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생이었고 시험기간이었다.
할머니는 몸이 많이 아프셨다. 젊을 때부터 고생하여 중풍으로 쓰러지신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셨고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누군가에게 항상 의지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보행보조기를 잡고 서있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크게 넘어졌고 시골집에 모여있던 어른들은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할머니는 신음을 내며 넘어진 채로 미동이 없었고 나는 그저 삭혀지지 않은 화에 씩씩대며 나를 책망하는 친척 어른들과 아빠의 목소리를 원망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잊히지 않고 기억나는 순간들 중 하나이다.
그날도 그렇다. 일찍 노을이 지던 겨울.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과 동생은 부산스러웠다. 검은색 바지, 검은색 양말, 온 집안이 어두운 잿빛이었다. 아빠는 심란한 표정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나는 멍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옷을 챙겨 입었다. 빠르게 나가려는 아빠의 뒤를 더 재빨리 쫓았다.
도착한 빈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몇 없는 근조화환이 눈에 띄었다. 첫째 고모와 둘째 고모가 우리를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다. 서로 포옹하며 인사치레로 안부를 물었다. 첫째 고모의 품에서는 육개장 냄새가 났다. 저녁밥을 먹으라고 자리에 앉기를 권해서 그렇게 했다. 마주 보며 앉은 고모는 엉덩이에 종기가 난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다. 편편한 마룻바닥을 쓸고 다니는 발바닥이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어린 동생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댔고 아빠는 상복을 입고 오른팔에 완장을 달았다. 상주라는 표시였다. 뜨거운 육개장과 편육이 앞에 놓였다. 인정이 넘치는 양이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숟가락을 들었다. 국을 불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데일 것 같은 뜨거움이 안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갔다. 대각선에 자리 잡은 둘째 고모는 얼굴을 고정하고 내 행동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슬쩍 고개를 드니 국을 건네준 첫째 고모도 그랬다.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은 그런 표정인 것 같았다.
둘째 날이 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첫째 고모가 나에게 입관식에 가자고 권했다. 오전이었는지 오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는 말렸던 것 같지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어른들 가는 곳에 따라가지 말라며 할아버지는 면박을 줬지만 나는 영인지 염인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실은 조의를 표한 후에 저마다 곡소리를 내고 각자의 이야기로 떠드는 조문객들 천지인 시끄러운 빈소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장의사가 길을 안내했다. 친척언니 뒤에 서서 건너편 실내가 다 보이는 투명한 복도를 지났다. 문을 열자 고모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따라가니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시골집에 갈 때마다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정자로 누워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피부가 푸를 정도로 창백했다는 것이었다. 장례지도사는 거즈로 몸을 깨끗이 닦은 후 할머니의 입에 쌀을 넣었다. 구슬이나 엽전도 넣었던 것 같다. 슬픔에 아우성치는 고모들의 울음소리가 거세졌다.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친척언니도, 새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시 할머니의 입으로 눈을 고정했다. 장례지도사는 계속해서 쌀을 넣었다. 이제 그만 넣어도 될 것 같은데. 계속하다간 기도가 막힐 것 같았다. 장례지도사를 노려봤다. 순식간에 왜인지 모를 분노가 차올랐다. 그는 단지 묵묵하게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는 중이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고모들은 탈진할 것만 같았다. 울음소리로 가득 찬 입관을 끝내고 다시 빈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을 쏟아내지 않았음에도 기진맥진했다.
발인은 다음 날에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새벽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북적거렸고 친척들은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걸었으며 불효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허망한 완장만 팔에 걸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어대는 새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엉망인 얼굴을 내버려 둔 채 그녀에게 둥그렇게 모인 고모들은 화장지를 건네고 등을 토닥였다. 비웃음이 나오고 입이 근질거렸다. 비뚤어진 속내가 들키기 전에 피신해야 했다.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발소리가 멈추자 적막이 흘렀다.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어폰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먼지가 소복이 쌓인 계단에 걸터앉았다. 손으로 먼지를 긁어 후 불었다.
***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봤던 건 2학년 여름 요양병원이었다. 첫째 고모, 둘째 고모, 새엄마, 동생, 나. 다섯이서 할머니를 찾아갔다. 차로 몇 시간을 달려 찾은 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사람도 건물도 없었다. 고모는 모래가 가득한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15분 정도를 걸었던 것 같다. 낮지만 양옆으로 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하염없이 걸었더니 등은 땀으로 흥건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가까이 갈수록 햇빛에 반사된 새하얀 도색이 눈을 찔렀다. 시린 눈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전원 한가운데에 건물만 떼어놓은 듯 고독했다. 사방으로 넓게 뻗친 여름의 나무들과 울어대는 매미가 유일한 생동감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덮었다. 축축한 느낌이었지만 더위를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회색 페인트칠이 덧대어진 공간 속으로 발을 디뎠다. 소리를 낼 때마다 건물이 울리는 듯 했다.
병실에 들어섰다. 넓은 공간에 탁 트인 창문이 옆에 걸려있었다. 창너머 여름의 푸릇한 잎들이 서로 포개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은 젖혀진 커튼 사이로 아무 제제 없이 들어왔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한 침대 옆에 온갖 링거선들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거무죽죽한 핏줄에 검버섯이 눈에 띄는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손이었다.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죽은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기운이 없어 보였고 병색이 짙었지만 엉뚱한 내 행동에 잘 웃으셨고, 답답한 상황에는 화도 적당히 내셨다. 잠을 잘 자지 않는 할머니는 작은 기척에도 눈을 뜨셨다. 이렇게 움직임 없이 눈만 감은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에도 할머니는 고개를 움직이지도, 손을 까딱거리지도, 입을 씰룩이지도 않았다. 모든 것들이 멈추는 느낌이 났다. 고모들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동생은 창문에 달려가고 새엄마는 그런 동생을 말렸다. 간병인은 문지방에 서있는 나를 보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소음은 점점 작아졌다. 이따금씩 나는 ICU모니터의 소리만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할머니는 가끔 눈을 뜬다고 했다. 지금은 주무시니 깨우면 안 된다고 말을 덧붙이며 간병인은 밖으로 나갔다. 병실이 좋다고 속삭이는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모들은 당황한 기색을 재빨리 감추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엄마 죽을 때 다 돼서야 이런데 누워보네. 불쌍한 우리 엄마.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쿵쾅대는 가슴을 멈출 수 없었다. 문을 열었다. 할머니를 더 보고 싶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와 병원 안뜰 정원에 있는 흔들 그네에 엉덩이를 붙였다. 뒤 따라 나온 고모들은 지루하지? 하며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새엄마는 그네를 발견하고서는 동생을 내 옆에 앉혔다. 사진을 찍자며 졸라대는 새엄마를 말릴 수 없어 장단에 맞춰 주었다. 찰칵 소리가 나자마자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둘째 고모와 새엄마를 바라봤다. 첫째 고모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건물을 응시하다가 몸을 돌렸다. 동생은 내 옆에 달라붙어 내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누나 안 가?”
“가자.”
동생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새엄마를 가리키는 내 손짓에 녀석은 힐끔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달려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지품 가방을 챙겼다. 흔들 그네를 고정시키고 발을 떼자, 발목에 차이는 민들레가 내 고개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손으로 집어 올렸다. 복슬복슬한 송이가 바람에 나부꼈다. 갑자기 세지는 바람에 꽃씨가 하나 둘 떨어졌다. 멀리서 빨리 오라는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모 쪽을 한 번 쳐다보니 시원한 바람이 질주하듯 지나갔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동그란 형체는 온데 간데없고 힘없는 푸른 꽃줄기만 목욕하듯 살랑거리고 있었다.
**
발인 날은 새벽같이 빈소가 분주했다. 이제는 입도 대기 싫은 육개장과 편육을 억지로 욱여넣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바깥에 나와 칼바람 추위에 떨었다. 재킷을 움켜쥐고 고모부 차량에 탑승하자 영구차가 앞에 보였다. 할머니를 화장하는 날이었다. 옆에 앉은 동생은 화장? 할머니가 왜 화장을 해? 하며 어린애가 할 법한 진부한 질문을 했다. 친척언니가 화장은 할머니 시신을 태우는 거야. 하자 동생은 왜? 하고 물었다. 언니는 말끝을 흐리며 그게 관습이라고 설명했다.
화장장에 도착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리 멀지 않았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우리는 2층 관망실 옆에 있는 참관실로 이동했다. 얇은 유리벽 하나를 두고 할머니가 화장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모들은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아빠는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끔찍한 적막 속 처절한 곡소리만 가득했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 내가 여기 있는 게 어울리는지 분간이 안 갔다.
분골 후 납골당으로 향했다. 납골당 제례실에서 제사를 한 번 더 지낸 후 할머니의 유골을 안치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꺼진 로의 냄새만 희미하게 콧잔등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
1년이 지났다. 오늘은 할머니의 제사였다. 도어록을 열고 문을 여니 집 안이 북적였다. 일가친척이 전부 모여있었다. 거실 구석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마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뺨은 수척했다. 앙상한 다리를 두꺼운 바지로 애써 가린 할아버지가 반갑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들었다. 친척들이 의례적으로 나를 반겼고 나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질문투성이었다. 대답을 바라는 무수한 눈빛들. 그러나 내 시선은 완장이 벗겨진 상주와 그의 아버지에게로 고정됐다. 둘 사이의 어색한 공기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게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떠난 후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팽팽하게 넘치던 기운도 사그라들었다. 문득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지독한 담배냄새를 뚫고 꽉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제사 지낼 준비하라고 재촉하는 아빠만 아니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차례가 끝나고 친척들을 보냈다. 할아버지까지 첫째 고모와 함께 떠나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멀리 바깥에서 배웅을 마치는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 안에서는 위패를 만지작대는 아빠의 마른 손바닥 소리만 울렸다.
“할머니는 크리스찬이었대.”
거실에 멀뚱이 서있는 아빠 옆 소파에 앉아 말했다.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아팠을 때에도 성경책과 찬송가를 예배가방에 보관하여 지니고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기도하고 침대에 앉아 할머니께 찬송가를 불러드렸던 날이 기억났다. 할머니는 내 새끼 잘한다며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신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제사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거야.”
공격적인 반문이 날아왔다. 시선은 위패에 고정시킨 채였다. 나는 덤덤히 대답했다.
궁금했다. 이기적인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가 자신의 엄마를 위해 얼마나 사려깊은 생각을 해보았는지, 그녀의 삶을 연민하는 아빠가 사랑받는 사람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아빠는 항상 자기 입장에서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은 것이라 확신하잖아."
"뭐?"
"단 한 번이라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야."
“...그럼 제사 지내지 말까? 내 엄마한테 이 정도도 못해? 하나님이 어딨다고 제사를 지내지 말라야. 하나님이 어딨어?”
대화는 또 삼천포로 빠졌다. 평소처럼 아빠는 분노로 가득 찼다. 내 의도는 안중에도 없고 본인이 원하는 단어만 골라 들어 고함을 질렀다. 집은 순식간에 스피커를 튼 듯 소란스러워졌다. 멍하니 쏟아지는 소음을 튕겨내며 자리를 지켰다. 아빠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분이 안 풀렸는지 팔을 크게 벌리고 위패를 집어던질 듯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대충 하나님은 없다는 것과 하나님이 있다면 불쌍한 자신의 엄마를 이렇게 데려가면 안 됐다는 거였다. 새엄마와 동생은 안방에 들어가 있었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1시간 가량 지속될 것 같은 푸념 섞인 고함에 못 듣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게 왜 할머니가 있을 때는 속만 썩였는데. 아빠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숨과 함께 네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또 정적이었다.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성큼성큼 아빠를 지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더니 피로감이 전신에 퍼졌다. 눈을 감았다 떴다. 칠흑 같았다. 어두운 방안이 싫었지만 굳이 불을 켜고 싶진 않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할머니가 보였다. 내게 재밌는 옛날 욕을 한가득 알려주던 할머니, 쓴 가루약과 먹는 자신의 요구르트를 마시라며 건네던 할머니, 할머니와 잘 거라며 침대로 달려가는 나를 말리는 아빠와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성을 내던 할머니. 울면서 전화를 걸면 같이 울던 할머니. 나를 보면 함박웃음을 짓던 할머니. 나를 사랑하던 할머니.
사진처럼 할머니의 모습이 지나갔다. 기억나지 않는 목소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눈을 뜨자 어느새 벗겨진 교복 와이셔츠 위로 뜨거운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목은 감기 걸린 듯 따끔거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랍장을 열어 뒤졌다. 파란 바탕에 오색찬란 보석 무늬가 수놓아진 동전지갑이 보였다. 10살 설날, 시골로 향하다 들렸던 휴게소에서 막내고모가 할머니가 사줬다며 나와 동생에게 나눠주던 그 지갑. 곰돌이 무늬가 더 예쁘다는 고모의 말을 뒤로한 채 보석무늬를 고집했다. 아낀다고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는데 지금은 디자인을 떠나 이음새고 지퍼고 때가 타고 녹슬어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손에 말아 쥐자 차가운 감촉이 파고들었다. 괜히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뒤집은 지갑 바닥 부분에는 촘촘한 먼지가 곱게 깔려 있었다. 후. 입바람을 불었다. 먼지가 서랍장을 향해 멀리 달려갔다 내 입에 주저앉았다. 남아있는 먼지를 다시 또 후 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온몸이 진동했다. 바닥에서 빗물 소리가 났다. 애써 닦아내고 싶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칼바람이 귀를 때리자 일순 모든 소음이 마비된 듯 사라졌다. 덜컹거리는 흐느낌만 쓸쓸히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드니 참새 소리가 들렸다. 푸른 새벽이었다. 파리하게 말라있던 동전지갑이 축축이 젖고 눈앞에 살랑거리던 먼지가 다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다리가 뻐근하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