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언서 Aug 11. 2023

아버지의 여름 반찬

사람의 입맛은 어려서 결정된다.

 부모님의 식습관에 따라서 자주 먹다 보면 그 맛이 몸에 익숙해져 잘 먹는 음식과 못 먹는 음식이 구분되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부모님이 선호하는 음식을 따라서 먹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다 보면 자주 먹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고 음식의 간이 서서히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음식의 맛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마 입맛도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이 아닐까 싶다. 음식은 지역적 여건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조리하는 방식이나 주로 먹는 종류 또한 다르다. 육지나 바다의 음식이 다르고 육지도 산골과 들판에 따라 다를 것이고 바다도 육지와 인접한 바다와 섬에 따라 다르다. 음식은 주변에서 생산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지역적 특색이 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조리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먹는 방식 또한 다르다. 

 아버지는 여름철에 자주 드시는 반찬이 있었다.

 여름 반찬은 주로 간이 짭짤하다. 김치는 열무김치와 무짠지가 전부다. 여름철에는 기온이 높아 음식이 상할 수 있어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다. 그래서 텃밭에서 자란 재료를 바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싱싱한 음식이다. 또한 밭작물인 채소도 너무 뜨거우면 잘 자라지 못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반찬 재료는 풋고추나 오이, 가지, 상추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은 콩을 불리고 갈아서 국물을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치대어 국수를 만들어 콩국수를 먹기도 했다. 무짠지는 지난겨울에 짜게 담갔다가 여름이 되면 간을 빼서 먹는 반찬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염분을 보충하기에 그만한 반찬이 없다.

 오이는 냉국이나 무침으로 먹는다.

 어린 오이는 미역과 함께 얼음을 넣고 시원한 냉국을 만들어 먹으면 아삭아삭 시원함이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노각은 채로 썰어 고추장에 무쳐도 되고 고춧가루에 무치기도 한다. 노각 무침을 밥에 넣고 썩썩 비벼 구수한 된장찌개와 풋고추를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서 한 입 먹으면 고기반찬 부럽지 않은 환상의 맛에 조화를 이룬다. 

 가지는 무쳐도 먹고 부쳐도 먹는다.

 여름철 가지만 한 영양식도 없다고 한다. 가지의 보라색에는 다양한 영양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지는 밥솥에 넣고 쪄서 길게 찢어 간장으로 간을 하고 식초로 새콤함을 더해 깨소금은 넣고 무침으로 먹으면 새콤 짭짤 맛이 좋다. 그리고 어슷하게 썰어서 기름에 부쳐 양념간장에 찍어 먹어도 색다른 맛이다.

 고추는 풋고추로 먹어도 되지만 빨간 고추를 새우젓에 무쳐 먹어도 달착지근하고 짭짤해서 여름 반찬으로 좋다. 아마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겠지만 맵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빨갛고 단단한 고추를 반으로 배를 갈라 속에 있는 씨와 하얀 부분을 도려내고 먹기 적당한 크기고 잘라 새우젓으로 간을 조절하고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넣고 무치면 된다.

 상추는 반찬이 변변하지 못할 때 딱이다.

 찬밥 한술을 상추를 싸서 먹으면 입이 꽉 차는 느낌이 좋다. 양념장은 따로 만들지 않아도 집에서 만든 된장도 괜찮고 이것저것 넣고 쌈장을 만들어 먹으면 더 좋다. 상추는 천금채라고 불릴 만큼 우리 몸에 좋은 채소이다. 상추의 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액은 진통이나 숙면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여름철에 주로 이런 반찬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요즘에도 항상 먹는다.

 물론 시골이라는 지역적 여건 탓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식습관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저 부모님이 드시는 대로 먹을 수 있어도 행복이었다. 왜냐하면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어도 다행인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음식을 놓고 자연식이니 건강식이니 말하지만, 나에게는 일상의 음식 그리고 아버지의 입맛일 뿐이다. 어머니의 손맛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와 가족들의 입맛이 되어버린 여름 반찬은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이 그리워진다.

 이제 음식도 점차 서구화로 변화가 되었다.

 우리 고유의 음식은 전통이라는 별칭이 붙어 전수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처음 보는 음식을 먹으려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도시 음식과 시골 음식이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오죽했으면 시골밥상이라는 식당 간판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예전부터 어른들 말씀에 제철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하셨다. 

 물론 옛날이야기 같은 말이다. 요즘 시대에 제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음식 재료나 과일 등이 시설하우스에서 4계절 구분 없이 생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무슨 음식이든 잘 먹으면 그만이다. 다만 우리 몸에 좋은 음식과 좋지 못한 음식이 있다. 웬만하면 계절적으로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에는 노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노각이란 이름도 이상하고 생소하지만 먹어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싫어서가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에는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입맛이 아무리 변했어도 우리 몸 어느 한 구석에라도 아버지의 입맛은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절에 따라 특별한 음식이 생각나는 계절, 아버지의 입맛이 조금은 짭짤해도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짭짤한 홍고추 새우젓 무침과 노각 그리고 무짠지로 아침을 해결하고 출근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내 탓이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