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헤어져야한다는 걸 알게 된 여섯 살 딸을 보며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친척들이 모두 떠나 북적함이 사라진 집 안에서 느껴지는 헛헛함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도 힘겨워했었다. 허전함에 대해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으면, 이러한 감정에 충분한 면역을 갖추어, 별 게 아닌 듯 얘기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부럽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많은 부분에서 여운이 짙었다. 여운에 휘청거리지 않고, 그저 예사롭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번번이 그 바람이 어그러지는 상황 속에서 덤덤하게 무언가를 보낸다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지 싶었는데, 시간이란 참으로 강한 처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거듭 겪어낼수록, 나의 엄마 아빠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의 면역을 얻은 듯했다.
첫째 딸 라희가, 어제 가을이 언니네가 서울로 떠나고 나니 “엄마, 나 눈물 날 것 같아. 벌써 루아언니가 보고싶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너는 왜 이마저도 나와 닮았니. 그 말을 들은 다정이가 라희에게 그런다. “원래 남겨지는 사람이 힘든 법이야. 떠나고 난 자리의 허전함을 느끼고 다시 채우는 건 남겨진 사람 몫이거든. 다음에는 펜션에서 만나 동시에 떠나는 걸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를 반가움에 얼마간 다정이를 쳐다보았다. “오빠. 오빠도 그런 생각한 적 있었구나? 나는 나만 그런 생각 갖고 산 줄 알았는데. 난 내가 늘 떠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기적이지만 내 마음은 아쉬움이 덜해지니. 남은 감정은 상대가 처리하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그도 했었다니. 이 얼마나 위안인가. 라희의 감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다행인가.
이모네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라희, 유채. 세 밤 자면, 두 밤 자면, 드디어 한 밤만 자면. 하루하루 지워가며 바라던 날을 맞이한 이 둘은, 막상 그 날이 오자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예~~~ 오늘은 루아언니, 로운이 오빠 오는 날! 예~~”라고 환호하는 둘째 유채. “일요일엔 다시 서울로 가야하잖아. 또 헤어져야 하니까 벌써 슬퍼져. 눈물 나 엄마”라고 힘없이 뱉는 첫째 라희. 만나면, 떠나야 함을 아는 너를, 알아버린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아주 천천히 이해하기를 바랐는데, 너는 세상을 벌써 알알이 느끼고 있구나.
“헤어져야 하는 시간은 반드시 와 라희야. 그러니,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 즐겁게 놀면 되는 거야. 라희가 엄청 신나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 아빠는 좋았어. 잘한거야. 그렇게 하면 돼. 보고싶은 건 당연한 거고, 아쉬운 건 당연한거야. 아빠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라희가 멋져. 보고 싶으면 울고, 또 편지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그러다 또 만나서 재밌게 놀면 돼.” 그가 라희에게 건네는 말을 듣는데, 왜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는지 모르겠다. 어린 내가 듣고 있는 것 같기도, 지금의 내가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쉽고 허전하고 보고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라고, 그 마음을 내보이는 것도 건강한 거라고. 만나면 언젠간 헤어져야하니 만났을 때 그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당연한 게 당연한 걸 깨닫기까지 인간은 시간이라는 값을 치러야 하지만, 치러야만 온전히 깨닫게 되지만, 라희도 우리처럼 그런 시간을 겪어야만 하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건넨 말이 삶의 어느 순간 떠올라, 자신의 감정이 응당 그럴 수 있는 것이라는, 그래서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충분히 누릴 수 있다면, 그 힘으로 어느 날, 조금은 면역이 생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그려보는 지금, 여운을 느끼는 라희의 섬세함이 더이상 안타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