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기술 블로그에서 낯선 단어를 보게 되었다.
새로운 단어 Cursor에 익숙해지고, 손을 완전히 놓는 것에 익숙해지던 무렵이었다.
기술 뉴스를 읽다가 "Sovereign AI"라는 표현을 처음 봤다.
직역하면 "주권 AI". "국가가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통제하는 AI"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처음엔 "국가 단위 얘기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진짜 내 것." 그 단어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국가들의 AI 전쟁 검색을 시작하자 뉴스가 쏟아졌다.
"미국,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 중국 견제"
"중국, 자체 LLM 개발 박차... 서방 의존 탈피"
"EU, 유럽형 AI 생태계 구축... 빅테크 규제"
"한국도 초거대 AI 투자 확대" 모든 국가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만의 AI가 필요하다."
왜?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됐다.
데이터 주권 자국민 정보가 외국 서버에 저장됨 ChatGPT에 입력한 대화는 미국에 "우리 정보를 미국이 갖고 있어도 되나?"
기술 독립 미국이 수출 막으면? 제재 받으면? "남의 기술에 목숨 걸 순 없다"
안보 AI가 국방, 정보에 쓰임 외국 AI는 신뢰 불가 "전쟁 나면 AI부터 끊긴다"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였다.
버티컬 AI의 폭발 그즈음 또 다른 흐름이 보였다. 산업별 특화 AI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의료 AI - 진단, 처방 보조 법률 AI - 계약서 검토, 판례 분석 회계 AI - 세무 신고,
장부 정리 부동산 AI - 매물 분석, 시세 예측 금융 AI - 투자 전략,
리스크 분석 제조 AI - 공정 최적화,
불량 예측 마케팅 AI - 타겟 분석, 광고 문안 모든 산업에 전문 AI가 생기고 있었다.
투자도 어마어마했다.
"의료 AI 스타트업, 시리즈 A 100억" "법률 AI 플랫폼, 기업가치 1조" LLM 창업 붐이었다.
하지만 뜯어보면 기술 블로그를 읽어보니 재밌는 사실이 보였다.
"저희는 GPT-4 기반으로 의료 데이터를 학습..."
"Claude API를 활용해 법률 문서 특화..."
"오픈소스 LLM에 회계 지식을 파인튜닝..." 결국 기반은 다 똑같았다.
GPT, Claude, 오픈소스 LLM. 그저 특정 분야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킨 것뿐
. "이게 진짜 차별화인가, 포장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시장은 열광했다.
전문가들의 불안 더 흥미로운 건 전문직 커뮤니티 반응이었다.
의사: "AI 진단 나오면서 환자들이 병원 안 와요"
변호사: "법률 AI 쓰면 로펌 필요 없대요" "주니어 채용 끊겼어요"
회계사: "세무 AI 나오면서 일거리 반토막" 전문 지식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10년 공부해서 딴 자격증이, 월 2만 원 구독료 AI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 댓글에서 본 말이 기억났다.
"결국 AI를 더 잘 쓰는 전문가가 살아남는다" 전문가조차 AI 없이는 못 사는 시대.
나도? 기사를 읽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소버린 AI를 원하는 이유...
"나도 똑같잖아?" 국가가 데이터 주권을 원하듯, 나도 내 데이터 통제권을 원했다.
산업이 특화 AI를 만들듯, 나도 내 업무 특화 AI를 만들었다. 국가가 기술 독립을 원하듯,
나도 OpenAI 의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국가 단위로 일어나는 일이, 개인 단위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확산되는 논리 정리하면 이랬다.
국가: "우리만의 AI"
산업: "우리 분야 전문 AI"
회사: "우리 회사 자체 AI"
개인: "나만의 AI" 모두가 "내 것"을 원했다. 논리는 일관됐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기. 완전한 통제권 확보. 독립.
고립의 역설 하지만 문제가 보였다.
국가: 자주권 확보 → 기술 고립 산업: 전문화 → 분야 간 단절 회사: 독립 AI → 외부와 차단 개인: 소버린 AI → 완전한 고립 독립을 추구할수록, 더 고립됐다.
의료 AI는 법률 모름. 법률 AI는 회계 모름. 내 AI는 너의 AI와 소통 안 됨. 호환 불가. 표준 없음. 파편화.
가장 아이러니한 건 AI는 원래 연결을 위한 기술이었다.
언어 장벽을 허물고, 지식을 공유하고,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려던 기술.
그런데 지금은? AI가 오히려 우리를 갈라놓고 있었다.
국가는 국가끼리, 산업은 산업끼리, 개인은 개인끼리, 모두가 벽을 쌓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성적으로는 문제가 보였다.
고립, 파편화, 소통 불가.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남들도 다 만드는데, 나만 안 만들 순 없잖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뒤처지지 않으려면, 독립이 필요했다.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다음이야기
소버린 AI는 매력적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좇는 동안, 나는 점점 더 AI에 의존하게 되었다.
논문을 쓸 때도, 회사 업무를 할 때도, 심지어 생각할 때도.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