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을 꿈꾸는 수험생, 영주에게

열아홉의 나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by 양파로운

점심 자습 시간 임장 후 교실을 나가려는데 영주가 황급히 나를 뒤따른다. 어째 수능이 다가올수록, 더 말라가는 느낌이 드는 영주이지만, 커다랗고도 맑은 눈을 반달로 만들어 내게 웃어주는 건 변함이 없다. “선생님, 저 마음이 자꾸 바빠져요. 할 건 많은데 수능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고, 파이널 풀어보아야 할 건 많은데 자체 선별하는 것도 부담되고....... 시간이 너무 없어요.” 마지막 말을 뱉는 영주의 목소리가 떨린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웃고 있는 눈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눈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다.


2월, 올해 내가 맡게 된 아이들 이름과 성적을 훑어보다가, 내신 평균 1.04라는 숫자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렀다. 김영주. 수업 시간에 만나본 적이 없는 학생이라, 이름만으로 외양을 그려보았다. 대찬 기세가 서린 건장한 체격의 학생이 그려졌다. 동시에 시선이 머무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걸어왔을지 가늠해 보았다. 고로 궁금해졌다, 그 아이가.


흔히 말하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체격의 영주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호기심 어린 표정, 총기 있는 눈빛이 특징인 영주의 이 기세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어려웠다. 똑똑하여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는 여자를 귀엽게 이르는, ‘또순이’라는 단어와 참 잘 어울리는 아이. ‘또순이’의 표본과도 같은 영주를 보고 있자니 작은 체구 속 내재한 ‘깡’이 상당하다는 게, 결코 만만찮다는 게 느껴졌다. 악착같이 끌고 가는 힘이자 악착같이 버텨내는 힘. 이 힘이 영주를 열아홉까지 끌고 왔음이 분명하다. 내가 그 힘으로 열아홉까지 끌고 왔던 것처럼. 영주를 보면 자꾸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겹쳤다. 영주의 표정만 보아도 영주가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힘든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읽히는 순간, 얼마간은 모른 체 하며 토닥여만 주다가, 조금 오래간다 싶을 때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었다. 언제 어느 순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가도 너는 한결같은 자세로 앉아 공부하고 있다고, 네가 네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대하는지 다 느껴진다고, 이런 너이기에 자연스레 너를 응원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본분을 다하는 삶을 보면 숙연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너는 나를 그렇게 만든다고. 그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영주에게 그대로 들려주었다. 부럽다는 말과 함께. 고등학교 전체 내신 평균 등급이 나오는 3학년 1학기 마지막 시험 날, 누구보다 영주의 1등급을 바랐던 건, 나도 모르게 영주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였으나, 한 끗 차이에 낙담해야했던 나는, 나의 과정이 어떠했건, 결과로 증명해보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오랫동안 나를 좀먹어야만 했다. 결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과정을 늘 증명해내야만 하는 삶은 얼마나 번거롭고도 지난한지. 영주만은 과정에 대한 보답을 꼭 결과로 받기를, 결과로서 과정이 긍정되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삶을 살기를, 곱씹고 되뇌었다. 2학년 때까지 만들어 놓은 1.04를 지켜낸 그 날, 가슴 깊은 곳부터 벅차오르던 마음은 결코 영주가 벅차했을 감정에 뒤지지 않았을 것임을 확신한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맞추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 영주의 번잡한 마음을 듣는데, 영주 역시 여느 수험생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불안과 의구심을 겪어내느라 애를 먹고 있는 영주가 정말이지 반가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직하게 온몸으로 뚫어내고 있는 영주는, 거쳐야 할 감정 역시 그렇게 거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주야. 수능 날까지 모든 걸 끝내고 완벽하게 완성이 된 모습으로 시험장에 가고 싶은데,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느낌이지? 선생님도 물론 그랬지. 아직 경험이 적은 열 아홉 시절엔 더더욱. 살다보니 자연스레 깨달아진 게 있는데, 이 진리를 깨달은 순간, 이걸 열아홉 때에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었어. 바로, ‘완성’이란 없다는 거야. 특히 공부에 ‘완성’은 없어. 수험생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시험장 들어가기 전까지 그저 충실히 공부한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뿐이야. 쌓인 ‘오늘’들의 힘을 믿으며 시험장에 들어가면, 네가 할 일은 다 한 거야. ‘완성’을 염두하기에 많은 게 불안하고 초조해져. ‘완성’이란 없다는 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단다. 힘 빼고, 하던 대로, 최선의 ‘오늘’들만 쌓아 줘.


영주와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몇 더 있지만, 그중에 네가 우리 반 학생이 되어주어 ‘복’이라 느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본분을 다하는 삶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경이와, 진실되고도 다정한 시선의 따뜻함을 선물 해주는 영주. 흔치 않는 선물을 매일 받고있는 올해가 그러므로 더없이 값지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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