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12년간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신 마이클배 선교사님]
묵티나트가 구원의 땅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곳에 네팔의 힌두교 3대 성지 중의 한 곳인 묵티나트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묵티나트 사원은 힌두교의 성지인 동시에 불교의 성지로써 수많은 힌두교와 불교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가 한 사원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샤워하고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꺼멀과 함께 묵티나트 사원에 찾아갔다. 사원은 마을 입구 쪽에서 약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되는 언덕배기에 있었고 사원 주위에는 담장이 둘려있었다. 사원 가는 길에 많은 힌두교 사두들이 보였다.
사원 입구 앞에선 장사꾼들이 수억 년이 되어 보이는 암모나이트 화석을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이곳 히말라야에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자주 나왔다. 그 이유는 이곳이 까마득한 옛날에는 바다였기 때문이란다.
신기하지만 가짜처럼 보이는 다른 기념품과 암모나이트 화석을 뒤로하고 사원에 들어가려는데 앞쪽에 중년의 동양인 두 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주위엔 젊은 네팔인 세 명이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양 분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나마스떼, how are you?"
“Hi" 왼쪽에 계시는 분이 짧게 응대해 줬다.
억양을 봐선 일본 분인 것 같았다. 그때 오른쪽에 계시는 분이 국적이 어디냐고 물어보셨다. 'Republic of Korea'라고 답해드리자 "한국 분이시네요, 한국 어디에서 오셨어요?"라는 너무나 듣고 싶었던 한국말을 하셨다.
"아 한국 분이시군요...... 정말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반가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그분이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네팔에 도착해서 오늘 처음으로 한국 분을 만났네요.. 지금이 추석 연휴 기간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아, 지금이 추석 연휴인가요……" 그분은 지금이 추석인지 전혀 모르던 눈치였다.
"네 오늘이 추석인데요.. 지금 한국이 아닌 외국에 사시나 봐요?"
목소리에 영어가 섞여있어 미국 쪽에 사는 것 같았다.
"네, 저는 지금 하와이에 살고 있어요, 네팔에 들어온 지는 한 달 정도 됐고요, 연말까지는 네팔에 머무를 겁니다."
“아, 그러세요? 참 좋은 곳에서 사시네요!”
갑자기 이분과 옆의 일본 분에 대한 궁금증이 몰려왔다.
"그런데 어떤 일로 이곳에 오셨는지요.. 묵티나트를 통해 토롱라를 넘으실 생각이신지요?"
나는 당연히 이분들이 트레킹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밝게 웃으며 대답 대신 나에게 물어보셨다.
"혼자서 토롱라를 넘고 내려오셨나 봐요, 어떠세요.. 많이 힘드셨어요?"
오늘 겪었던 하루의 여정이 생각나자 한숨부터 나왔다.
"에고... 네, 몇 시간 전에 내려왔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쪽으로 올라가시려면 정말 단단히 마음먹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경사가 너무나 심하고 끝도 없는 오르막길입니다."
아저씨께서 웃으셨다.
"저희는 트레킹을 안 하고 다른 목적 때문에 왔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도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해보려고요, 저 같은 나이에도 가능하겠죠?"
"아 물론이죠,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묵티나트에는 다른 일로 오셨나 봐요?"
"네 저희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에요, 안나푸르나 지역의 의료시설이 열악해서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 왼편으로 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각 마을에 들려서 아프고 가난한 네팔 사람들에게 의료품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 선교활동도 하고 있죠, 옆에 분은 일본계 미국인 의사이시고요, 하와이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선교사님들의 목에는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와,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면 기독교 봉사 단체에서 의료활동을 하시는 건가 봐요?"
"아니요, 저희는 기독교 봉사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순수하게 자비를 털어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털어 선교활동과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분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러면 의료물품도 다 자비를 들여서 준비하신 건가요?"
"네, 그렇죠, 옆에 계시는 의사선생님도 개인병원 운영하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십여 일 일정으로 이곳엔 온 것입니다. "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났다.
"와, 그러면 언제부터 선교활동을 하셨는데요?"
"제가 네팔에 처음 왔을 때가 1997년이니깐 햇수로 12년째이네요.."
"와 정말 오랫동안 하셨네요! 그러면 안나푸르나 지역 말고도 네팔의 다른 곳들도 많이 돌아다니셨나 봐요?"
"아니요, 이곳 안나푸르나 지역에서만 선교활동과 의료활동을 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꾸준하게 의료 봉사활동과 선교활동을 하는 이분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안나푸르나 지역에서만 12년 동안이나 봉사를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 같으면 꿈도 못 꿨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선교사님처럼 꾸준히 하실 수 있는 거죠?"
"다 하느님이 여기까지 인도해 주셔서 가능한 거죠.."
이분은 나이가 훨씬 젊은 나에게도 송구스럽지만 계속 존댓말을 해주셨다.
이분과의 인연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서 선교사님께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선교사님께서는 흔쾌히 자세를 잡아주셨다. 이번에도 내 전속 사진기사인 꺼멀이 나섰다. 나는 선교사님의 왼쪽에 서서 활짝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라메쉬 형뿐만 아니라 이번 트레킹에서 만났던 이스라엘 나훔 아저씨, 그리고 선교사님과 나의 표정엔 모두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웃을 때 항상 눈 꼬리는 아래로 처지고 입가의 미소는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물론 나의 입가는 웃을 때 항상 귀에 걸려 있어서 더 심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선교사님께 보내드리기 위해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선교사님은 친절하게 적어주시면서 기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메일 주소에는 마이클 배라고 적혀있었다. 한국명 배** 이셨다. 이때 등 뒤에서 굉음의 헬기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30인승으로 보이는 헬기 한 대가 사원 옆 헬기장에 내리고 있었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완전히 멈추자 인도 전통 옷인 펀자비를 입은 사람들이 헬기 밖으로 나와서 사원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특이한 광경으로 이곳 사원을 지키는 경비들 몇 명이 헬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들것 위에 눕힌 환자를 들고 사원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들것에 눕혀진 환자는 너무나 쇠약해 보였고 곧 있으면 하늘나라로 떠날 듯이 보였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곳 중의 한 곳이 이 사원이에요, 여기에서 죽기 전에 기도를 하고 축복을 받는 게 이들의 가장 큰 행복이죠. 그래서 힌두교도 중 인도와 네팔의 최고 부자들은 죽기 전에 이곳 묵티나트에 헬기를 타고 왔다가 축복을 받고 돌아가 여생을 마무리하는 거죠"
마이클배 선교사님께서 이 광경을 설명해 주셨다. 책에서 읽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광경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참으로 신기했다.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나와 선교사님들은 한 그룹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사원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영원한 불꽃이 있는 작은 즈왈라 마이 곰빠(fire gompa with the eternal flames, 티베트에서는 절을 곰빠라 한다)로 갔다. 이곳은 꺼지지 않는 신비의 불꽃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법당 안의 불상 밑을 보면 파란색의 불꽃이 보인다고 한다. 예전부터 이러한 현상을 신의 기적이라 생각되어 이곳은 지금까지도 불교도나 힌두 교도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해 보자면 지하의 천연가스가 계속 올라와 자연스럽게 불꽃이 형성되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데 옛사람들에게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확신의 장소로 여겨진 것이었다. 종교적이거나 과학적인 현상을 떠나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보고 싶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은 어두웠고 저 앞에 불상이 보였다. 그 불상 왼쪽 밑에 작은 공간이 보였다. 먼저 법당 안에 서서 경건히 기도를 드렸다. 꺼멀 또한 이곳이 신성한 곳인 줄 알기에 얼굴에는 경건함이 묻어났다.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희미하게나마 파란 불꽃이 보였다. 가스에 의해 형성된 불인 줄은 알았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신성해 보였다. 파란 불꽃을 보며 잠시 동안 다시 기도를 했다. 기도한 모든 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
안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아쉽게 내부 사진은 담지 못했다. 짧게 내부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왔다. 선교사님들도 신기한 표정이었다. 입구에서 선교사님께서 꺼멀과 나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선교사님과도 함께 찍고 싶었지만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그곳을 지키는 네팔의 비구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몇 달 전에 한국의 비구니 스님께서 이곳에서 몇 달간 수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스님들께도 수행 도량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우리는 다시 가장 큰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수많은 힌두 교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법당 주위에는 유명한 108개의 수로가 있고 그곳에는 성수로 여겨지는 물이 머리 위쪽에서 콸콸 흐르고 있었다. 이 물은 힌두교/불교도들에게 성수로 여겨지는데, 108성수를 맞으며 주위를 돌면 이제까지의 죄업이 사라진다고 한다. 성수 밑에는 한 힌두교인이 웃통을 벗고 기도하며 돌고 있었다. 나도 꺼멀과 함께 108개의 물줄기에 손을 씻었다. 물줄기 하나하나에 손을 댈 때마다 기도를 하였다. 꺼멀도 내 뒤를 따라오면서 경건하게 기도를 하였다.
선교사님들은 종교가 달라서인지 그 자리에 그냥 계셨다.
마지막 108번째의 물줄기를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나 자신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느낌과 함께 축복 또한 받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 잠시 더 머물다가 사원 밖으로 나왔다.
저 앞쪽에는 묵티나트 마을이 보였고 마을 뒤쪽에는 다울라기리, 룩체, 담푸스 봉우리들이 꿈처럼 솟아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선교사님들이 내려가자 서둘러 뒤따라 갔다. 선교사님들은 내일 지프를 타고 좀슴으로 떠나신다고 했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내가 머물고 있는 롯지에 다다랐다. 그분들은 100여 미터 뒤쪽의 롯지에서 머물고 있으시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피곤해 보이시는 것 같아서 말을 못 꺼냈다. 헤어짐의 시간이 아쉬웠지만 왠지 모르게 선교사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저도 트레킹 잘 마칠게요"
"그래요, 여행 잘 하세요, 하느님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햇빛이 하느님의 축복처럼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