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시트콤 사이

낭만을 남겨두는 하루

by 불멍

같은 하루, 같은 일상이 어떤 날은 유난히 무거운 드라마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별일 아닌 시트콤처럼 받아들여진다.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피곤한 하루인데도, 마음의 각도에 따라 삶의 장르는 전혀 달라진다. 사소한 실수 하나에 하루 전체가 우울하게 덮여버릴 때가 있다. 이미 지나간 말을 곱씹고, 괜히 스스로를 책망하며,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하루를 통째로 무거운 드라마로 만들어버린다.반대로, 비슷한 상황을 웃어넘기며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날도 있다. 무거운 드라마가 될 뻔한 일상이, 어느새 가벼운 시트콤 한 장면이 된다. 삶은 늘 비슷한 장면을 반복하지만, 그 장면을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나의 몫이다.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이와 직함과 상관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었다. 직장에서 윗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Hi, Steve” 하고 인사를 건네고, 마트에서는 꼬마가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꽤 낯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나이와 직위, 호칭이 먼저 정해지고, 그 위에서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존댓말과 반말이 분명히 나뉘는 언어, 그 언어 속에서 우리는 늘 어디에 서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에야 말을 건넨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많은 것을 요구한다. 돈도 있어야 하고, 학벌도 있어야 하고, 직함도 필요하다. 돈이 많은데 학벌이 없으면 “돈만 많으면 뭐 해”라는 말이 따라오고, 학벌이 좋은데 돈이 없으면 “학벌만 좋으면 뭐 해”라는 평가가 붙는다. 명예가 있어도 아직 부족하고, 성취가 있어도 늘 다음 단계를 요구받는다.그 사이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좀처럼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무엇을 더 가져야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잘 사는 법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법을 먼저 배워온 것은 아닐까. 드라마처럼 긴장된 삶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심사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길어야 백 년,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머물다 떠나는 존재들. 이 광활한 우주 속 찰나 같은 시간 속에서, 크게 아프지 않고, 숨 쉬고, 밥 먹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며 지내는 것. 그보다 더 거창한 삶의 목적이 과연 꼭 필요할까 싶어진다. 물론, 어떤 하루는 생존이 먼저인 날도 있다. 그래도, 그 하루를 끝까지 살아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잘 살았다는 기준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조건을 달아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을까. 현실은 분명 만만하지 않다. 드라마보다 더 무거운 장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하지만 그 안에 낭만을 아주 조금 남겨둘 수 있다면, 시선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드라마와 시트콤 사이, 그 어딘가에서 이미 꽤 괜찮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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