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쉬 형의 울릉도 할배 이야기

by 이부작

ABC 작은 음악회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라메쉬 형에 대한 에피소드를 먼저 소개합니다.



마음속 추억은 어느새 네팔을 떠나기 전날 나갈곶의 롯지에서 형이 들려준 울릉도 할배 이야기로 이어졌다. 형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3달간의 네팔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비구니스님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이드 역할을 했던 라메쉬 형도 함께 들어왔다. 라메쉬 형은 스님들과 헤어지고 한국에 있는 네팔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며 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형은 혼자 국내 패키지 여행으로 울릉도를 가게 되었다. 울릉도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이른 새벽 형은 홀로 숙소 뒷 산에 올랐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낡은 움막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긴 형이 움막 앞에 가서 인기척을 하자 연세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할배?”

“……”

평생 외국인을 본 적이 없었던 할아버지는 덩치 큰 네팔인이 자신의 움막 앞에 딱 서서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게 놀랍고도 신기했다. 하지만 형의 하회탈 같은 얼굴을 보자 할아버지의 경계심은 사라졌다. 형은 울릉도의 외딴 움막에서 할아버지께서 혼자 사시는 게 궁금했고 할아버지도 형의 사연이 궁금 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와 형은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형이 먼저 한국에 일하러 오게 된 계기며

한국말을 독학한 이야기, 그리고 네팔에 갔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울릉도로 오게 된 이야기를 해

드렸다. 형의 이야기를 다 듣고 할아버지도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신에게는 자식이 3명 있는데 2명은 육지에 나가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아랫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식들 모두 아버지를 모시기 싫어해서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외딴 움막에 혼자 지낸다고 했다.

그러면 식사는 어떻게 해결 하시냐고 형이 물어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케이블로 연결된 도르래를

가리키며 식사 때마다 밑에 사는 아들이 도르래로 음식을 보내준다고 하였다.

'아들과 함께 살면 되지 않나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버지 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글썽여지고 아들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 형과 할아버지는 서로를 잡고 한 참을 서럽게 울었다. 울음을 멈춘 뒤 형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배, 항상 몸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그러면서 할아버지 손에 자신이 갖고 있던 돈 5만원을 쥐어드렸다.


네팔 일반인 노동자 한달 월급이 당시 7~8만원 정도라고 하니 5만원은 형 입장에서 상당한 거금이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으나 형은 할아버지께

“아들이 드리는 용돈이라 생각하시라”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전하고 그 자리를 떴다.

형은 늘 이처럼 행동했다. 형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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