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일은 조금 두고 볼까 싶다가도, 타이밍을 놓치면 다신 돌이킬 수 없는 정원만의 시간이 있기에 늘 마음이 바쁘다.
지난주에도 그랬다. 더없이 향기로운 오렌지꽃과 라일락 향기를 천천히 즐길 틈도 없이, 나무와 텃밭에 영양제를 주고, 장미에 막 붙기 시작한 진딧물을 잡아 주고, 화분 갈이도 몇 개 하고, 텃밭 가장자리로 번져 나온 잡초를 뽑느라 하루를 종일 동동거렸다.
모자를 벗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낼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팔목에 난 작은 상처 하나. 벌레에 물린 것인지, 나뭇가지에 스친 것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그저 흔한 상처였다. 이 정도야 가드닝을 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그 ‘별것 아닌 것’은 조용히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가려움은 점점 깊어졌고, 피부는 단단하게 붓더니 이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물집을 만들었다.
결국 병원까지 가야만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잎사귀 뒷면을 하나씩 뒤집어 보고, 줄기 사이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땅도 곳곳을 들여다보았다. 분주히 오가는 개미들, 흙 속으로 몸을 숨기는 지렁이, 그리고 나뭇가지에 점처럼 붙어 있는 작은 벌레들까지. 그동안 아름다운 꽃과 잎의 빛깔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갓 피어난 장미 봉오리엔 진딧물(Aphids)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연두색의 이 작은 벌레들은 식물의 눈물을 마시듯 수액을 탐닉한다. 이것 말고도 잎 뒷면에 미세한 거미줄을 치며 잎을 누렇게 변색시키는 응애 (Spider Mites), 서늘한 밤에 나타나 어린 모종을 통째로 갉아먹는 달팽이와 민달팽이 (Snails & Slugs)까지…, 하나씩 헤아리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존재들이 이 정원에 함께 있었다.
솔직히 이런 것들 때문에 한 번씩은 가드닝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써 가꾼 것들이 하루아침에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살충제 진하게 뿌려 단번에 정리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실제로 처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을 때의 나는 그랬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없애야 안심이 되었고, 그것이 정원을 잘 돌보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원은 그럴수록 더 자주 어긋났다. 벌레는 잠시 사라졌다가 더 많이 돌아왔고, 어느 해에는 꽃이 예년만 못하게 피기도 했다. 곤충들을 없애면 모든 것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는 쪽으로 그리고 좀 더 자연스런 치유법으로 정원을 가꾸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장미 봉오리에 붙은 진딧물을 오래 바라보고 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정원의 청소부이자, 정원사의 아군인 무당벌레(Ladybugs)들이 날아온다. 시에라 산맥의 서늘한 바람을 타고 온 무당벌레 군단이 오렌지빛 날개를 반짝이며 잎사귀 사이를 누비는 장관은, 독한 약으로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면 끝내 보지 못했을 모습이다. 그뿐일까? 담장 끝이나 마른 가지 위에서, 마치 명상하는 수도자처럼 고요히 멈춰 서 있다가 정원의 균형을 깨뜨리는 침입자가 나타나면 번개처럼 낚아채는 사마귀(Praying Mantids)도 있다.
또 붕붕거리며 부지런히 꽃사이를 오가는 꿀벌(Bees)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이 꽃의 안부와 저 꽃의 인사를 전하는 정원의 메신저일 뿐 아니라 열매라는 기적까지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의 단단한 진흙땅을 묵묵히 일구는 지렁이(Earthworms) 들은 정원의 심장과도 같다. 화려한 날개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지만 쉼 없이 땅속을 지나다니며 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들이 만든 길은 식물의 뿌리가 숨을 쉬는 통로가 되고, 그들이 남긴 흔적은 영양가 높은 비료가 된다.
해충이 너무 많아지면 유익충이 찾아와 균형을 맞추고, 그 균형이 깨질 때쯤이면 정원사가 아주 조금 손을 보태는 정원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 나는 믿어왔다. 그랬는데 이번 일은 그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벌써 열흘 이상을 가려움 때문에 잠을 설치고, 붓기에 물집으로 일상이 불편해지고 나니, 자연의 균형에 맡기던 내 방식이 과연 맞는 건지 자꾸만 의심이 든다.
누군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철쭉과 라일락, 장미가 아름다운 요즘 나의 정원.
저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올해 4월은, 어쨌든 나에게 참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