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것들에 대하여
아버지는 젊은 시절, 베트남의 뜨거운 정글로 파병되었다.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던 전우들은 이미 오래전에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지만, 아버지는 유독 무심했다. 신청하지 않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한다. 자존심이었을 수도, 번거로움이었을 수도, 혹은 그저 '굳이'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5년 전, 아버지가 암을 이겨내고 나서야 뒤늦게 절차를 밟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받게 된 인정. 늦게 도착한 자격. 그리고 조용히 찾아온 보상.
나는 그 자격 덕분에 군에서 운영하는 마트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이 그 첫 방문이었다. 입구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맞추고 있었다. 카트를 밀기 어려울 만큼 붐볐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어지럽지 않았다.
어떤 물건들은 확실히 저렴했고, 어떤 것은 일반 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했다.
늦게 도착한 것들도, 제 시간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오후에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원고를 다시 써야 했다. 전날 밤 만난 그는 내 초안을 훑어보며 몇 가지 방향을 짚어주었다. 집에 돌아와 원고를 열어보니, 거의 70퍼센트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동차 부품 산업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하고 정리해 넣은 문장들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붙들고 있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It wasn't all for nothing."
처음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폐기될 문장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자료를 다시 읽으며 나는 그가 회의 자리에서 했던 말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더 물어봐야 하는지도 선명해졌다.
원고는 다시 써야 했지만, 그 시간은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늦은 신청도 그랬다. 젊은 날의 기록이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와 효력을 갖게 된 것처럼, 내가 버려야 했던 문장들도 다른 형태로 남아 있었다.
모든 일이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빈손으로 남는 시간은 생각보다 드물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괜히 애썼다고,
아무 소용 없었다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은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된 적은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