾸만 눈을 창문으로 돌리게 한다. 친구들이 “네”하는 대답을 하고, 나도 건성으로 따라서 대답을 한다.
“네.”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오빠는 도대체 언제 온다는 거야?’
머릿속은 온통 리듬악기뿐이고, 책상 옆에 걸려있는 친구들의 리듬악기만 눈에 들어온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복도로 나가본다. 오빠 교실로 올라가서 오빠를 찾아본다. 오빠가 없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떨구고 다시 1학년 우리 교실로 내려온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학교 현관 쪽으로 나가본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리고 있다. 울고 싶다.
‘하.’
2교시 시작종이 울린다. 다음 시간이면 음악 시간이고, 선생님은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 일어나.”라고 하실 거고, 난 일어나서 선 채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안하다. 불안함에 다리를 떨고, 손톱을 뜯는다. 창문만 계속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연필로 공책 귀퉁이에 ‘리듬악기’ 네 글자를 연달아 쓰고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크게 웃는다. 난 울고 싶은데 친구들은 웃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쿵쾅거린다. 선생님이 뭘 해보라고 하셨지만, 난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리듬악기만을 생각하고 있다.
‘아프다고 하고 양호실에 갈까? 조퇴할까?’
똑똑.
교실 창문 두드리는 소리다. 난 고개를 든다. 창문을 본다. 격자무늬 나무 창문 사이로 짧은 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서 있는 오빠가 있다. 쌍꺼풀진 큰 눈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하얀 얼굴로 오빠가 웃고 있다. 리듬악기를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 검지로 가리키면서 웃고 있다.
“오빠.”
나도 웃는다. 세상이 밝아졌다.
수업이 잠시 중단되었다. 선생님은 오빠에게 리듬악기를 받아서 나에게 전달해주고, 친구들은 일제히 나를 본다. 그 시선이 나쁘지 않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이제 더이상 선생님의 말씀이 뿌옇지 않다. 또렷하게 들린다. 난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한다. 아주 크게.
“네.”
드디어 3교시 음악 시간이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트라이앵글을 치고, 누구보다 즐겁게 캐스터네츠를 딱딱거리며 연주를 한다. 오늘 음악 시간의 주인공은 나다.
오빠는 1교시가 끝나고 학교에 있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갔다 왔다고 했다. 아빠의 친구분이 하시는 서점 겸 문구점에 가서 외상으로 리듬악기를 사 왔다고 했다. 오빠의 수업보다 동생의 준비물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비 맞는 것도 맞을 만했다고 했다. 그날 6학년 오빠는 1학년 동생을 걱정했다. 동생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날의 오빠는 내가 기억하는 오빠의 모습 중 가장 멋있고, 고맙다. 그 시절의 오빠는 그랬었다. 동생들을 걱정하고, 엄마를 걱정하면서 빨리 어른이 될 거라고 했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부자가 될 거라고 했었다.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가족이 생기면서 서로 데면데면해진 요즘이다. 그날의 따뜻하고, 자상했던 오빠는 이제 툭 던지는 챙김을 준다.
"햅쌀 방아 찧어다 놨다. 시간 되면 가져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