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지난날3

첫번째 가족사진

by 꿈부

처음으로 찍은 가족여행 사진이었다.

그가 웃고 있었다. 이 사진을 이렇게 자세히 봐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그때 그가 웃고 있었다는 걸. 그는 입을 다물고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었다. 그의 주름진 웃음을 보면서 그가 그때 행복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가족사진은 그와 함께 찍은 일상의 첫 사진이었다. 29년의 시간 동안 난 그와 단 한 번도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면서 찍은 예식 사진 외에 그와 찍은 사진이 없었다. 어려서는 가난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조금 커서는 그와 함께 한 일상이 없었다. 졸업식에도 그는 없던 날이 많았고, 오던 날도 난 그와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난 그를 미워했다.

매일 악 받쳐 살던 엄마와는 달리 그는 늘 말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TV를 보고, 말없이 밥을 먹고, 말없이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늘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상에서 그에게 했던 말은 “식사하세요.”,“커피 드세요.”“여기요.” 정도가 전부였다. 난 그를 미워했다.

결혼하고 두 번째 맞는 여름휴가였다. 이전 해 시댁과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친정 식구와 가족여행이란 걸 한 번도 안 해봤단 걸 깨달았다. 해보고 싶었다. 자라오면서 여행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었다. 사느라고 바쁘고, 하루하루의 생계가 바빠서 여행은 꿈도 못 꿨었다. 친구들의 여행 경험담에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제쳤다.

‘그런 곳 안 가봐도 돼. TV로 보면 되고, 책으로 보면 되지.’

이런 열등감의 표현으로 나를 위로했었다. 그런데, 시댁과의 여행은 마음을 다르게 했다. 가족들과 맛있는 거 해 먹고, 사 먹고, 래프팅을 체험하고, 예쁜 풍경들 보면서 대화를 했다. 그 시간은 행복을 넘어서 부러웠었다.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우리 형제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다. 난 여행을 계획했다.

적은 돈으로 갈 수 있는 섬을 찾아보았다. 지인이 가보았다고 말하던 군산 선유도를 찾아보았다. 새만금 다리가 개통되기 전이었던 그곳은 군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작은 섬이었다. 2박 3일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일정을 말하고, 휴가를 맞춰보라고 전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저렴한 숙박 시설을 찾았고, 당시 민박집보다 저렴한 공무원휴양소란 곳을 찾았다. 그곳에 방 두 개를 잡았다.

드디어 여행 일이었다.

우린 소형차 세 대로 부모님과 우리 5남매, 그리고 남편과 11개월 된 딸아이, 8살 조카까지 10명의 대이동을 시작했다. 일행이 많았던 만큼 짐도 많았고, 더욱이 가족여행이란 걸 해본 적 없던 엄마는 2박 3일의 일정 동안 10명이 먹을 반찬이며 음식 재료까지 챙겨 넣느라고 짐은 차를 넘어섰다. 그래도 첫 가족여행에 모두 설렜고, 들떠있었다.

“엄마, 이불을 왜 넣느냐고요? 된장, 고추장이 이렇게 많이 필요해요?”

난 엄마가 실어놓은 짐들을 빼면서 소리쳤고,

“거기 이불 빌리는 값도 줘야 하는 거 아녀? 몇 끼를 끓여 먹어야 하는데? 넣어. 가면 다 돈이여.”

엄마는 안 뺀다고 고집을 피웠다.

“야, 이건 좀 빼지. 너무 많아.”

동생들은 서로의 옷 짐 하나를 빼라고 난리였고,

“고모, 우리 진짜 배 타요?”

조카는 여행 중 배 타는 것이 가장 신기하고 기대되는 일인 듯 물었고,

“누나, 가다가 어디 휴게소에 들를 거야?”

남동생은 중간에 들를 휴게소가 어디냐며 거기서 어떤 간식을 먹을지 물었다.

그 소리에 엄마는 다시

“뭔 간식? 쉬지 말고 곧장 가. 돈이여 돈.”

하며 돈 아끼라는 잔소리를 했다. 정신이 없었다. 정말 난리 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우리 옆 어딘가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 옷 챙기셨어요?”

오빠와 남동생이 그의 옷을 챙기면서 물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난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조차도 싫었다.

겨우겨우 사람과 짐을 태우고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에서 선유도로 들어가는 배로 짐을 옮기고, 다시 선유도에 도착해서 휴양소까지 짐을 옮겼다. 섬에서 빌려주는 손수레에 실은 짐은 휴양소까지 가는 동안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걸 주워 올려놓으면, 왼쪽의 것이 떨어졌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손수레로 짐을 옮기는 동안 남은 짐을 지키고 있기가 낯뜨거웠다. 한쪽에 있는 냄비들과 또 한쪽에 있는 음식들과 작은 산을 만든 옷 짐 들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이 쳐다봤고, 우린 웃었다.

“짐 좀 빼라니까.”

서로의 짐을 탓하면서 웃었고,

“우와 저것 좀 봐라.”

엄마의 감탄사에 웃었고,

“까꿍.”

조카가 딸을 보면서 추는 개다리춤을 보면서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그의 웃음을 보지 못했다. 난 그를 보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니 오후 2시쯤이었다.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선유도의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했다. 자전거 대여소에 갔다. 각자의 자전거를 한 대씩 골랐다.

“지환아, 이리 와서 이거 타봐.”

내가 조카의 어린이용 자전거를 골라주고 있을 때였다. 그가 조용히 자전거를 고르러 들어왔다. 그는 앞쪽에 아기를 태우기 위한 보조 의자가 달린 자전거 쪽으로 갔다. 그는 보조 의자가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살피더니, 펜치를 가져와서 한 번 더 조였다. 그리고, 바퀴를 한 번 더 살피고, 자전거를 잡고 안전한지 흔들어서 확인했다. 그리고, 딸아이를 보조 의자에 태웠다. 딸아이가 웃었다.

난 거기서 그를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 그는 많이 말라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체크무늬 반바지와 흰 남방셔츠가 커 보였다. 밤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그의 손목엔 언제 누가 사준 시계인지 은색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젊어서 일하면서 다쳤던 허리는 구부정했고, 빠진 이를 채우지 않은 그의 얼굴은 60대였지만 70대로 보이게 했다. 그가 늙어있었다.

9대의 자전거가 출발했다. 선유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엄마는 이 자전거 여행을 위해 자전거를 배웠다. 몇 날 며칠 막내 남동생을 들볶아가며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했다.

“내가 이 자전거를 배우려고 얼마나 연습했게. 이 나이에 자전거 배우기가 쉬운 줄 아니?”

엄마는 그 나이에 자전거 타기를 배운 것에 뿌듯해했고, 그 자랑을 반복했다. 신나고, 떠들썩한 자전거 타기가 시작되었다. 날씨가 좋았다.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끈적하지 않고 적당히 더운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었다. 난 맨 뒤로 뒤따라가면서 엄마의 자전거를 보고, 동생들의 자전거를 보고, 보조 의자에 딸을 태운 그의 자전거를 봤다. 마음이 일렁였다. ‘행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첫 가족여행이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서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고, 뒤로 산이 보이고, 멀리 바위섬이 보이는 자리쯤이었다. 난 앞에 가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잠깐 서봐요.”

엄마는 뒤를 슬쩍 보더니, 손으로 브레이크를 꽉 잡았다. 엄마의 양어깨가 올라갔다. 자전거가 섰고, 큰소리로 앞에 가는 동생들을 불렀다.

“은선아! 은지야!”

우린 길 한쪽에 자전거들을 세우고 지나가던 여행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으로 온 식구가 함께하는 여행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엄마와 그를 가운데 서게 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극구 반대로 둘은 양 끝으로 섰다. 겨우겨우 각자의 자리들을 찾아서 섰다. 딸을 안은 나와 두 여동생과 조카가 가운데로 섰고, 뒤로 남편과 두 형제가 섰다.

“하나, 둘, 셋.”

여행객의 신호에 맞춰서 사진이 찍혔다. 그렇게 우리의 첫 가족여행 사진이 찍혔다. 2003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사진 속의 난 웃고 있었다. 그와 가족 사이에서 이를 보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가 행복해하며 웃고 있었던 것처럼.

2008년 2월. 그는 떠났다. 나는 그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알았다. 그와 그렇게 허무하게 이별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듯이 미움도 없어졌었다. 그를 땅에 묻는 이별의 순간에서조차도 아프지 않았다. 오열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냥 담담했었다. 엄마의 화가 좀 덜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생각나는 횟수가 늘었다. 우두커니 혼자 있던 그의 시간을 함께 채워주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웠고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더 그리웠다. 커피믹스를 마시다 문득 커피믹스를 좋아하던 그가 생각났고, 배달 오토바이를 보면 그가 타고 다니던 빨간색 ‘88’ 오토바이가 생각났다.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힘들고 외롭던 날에 생각이 났고, 딸 아이의 수능 날 떠 있던 아침 달을 보면서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날 많이 생각났다. 참, 이기적인 나였다. 그리고, 살아있던 그에게 한 번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던 ‘아버지’란 말을 혼자 불렀다. 그를 미워했던 시간에 대한, 떠나보내던 날 눈물 흘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참, 못 된 나였다.

이제야 그에게 진심을 담아서 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전해본다.

“아버지, 죄송했어요. 사랑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난했던지난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