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모두가 같은 AI를 쓰던 시절
2018년, 나는 개발 전문 기업에서 비개발 직무로 일하다가 전혀 다른 성격의 기업으로 이직했다.
새 직장에서 처음 맡은 업무는 수요 예측이었다.
회사에서 하던 방식은 단순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함수, 그리고 보기만 멋진 피벗테이블이
전부였다. 나는 이직자의 열정으로 이전 회사 개발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와 구글 검색을 끌어모아
파이썬으로 몇 가지 수요 예측 모델을 만들어 보았다. scikit-learn의 랜덤포레스트 모델이었다.
얼마 후, 회의에서 나는 자신 있게 발표했다.
“이 모델을 쓰면 기존 엑셀 방식보다 더 정확하게 수요를 예측할 수 있으며...”
나는 동료들의 놀라움과 호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파이썬이요? 그거 개발자들 전용 언어 아닌가요?”
“우리가 그런 걸 배워야 합니까? 수요는 도메인 지식이 더 중요한데…”
“AI가 예측한다고 해서 정말 더 나을까요? 현장 경험은 무시 못하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파이썬은 ‘전문 개발자들만의 영역’이었고,
AI는 ‘실무에 쓰기엔 이른 기술’로 여겨졌다는 것을.
그 시절 회사의 공기는 명확했다. 수요 예측은 도메인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AI는 아직 시기상조다.”
“수요는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명절, 휴가철 같은 변수들을 기계가 어떻게 이해하겠나.”
실제로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코로나19 같은 돌발 변수가 터지면 AI 모델은 무력해졌다.
반면 사람들은 현장에서 상황을 감지하고 빠르게 조정했다.
내가 사용한 건 고작 몇 줄의 코드였지만, 동료들에게는 ‘개발자가 괜히 복잡하게 하는 일’로만 보였다.
어떤 이는 “그런 걸 배워서 뭐 하려 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당시(2019년) 사람들의 생각은 이랬다.
파이썬 = 프로그래머 전용 도구, 일반 직원이 배울 필요 없음
엑셀로 충분한데 왜 굳이 다른 걸 쓰나
AI = 아직 실무에는 무리, 현장 경험이 더 중요
그리고 지금(2025년)은 이렇게 바뀌었다.
파이썬 = 데이터 분석의 기본, 비개발자도 당연히 사용
엑셀만으로는 한계가 뚜렷
AI = 선택이 아니라 필수, 오히려 AI가 없으면 경쟁력이 부족
불과 몇 년 사이에 인식의 지형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돌이켜보면 동료들의 회의적인 반응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당시 AI 모델은 분명 한계가 많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취약 – 코로나19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예측 불가
맥락 이해 부족 – 왜 수요가 늘었는지 설명 불가능
설명력 부족 – 랜덤포레스트가 뱉어낸 결과를 현업에 설명하기 어려움
즉, AI는 데이터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단지 패턴을 “맞춰” 보는 수준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당시 “AI는 시기상조”라던 바로 그 사람들이 “AI 없이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변했을까?
생성형 AI의 등판 – AI가 창조적 작업까지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
경쟁사의 성공 사례 – “남들도 쓰는데 우리만 안 쓰면 뒤처진다”는 압박
도구의 민주화 – 코드를 몰라도 AI를 활용할 수 있는 AutoML, No-code의 확산
같은 사람들이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참 순수했다.
AI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같은 기준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영역: 문제 정의, 도메인 지식, 예외 대응, 최종 의사결정
AI의 영역: 대규모 데이터 처리, 패턴 인식, 반복작업 자동화
누구도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믿지 않았고, 누구도 AI를 완전히 무용하다고 치부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AI가 우리 일에 도움이 될까?”를 함께 고민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 GPT-3의 등장
AutoML, No-code 도구의 확산
의료, 번역, 자율주행 등 성공 사례의 확산
“AI는 어렵다”는 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 30일, ChatGPT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꿨다.
그날 이후 논쟁은 “AI를 쓸까 말까”에서 “누가 AI를 더 잘 쓰느냐”로 옮겨갔다.
AI는 인간을 보완하는 도구에서, 인간과 경쟁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은 모두가 같은 AI를 쓰던, 그래서 같은 출발선에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각자 자신만의 데이터를 쥐고, 자신만의 AI를 키워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 질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