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낭만 사이
대학 동기들과의 저녁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저녁 외출을 했다. 시간을 잘못 계산해 약속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중 바로 옆 테이블에서 60~70대 할머니들의 모임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위기로 보아 고등학교 동창회인 듯했다. 한 분 한 분 도착할 때마다 “어머!! 너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라는 반가운 외침이 터져 나온다. 내 눈에는 분명 할머니로 보이지만, 그분들 서로에게는 여전히 교복을 입던 시절의 친구로 기억되는 듯했다. 여고생처럼 높은 목소리, 끊이지 않는 웃음,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경쟁하듯 겹쳐지는 대화. “너 그때 그랬잖아.” “아니야, 네가 먼저였어.” 고등학교 교실에서나 들었을 법한 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오간다. 나이로 보자면 인생의 거의 모든 굴곡을 지나왔을 사람들인데, 그 순간만큼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약속 시간이 되어 내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머! 넌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어?” 놀랍게도, 바로 앞에서 들었던 말과 거의 똑같은 인사가 우리 테이블에서도 반복된다. 만약 우리의 옆자리에 우리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들이 느꼈을 기시감 역시 내가 조금 전 옆 테이블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역시 대학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오다 잠시 현실의 역할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60~70대 분들도, 그리고 우리도 이미 수많은 역할을 수행해온 이들이다. 부모였고, 배우자였고, 누군가의 며느리였을 수도 있으며, 직장인이었을 수도 있고, 몇몇은 이미 손주를 둔 어른일지도 모른다. 겉모습은 분명 나이를 먹었고, 기억력과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동창회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현실적 정체성은 잠시 뒤로 밀려난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누구의 엄마’도, ‘어디의 할머니’도 아닌, 교복을 입던 시절의 ‘나’, 그리고 대학 시절의 ‘나’다. 물론 모든 동창회가 웃음과 추억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누군가는 자신의 성취를 먼저 꺼내 들기도 한다. 직함과 이력, 자산이나 자녀의 이야기처럼, 지금의 삶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들. 때로는 그 모습이 조금 과장되어 보이거나,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다르지 않다. 웃음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성취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그 또한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고 싶은 방식이다.
이 장면의 기억이 유독 오래 남았던 이유는, 인간의 자아가 시간과 함께 단선적으로 성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고, 감정과 관계 역시 점점 정제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숙이란 이전의 나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그 위에 층을 덧입히는 일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감정과 욕망, 질투와 인정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많은 책임과 사회적 규범 아래 잠시 눌려 있을 뿐이다. 동창회는 그 눌림이 잠시 해제되는 드문 공간이다. 과거를 함께 공유한 사람들 앞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현재의 성취를 과시할 이유도 없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바로 그 성취를 내보이고 싶은 몇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이든, 그 안에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숨 쉬고 있다.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어린아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그 아이는 여전히 서운해하고, 비교하고, 웃고, 들뜨고, 또 금세 삐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다소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저런 이야기를 하나” 싶을 법한 대화들. 그러나 낭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모습은 오히려 인간의 일관성을 증명한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시간을 덧붙여 살아갈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나 위에 청년의 내가 얹히고, 그 위에 중년과 노년의 내가 차곡차곡 쌓인다. 어느 하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옆 테이블의 할머니들 동창회를 바라보며, 나는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삶이 거칠어져도, 그 안에 남아 있는 어린아이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는 반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실은 분명 무겁고, 인생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때로는 자랑하며 서로를 확인하려한다. 어쩌면 인간이 끝까지 붙잡고 가는 낭만이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바로 그 변하지 않는 내 안의 아이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