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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sum Dec 13. 2023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을 해달라고...

아침 7시 30분. 

초등 5학년 딸아이를 깨우는 시각. 


"딸! 일어나야지~" 

언제나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둘째는 

조금만 늦어도 큰일이 난 것처럼 난리가 난다. 

(휴~ 오늘은 늦지 않게 깨웠다) 


아침식사 메뉴는 주먹밥이다. 

어제 아침밥으로 김밥을 말아 줬더니 

주먹밥이나 샌드위치도 먹고 싶다 

했던 말이 생각나서 분주하게 냉장고를 

뒤져 폭탄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둘째는 식탁에 앉더니 말없이 멍때리고 앉아 있다. 

"엄마, 요즘엔 식사 때만 되면 입맛이 없어" 

멍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얘기한다. 


아~놔! 

뭘 만들어줘도 잘 안먹는 애들을 10년 넘게 키우면서 자리잡은 좌절감이 또 올라온다. 

어디 가서 뭘 해도 잘한다 소리만 들으면서 컸던 나인데

10년 넘게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질 않는 영역이 바로 아이들 식단이다. 


오늘도 실패인가 보다. 

아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낌새가 보인다. 

그래도 가볍게 짜증을 물리치고 상냥하게 얘기한다. 


"한 며칠 굶어봐 그럼 엄청 입맛 좋아질거야" 

그냥 가볍게 던진 얘기였는데 딸의 언성이 확 높아지며 갑자기 급발진한다. 

"며칠을 굵으라고? 진심이야?" 

(뭐야 이 밑도 끝도 없는 급작스런 클라이막스는??)


"요즘엔 간헐적 단식도 많이들 하잖아. 디톡스 몰라?" 

농담으로 넘기고자 다시 가볍게 응대해본다. 

"엄마가 성장기 애들은 굶으면 안된다면서!" 여전히 언성이 높다. 

"한끼 정도 안먹는 건 괜찮아." 

"아깐 며칠을 굶으라면서?" 

"아니 진짜 며칠을 굶으라는 게 아니라 한끼 정도 안먹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거지.."

"아까 했던 말이랑 다르잖아?!"


여기서부터는 둘째의 높은 언성과 싸우자는 말투에 아까 눌러놓았던 짜증까지 확 밀고 나온다. 

그렇다. 나는 저 잼민이의 공격에 여지없이 또 낚여버리고 말았다. 

뚜껑!! 

이미 날아가버렸나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야! 너 먹지마" 

"누가 안먹는대? 

그런 해결책 같은 거 말고 그냥 공감을 해달라고!!"

 

말문이 탁 막힌다. 

뚜껑이 안 열렸더라면... 

"아 그랬구나 우리 딸. 알았어. 엄마가 앞으로는 공감을 표현할게" 했을텐데...

이미 뚜껑이 열려서 공감은 개뿔. 

싸가지 없다는 생각밖에 안나고 괘씸하다. 

그래도 여기서 입을 열면 나쁜 말만 나올테니 일단 입을 다물고 방으로 피신한다. 


방에 들어오니 

전에도 이런 대화 끝에 딸래미가 

'공감을 해달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늦었다. 한번 열린 뚜껑은 쉽게 닫히질 않는다. 에라이~ 


이따 학교 갔다 올때쯤이면 이 욱함이 사라지겠지 싶어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그때 쭈뼛쭈뼛 딸래미 등장.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눈치보면서 어슬렁거린다. 


안아주고 싶지만 이미 열린 뚜껑탓에 암말도 못하고 책만 보고 있다. 

급기야 딸래미가 먼저 손을 내민다. 

"엄마 안아주면 안돼?" 

아무말 없이 그냥 안아주면 좋았을 걸 굳이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온다. 

"맘대로 해. 그렇게 다른 사람 기분이나 감정은 상관도 안하고 계속 그렇게 해봐 어디." 

안아줄 거면 기분 풀고 안아주든가 뭐라고 할거면 그냥 뭐라고 하든가 

언행불일치도 이런 언행불일치가 없다 으이구~ 


"엄마 미안. 엄마 기분은 상관도 안하고 아무렇게나 말해서 미인해." 

12살 딸아이가 46살인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이미 졌다. 

사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진 싸움이었다. 

공감을 원하는 딸아이에게 며칠 굶으라며 해결책을 냅다 들이밀었으니 

듣는 입장에선 '으이구 꼰대' 소리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이제서야 내가 딸아이를 여전히 애기처럼 대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딸아이의 사과덕분에 얼른 정신차리고 어른이의 정체성을 데려 온다. 


"엄마는 너가 1등하고 좋은 학교 가고 멋진 직업 갖고 성공하고 그런 거 안바래. 

그냥 다른 사람 마음도 배려할 줄 알고 당당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엄마는 너 아침 차려 줄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넌 편하게 식탁에 앉아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입맛 없다고 하니까... 너가 진짜 너만 생각하는 싸가지 없는 딸래미로 클까봐 걱정이 앞서서 화가 났어. 미안해."  


딸래미는 빨리빨리 커가는데 내 마음은 아이의 성장속도를 못 쫓아가고 늘상 지각이다. 

정신차리고 딸래미의 성장속도에 집중하자. 


나도 같이 커야할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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