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나는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다 막혀버렸다. 머릿속에는 구조가 그려져 있었지만
문장이 한 줄도 이어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장난반, 진심반으로 ChatGPT에 이렇게 입력했다.
“우리 회사와 글로벌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의 업무협약서를 작성하려고 해. 공무원 스타일로 작성해줘.”
잠시 뒤 화면에 나타난 텍스트를 보고 나는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 수정이 전혀 필요 없는
완벽한 문서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가 원하는 톤과 흐름을 갖춘 문장이 줄줄이 출력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AI는 명확했다. 데이터를 넣으면 분류하고, 패턴을 찾고, 숫자를 예측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AI는 논리를 세우고, 문장을 만들고, 심지어 설득력 있는 흐름까지 갖추고 있었다.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나는 다시 시험 삼아 물었다.
“머신러닝 기반의 수요예측 알고리즘을 만들어줘.”
화면에 출력된 건 내가 예전에 직접 작성했던 랜덤포레스트 코드보다 훨씬 정교하고 다양한 알고리즘이었다. 단순히 코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전처리 방법, 검증 절차, 모델 비교 방식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더 놀라운 건 문체였다. 기계적인 설명이 아니라 매끄럽고 설득력 있는 문장이었다.
비유를 들어 맥락을 설명하고, 문단을 깔끔하게 이어가는 방식은 전문가의 강연 원고처럼 보였다.
“이게 정말 기계가 쓴 글인가?”
그동안 AI는 계산과 예측의 영역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ChatGPT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과 사고의 경계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ChatGPT 소식은 금세 회사 안에 퍼졌다. 처음엔 모두가 신기해하며 떠들었다.
“AI가 소설도 쓴대요!”
“번역이 사람보다 더 자연스러워요.”
“코딩도 한다던데, 사실인가요?”
하지만 열기가 가라앉자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동료들의 보고서나 이메일을 읽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문장, 평소에 안 쓰던 표현인데?”
“보고서가 갑자기 지나치게 매끄러워졌네?”
특히 글쓰기를 늘 어려워하던 동료의 문서가 갑자기 눈에 띄게 좋아졌을 때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ChatGPT다.”
회의 분위기도 변했다. 누군가 발표를 하면 겉으로는 칭찬이 오갔지만, 속뜻은 달랐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직접 생각하신 건가요?”
“자료 출처가 어디예요?”
“평소보다 문장이 훨씬 좋아졌는데, 특별한 비법이라도?”
겉으로는 호의적인 질문이었지만 사실은 “AI 쓴 거 아니냐”는 은근한 추궁이었다.
어떤 동료는 노골적으로 물었다.
“이 글, 정말 사람이 쓴건가요? ChatGPT로 쓴 거 아니에요?”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GPT를 사용했지만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이, 전 그런 거 할 줄 몰라요.”
진짜 혼란은 그다음부터였다. ChatGPT로 초안을 만들고 내가 다듬어 완성한 문서.
그것은 과연 “내 작품”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도구라고 생각했다.
워드프로세서: 내가 생각한 걸 타이핑해주는 도구
검색엔진: 내가 찾는 정보를 대신 모아주는 도구
그런데 ChatGPT는 달랐다.
ChatGPT: 내가 못 생각한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하는 도구?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발상을 던져주니,
점점 내가 기여한 부분과 AI가 만든 부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럼 이 아이디어의 주인은 누구지? 나인가, AI인가?”
개인의 혼란은 곧 조직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단호한 지침이 내려왔다.
“업무에 ChatGPT 사용 금지. 외부 서버 입력은 곧 정보 유출이다.”
그러나 경쟁사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회사의 태도는 모호해졌다.
“단순 업무에는 허용 하지만 창의적 업무에는 금지.”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단순이고 무엇이 창의적인지 아무도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현실적인 합의가 생겼다.
“쓰되, 말하지는 말자.”
그때부터 AI 사용은 은밀한 행위가 되었다. 동료들을 관찰하면 몇 가지 패턴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문장이 매끄러워진 사람
평소 쓰지 않던 표현을 쓰는 사람
아이디어 회의에서 유난히 적극적인 사람
발표 자료 퀄리티가 급상승한 사람
그러나 아무도 직접 묻지 않았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GPT를 쓰되 최대한 내 흔적을 남겼다.
내 위장술은 이랬다.
문체 바꾸기: GPT 특유의 매끄러운 문장을 일부러 거칠게 변형
구조 비틀기: 지나치게 완벽한 논리를 일부러 틀어버리기
개인 경험 삽입: AI가 알 수 없는 내 이야기를 끼워 넣기
적당한 실수: 너무 완벽하면 오히려 들킬까 봐 일부러 오타 남기기
아이러니하게도 AI 사용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상사의 칭찬이었다.
“보고서 진짜 잘 썼네.”
사실은 GPT가 초안을 쓰고 내가 다듬은 문서였다.
기뻐야 할지 죄책감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더 복잡한 건 그 문서가 정말 좋은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GPT의 아이디어에 내 경험을 보태자 예상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럼 이건 AI의 성과인가 내 성과인가?”
몇 달이 지나자 새로운 위계가 생겼다.
AI를 쓸 줄 아는 사람 : ChatGPT 기본 사용법을 아는 사람. 이제는 기본 소양일 뿐.
AI를 잘 쓰는 사람 : 정교한 프롬프트 작성, 결과물 최적화 능력을 가진 사람.
AI와 협업하는 사람 : AI 아이디어와 인간 경험을 결합하고 AI의 한계를 이해하며 보완하는 사람.
나는 과연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ChatGPT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명확했다.
이전(분석형 AI)
인간: 창작과 사고, AI: 계산과 분석, 관계: 보완적 협력.
이후(생성형 AI)
인간: ?, AI: 창작과 사고도 가능, 관계: 경쟁적 협력?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은 없었다. AI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고, 농담까지 했다.
인간의 고유함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던져졌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이 왔다. 회의에서 누군가 물었다.
“이 보고서, 혹시 AI로 쓴 건 아니죠?”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모두가 쓰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침묵.
그 침묵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 우리는 이미 AI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는 두려웠다.
ChatGPT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의 추가가 아니었다.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뀐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AI를 쓸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가 되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만든 것과 AI가 만든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였다.
함께 같은 도구를 쓰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각자가 자신만의 AI 활용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AI를 당당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누군가는 여전히 숨어서 쓰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당당한 사람"을 만난 순간을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