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도. 바람이 불었다.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뼛속까지 시리다. 이런 시린 추위는 항상 그 겨울의 아르바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추위를 머리부터 발끝, 손끝까지 직접 느끼게 했던 그 아르바이트를 함께 한 미정이를 생각나게 했다. 오늘 미정이가 온다고 했다.
도배를 배우기 시작한 지 9개월째였다. 3번째 현장이었다. 3~4개월 단위로 반장의 현장을 따라다니는 아파트 현장 도배였다. 지난해 5월에 시작한 이 아르바이트를 이렇게 오래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듯, 이 아르바이트도 우연히 시작되었다. 부동산 실장을 하면서 본 인테리어 사장님의 수입이 괜찮아 보였고, 인테리어를 배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우연의 생각은 현실로 진행 중이었다. 이제는 원래의 이유는 잊고, 아직 다른 일을 정하지 않은 이유로 계속하고 있었다.
아파트 현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 현장은 주변에 경찰서도 있고, 소방서도 있는 시내 중심이라서 밝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아파트 현장 안으로 들어서면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깜깜했다. 공사 중인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주위를 사방으로 살펴봤다. 아무도 없었다. 내복을 입고, 털옷을 입고, 오리털 조끼를 입고, 다시 오리털 잠바를 입었다. 주머니마다 핫팩을 넣었다. 그래도 추웠다. 털부츠를 신고 발아래 핫팩을 넣었다. 그래도 발이 시렸다. 겨울의 새벽은 추웠다.
도배를 위한 풀 기계, 도배지 등 자재가 있는 풀 방이 있는 동 앞까지 걸어가는 길 주변에는 각목, 철근, 타일 등의 자재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그 위에 눈이 쌓여있었다.
깜깜한 공사현장은 숨이 막혔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했다. 풀 방은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면서도 플래시를 비추며 사방을 살폈다. 이 어둠에서 가장 무서운 건 어딘가에 숨어있을 사람이었다. 숨죽이게 했다. 바람이 들어왔다. 빈 음료수 캔이 굴렀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세워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렸다. 문이 열리고 다시금 오른쪽, 왼쪽으로 플래시를 돌려봤다. 아무도 없었다. 한 층에 세 집이 있었다. 왼쪽 끝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직 현관문이 없었다. 두꺼운 도배지로 임시 문을 달아서 겨울바람을 막고 있었다. 작업등의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그러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거실의 베란다 창문 쪽으로 풀 기계가 있고, 그 맞은편 벽에 방별로 모양이 다른 도배지들이 세워져 있었다. 안방에는 풀과 텍스라고 하는 초배지들이 쌓여있었고, 부엌 쪽 싱크대에 커피믹스와 종이컵, 생수와 커피포트가 놓여 있었다. 풀 기계 옆에 있는 원형 난로 두 개를 켰다. 그리고, 오늘 작업할 양의 풀칠이 된 도배지들이 쌓여있는 작은 방 한쪽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작업화로 갈아 신었다.
6시 45분.
반장과 다른 작업자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눈이 와서 좀 늦는 듯했다. 스티로폼 위에 도배지 상자 종이가 깔린 자리에 벽을 기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밥을 해놓고, 빨래를 돌려놨다. 그리고, 4살 막내 녀석의 옷과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놓고 나왔다. 정신이 없었다. 단, 5분 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60대의 여자 반장과 40대 초반의 남자 부반장, 그리고 미정이었다. 미정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었다. 이혼하고 혼자서 아들, 딸을 키운 지 10년이 넘어간다고 했다. 식당일, 마트일 등을 거쳐서 도배를 배우고 있었다. 현장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왔다.
“언니 뭘 이렇게 일찍 나왔어? 춥지?”
미정이는 언제나 씩씩했다. 그게 어떤 일이든 할 만하다고, 버틸 만하다고 했다.
“언니, 한겨울에 맨손으로 찬물에서 상추 두 상자 씻어봤어? 처음에는 아파. 막 따갑고. 아주 새빨개진 손을 입으로 호호 불면서 씻다 보면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져. 고생은 이런 게 고생이지. 다 참을 만 해지더라.”
나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지금의 도배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미정이는 그래도 도배가 낫다고 했다. 할 말을 잃게 했지만, 난 미정이를 보면서 버티고 있었다.
난 얼른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종이컵 4개에 커피믹스를 넣고, 물을 붓고 커피믹스 봉지 끝으로 섞었다. 공사현장에 티스푼은 없었다. 반장과 부반장, 미정이에게 커피를 주고 나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이제야 잠이 좀 깨는 듯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반장은 오늘은 몇 층까지는 끝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도배지 날라야지?”
커피를 마시자 40대 부반장이 말했다.
미정이와 나는 현장용어로 ‘시다’였다. 반장이 풀칠할 때 도배지를 날라주고, 풀을 개어주고, 물을 나르고, 도배 밑 작업을 하고, 쓰레기 청소를 하는 보조였다. 위 작업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작업 시작 전에 미리 준비해놓고, 모든 잔심부름을 해야 했다. 처음 현장부터 지금까지 줄곧 짝꿍이었다.
미정이와 난 손수레에 풀칠 된 도배지들을 싣고 오늘 작업할 호수별로 도배지들을 날랐다. 풀칠 된 실크 도배지는 무게가 상당했다. 무늬가 방별로 달라서 봉지에 씌어 진 호수대로 정확하게 날라야 했다. 손수레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중간에 놓고, 난 왼쪽으로 미정이는 오른쪽으로 날랐다. 어슴푸레 어둠이 가시고 있었다.
난 반장과 한 조가 되고, 미정이는 부반장과 한 조가 되었다. 각자의 허리춤에 풀 묻은 벽지를 닦을 물걸레와 도배 끝 선을 정리할 칼과 도배 자, 도배지를 붙이는 도배 붓 등의 도구들을 넣은 허리띠를 찼다. 그리고 손에는 차가운 물을 데워 줄 돼지코 열선이 담긴 물통들을 들었다. 올라가서 도배할 우마라고 하는 작업대도 들었다. 긴 우마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작업 시작이었다.
우마에 올라간 반장의 손이 빨라졌다. 나도 덩달아서 몸이 빨라졌다. 반장이 벽 위에서 반 정도 붙여놓은 벽지를 난 아래서 나머지 반을 붙이면서 마무리했다. 반장이 한쪽 벽을 마치고 다음 벽으로 옮겨갔다. 난 반장의 우마에 풀 발린 벽지들을 올려줬다. 반장이 바르는 동안 덜 붙인 아래의 반쪽 벽지들을 붙였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했지만, 일어나려면 무릎이 아팠다. 우마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그것도 무릎에 무리를 줘서 도배하는 사람들의 무릎이 성하지 않았다. 어느 방 하나를 맡아서 붙이기도 했다. 이제 제법 속도 늦은 숙련자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방 6~7개를 바르는 동안 일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고 나면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으로 내려갔다.
동그란 접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고, 국그릇에 국을 담았다. 밥과 반찬이 섞였다. 난 이 접시 식판에 담긴 밥에 적응하지 못했다. 김칫국물과 제육볶음 양념과 섞인 밥을 보면 슬펐다.
“어쩌다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언니, 먹어. 먹어야 일하지. 버텨야 다음 일하지.”
“그러게.”
난 국에 말아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국에 말았는데도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서너 숟가락을 먹고, 미정이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 난 음식들을 다 먹지 못했다. 식판의 남은 음식들을 버렸다. 그 원형 접시 식판의 밥은 현장 아르바이트를 마칠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우린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나와서 풀 방으로 올라왔다. 미정이가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내가 언니 때문에 빵을 챙겨 다닌다. 반장님 오시기 전에 얼른 먹어라.”
가슴으로 울컥함이 밀려왔다. 위아래 입술을 안으로 접어 넣고, 고개를 젖혔다. 눈물이 고였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지는 것 없이 더 밑으로만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힘들었다. 미정이가 빵을 입에 넣어줬다. 눈물의 빵이었다.
“뭘 울어? 그렇게 감동할 만큼 비싼 빵 아냐.”
미정이는 날 웃게 했다.
“언니, 나는 가방끈이 짧아서 이 일 계속 해야 해. 그런데 언니는 아닌 것 같아. 다시 언니 일 찾아가. 언니가 잘하는 일 해.”
미정이는 나를 위로했다.
그 하루의 일당은 45,000원이었다. 그 추위와 육체적 힘듦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 작았지만, 내 인생의 반환점인 최저점을 견디기 위한 정신적 체력이 되어준 45,000원이었다. 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아픔이나 힘듦과 비교하면 나의 현실은 견딜만한 것임을 깨닫게 했었다. 특히 미정이는 불만투성이였던 내 삶에 관한 생각들을 리셋시켜 줬었다. 세상이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더라고 가르쳐줬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프고 힘들 때 ‘이쯤은 살만한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난 그 겨울의 그 현장을 끝으로 도배를 그만뒀다. 미정이는 아직 도배를 하고 있다. 이제는 일당이 20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몹시 추울 때마다 한 번씩 미정이에게 전화했다.
“미정아, 요즘은 어디서 일해? 놀러 와. 소고기 먹자.”
며칠 전 통화하고 미정이가 왔다. 풀 묻은 청바지에 검은색 오리털 잠바를 입고 왔다.
“언니, 나 소고기 많이 먹는데, 괜찮겠나?”
“하하. 많이 먹어. 내가 너한테 얻어먹은 빵으로 살았는데. 고마웠다.”
그 아르바이트는 겨울이란 계절 안에 가장 깊게 자리잡은 추억이 되었다. 뼛속이 시리면 생각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