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현재 한국의 시니어 주거의 한계점과 대안
실버타운을 조사하며 든 첫 질문이었다.
외관은 고급 리조트를 연상케 한다. 깔끔한 건물, 넓은 커뮤니티 라운지, 정돈된 산책로까지.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니, '살 수는 있어도 살고 싶은 집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수개월간 한국과 일본의 시니어 주거 상품을 비교 리서치하며, '고령자가 마지막으로 머물 공간'이 아닌, ‘새로운 일상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주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이번 글에서는 실버타운을 리서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시니어 주거의 시장 포지션과 공급 구조, 그리고 놓치고 있는 정책적 과제들을 짚어본다.
현재 한국의 고급 실버타운은 자산 상위계층을 타깃으로 한 초고가형 니치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더클래식 500’은 수억 원의 보증금에 월 수백만 원 수준의 서비스비용을 요구하며, 입주자의 다수는 의사·교직·고위직 출신이다. 중산층 이하 고령자를 위한 상품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 분포하지만, 의료 접근성·문화 인프라·커뮤니티 연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도심 기반의 중위소득 고령자용 실버타운은 왜 없을까?”
삶의 질과 접근성을 함께 충족하는 ‘세미-프리미엄’ 등급의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공급 포트폴리오는 매우 편향되어 있다
실버타운은 하드웨어만 보면 이상적이다.
헬스케어, 문화 프로그램, 영양식 제공 등 ‘돌봄’의 기본은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몇몇 입주자들은 “친구 사귀기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단절된 공동체 감각,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은 때로 더 큰 고립감을 만든다.
‘고독사를 막기 위한 장치’보다, ‘삶의 연결을 설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일 세대만 모여 사는 구조보다, 3세대가 공존하는 마을형 주거, 혹은 노년 일자리를 함께 고려한 공간 설계가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일본은 민간 보험사 중심의 시니어 주거 상품이 전국적으로 고도화되어 있다.
베네세 케어, 솜포 케어 등은 요양, 의료, 문화, 커뮤니티 기능을 하나의 복합 시스템으로 통합했고, 이용자의 경제력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계층 구조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국가 요양보험 제도가 결합되며 진입장벽을 낮췄다.
반면, 한국의 경우 공공 고령자 주거는 도입기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민간 상품은 초고가 모델 위주로 양극화되어 있다. 공공임대 내 고령자 특화층은 공간만 할당되어 있을 뿐, 돌봄·관계·정서적 지원이 결여된 구조가 대다수다. 최근 KB금융, 신한라이프 등의 민간 기업이 시니어 주 사업에 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는 아직 상품화 가능성 테스트 수준에 가깝다. 한국형 베네세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과 정책기관 간 리빙 파트너십 모델 개발이 핵심이다.
주거는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와 회복이 이뤄지는 삶의 기반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삶의 속도를 조절하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 현재 한국의 실버타운은 공급자 중심 논리, 고소득 계층 중심의 포지셔닝에 갇혀 있다. 이제는 ‘고령화’라는 인구통계 현실을 넘어, 시니어 주거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재정의할 시점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현장을 더 걷고, 보고, 기록하고 싶다. ‘돌봄이 일상화된 주거’, ‘고립 없는 노년의 구조’를 상상하며,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더 나은 모델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