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발견 12

함석헌 편

by 조헌주


캄캄한 밤 어둠 속에서도 뱃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북극성과 같은 별, 자신의 육신을 망설임 없이 희생할 수 있는 의로움,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인 평화.

함석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별이 반드시 붙잡혀서 길 인도가 되는 것이 아닌 것같이 이상도 반드시 거기 도달이 되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별이기 때문에 영원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요, 힘써도 힘써도 그대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다. 별이 주는 것은 방향인데, 확실한 방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높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도 인생에 방향을 주는 것뿐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될수록 높고 멀어야 한다. 현실의 낮고 가까운 것보다 이상의 높고 먼 것을 따르려는 그 정신, 그 기개가 민족을 살린다. 인생은 정신에 살고 기개에 산다.



의는 생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함에 의해서가 아니요, 버림에 의하여 얻어지는 생명이다. 밀알이 땅속에 들어가듯이 의는 자기를 버림에 의해서만 살아난다. 육신은 참으로 살기 위해 몸으로는 죽음이 필요하였다. 거친 들판에서 모처럼 얻은 이 순옥(純玉)을 보통 석재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워 특별한 작품으로 아로새겨 영원한 제단에 놓기로 한 것이다.



평화는 칼이 아니고도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만큼 사람들의 혼의 해방이 돼서만 될 수 있는 일이다. 군대를 없앤다고 평화의 시대가 오지는 않는다. 혼의 실력 없이 군대부터 폐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희생적인 사랑에 비할 수는 없지만 대적이 쳐들어올 때 목숨을 아껴 도망하거나 항복하는 것은 비겁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항하다 죽는 것이 훨씬 더 도덕적이다. 그러므로 네 혼에 원수를 사랑할 만한 실력이 없거든 차라리 나라를 위해 용감히 싸우라. 그러나 그것으로 참 이김, 참 평화는 얻지 못한다. 참 평화의 세계는 내가 스스로 희생이 되어 죄악의 값을 내 몸에 담당하는 사랑으로써만 올 수 있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 한길사, 2009.







흙, 씨알의 바탕인 흙이 무엇입니까?

바위가 부서진 것입니다. 바위를 부순 것이 누구입니까?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폭력으로 바위를 부순 것 아닙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쓸고 쓸어서, 따뜻한 입김으로 불고 불어서 그것을 했습니다. 흙이야말로 평화의 산물입니다. 평화의 산물이기에 거기서 또 평화가 나옵니다.

부드러운 흙 속에 떨어질 때 거기서는 노래와 춤이 나옵니다. 새로 돋아나는 싹처럼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의 씨알도 그렇습니다. 겸손히 역사의 바닥에 내려갈 때 혼의 평안은 오고 혼이 평안을 얻을 때 거기서 우주의 영의 부름에 의한 활동이 기쁨과 영광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에이레노포이오이」(제8권『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1』)



삶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퍼져나가는 가지같이 그칠 줄 모르는 삶의 음악을 손에, 발에, 소리에, 얼굴에 넘쳐흐르게 하는 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한 맘을 묶어 정성껏 바친 한 사람을 위해 맘껏 일하다가 힘껏 싸워 죽을 수 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보다도 흘러가는 세상 물결 속에 흐르지 않는 사업을 쌓아 바위 위에 서서 죽는 등대지기같이 그 위에 서서 죽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보다도 또 영원히 실현될 길 없는 이상의 맑은 불꽃을 안고 새파란 나래째 부나비 되어 그 안에 뛰어들어 타 죽고 만다면 그것은 그것은 얼마나 눈물이 나는 일인가

즐거움, 아름다움, 행복, 영광을 다 모르고 나도, 세상도, 온 길도, 앞날도 다 볼 줄을 모르고 그저 타, 타, 타, 영원한 불길로 타오르고만 마는 그 일은 아아, 그 일은 얼마나 눈물 나게 거룩한 일인가


-「삶 · 죽음」(제23권 『수평선 너머』)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잊지 않으려면 반드시 잊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옛 글에 “성인은 잊을 것을 잊고, 잊지 않을 것을 아니 잊으며, 소인은 잊지 않을 것을 잊고, 잊을 것을 아니 잊는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잊을 것은 무엇이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잊을 것은 나요, 잊지 않을 것은 전체입니다. 잊을 것은 몸이요, 잊지 않을 것은 정신입니다. 욕심은 될수록 잊어야 하는 것이고, 진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둘은 서로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나 생각하면 전체를 잊어버리는 것이고, 전체에 살면 나는 자연 잊어지는 것입니다. 욕심은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나라 한다니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나 자신을 억제할 줄 모르면서 자유를 위해 싸운다니 빈말입니다. 참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내 뜻대로 할 생각 마십시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 한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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