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살리는 몸과 마음
마음은 몸이라는 집에 산다. 마음은 흔히 추상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마음이 머물기 위해서는 언제나 물리적인 토대가 필요하다. 그 토대가 바로 몸이다. 몸은 마음이 하루를 보내고, 밤에 돌아와 쉴 수 있는 집이다. 생각과 감정이 잠시 내려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집은 편안해야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바람이 불어도 안쪽은 조용해야 한다. 추운 날에는 체온을 지켜주고, 더운 날에는 열기를 가려주는 곳. 밖의 세계가 아무리 거칠어도 문을 닫고 들어오면 잠시 안도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마음이 몸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몸이 그런 집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벽이 갈라지고 바닥이 기울면, 그 안에 사는 마음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 불안해진다. 언제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늘 깨어 있게 된다. 쉼을 위해 돌아온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때, 마음은 머물 곳을 잃는다. 만성통증 환자에게 우울이 함께 오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증이 지속된다는 것은 몸이라는 집이 오랜 시간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불편함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마음을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통증 그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은, 이 집이 다시 안정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종종 마음만 단단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글을 찾아 읽고, 생각을 바꾸려 애쓰고, 감정을 다스리며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집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마음에게만 버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먼저 집을 살펴야 한다. 어디가 금이 갔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몸이라는 집을 조금 더 오래, 튼튼하게 쓰기 위해 우리는 하기 싫어도 운동을 한다. 맛이 없어도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다. 이런 순간순간의 선택들은 마음이 다시 머물 수 있는 집을 튼튼하게 만들어간다. 땀을 흘리고 근육에 통증이 생기는 그 시간동안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씩 정비된다. 체력이 조금씩 돌아오면, 하루 동안 애쓰던 마음도 그제야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받는다. 불안으로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마음이, 아주 잠시라도 힘을 풀 수 있게 된다. 몸이 안정되면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다시 생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몸이라는 집을 고치고 돌보게 만드는 힘은 결국 그 안에 사는 마음에서 나온다. 아무리 집이 있어도 집 주인이 지쳐 있으면 손을 대지 못한다. 반대로 마음에 아주 작은 여력만 남아 있어도, 사람은 몸을 움직이고, 먹고, 쉬며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몸과 마음은 서로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로 맞물려서 돌아간다. 몸이 흔들리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마음이 힘들어지면 몸을 돌볼 힘도 사라진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건강을 챙기고, 집을 정비하는 힘이 생긴다.
퇴근 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화면을 스크롤 하고 싶은 것이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는 본능일 것이다.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서 움직이려하는 건 오늘 하루 흔들린 마음이 더 이상 머물 곳을 잃지 않게 하려는 선택일 것이다. 몸이라는 집을 오늘도 방치하지 않았다는 안심을 마음에게 건네기 위해서이다. 매일의 움직임은 마음이 살고 있는 나의 집을 정성스럽게 보수하는 일이다. 오늘도 집을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은 다시 안쪽으로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래서 난 오늘도 운동을 한다. 몸 안에 살고 있는 마음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