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즈 유 아 영
Because you are young - Cocksparrer
나는 십 대 시절부터 로큰롤에 빠져 살았다. 인터넷 키드였고, 인터넷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주입되는 로큰롤과 펑크의 계보는 학교에서 주입하는 그 어떤 과목보다도 맹렬하게 내 삶에 자리 잡았다. 엘비스와 쟈니 캐시,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는 내게 세계사였고, 노브레인, 크라잉넛, 럭스 같은 국내 펑크밴드들의 노랫말은 나에게 마치 윤리 과목과도 같은 하나의 명령이었다. 세상은 답답했고 나는 항상 화가 나있고 또 이유 없이 슬펐다.
그러던 18세의 봄. 고향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전학을 간 새 학교는 평화로웠고 그만큼 따분했다. 감옥 같은 학교 담장 안에서 느리게 흐르는 고등학생의 일상. 나는 그런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인생의 친구라 할만한 녀석들을 두 명 만났지만 그 당시 나는 학교 담장 밖의 세계에 경도되어 있었다. 학교 밖의 일상은 모든 것이 설레었다. 바야흐로 경기도민의 삶이 시작된 것이고, 경기도민이란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면 홍대에 갈 수 있는 선택받은 존재였다.
학교 수업을 재끼고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고 종로로, 또 종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용돈이 모일 때마다 홍대로 나갔고 지금은 사라진 퍼플레코드나 향뮤직에서 닥치는 대로 앨범을 사모았다. 플라스틱 케이스가 깨질까 조심조심 비닐을 따고 CD를 꺼내 플레이어에 끼우고 헤드폰을 귀에 덮어 씌우고 트랙을 최대 볼륨으로 재생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소음에 어느새 전투력은 최대치가 된다. 덤벼라! 교복을 입은 소년의 발걸음은 거침없고 눈빛은 불타오른다. 그렇게 홍대 거리를 정처 없이 걷는다. 그것은 태어나 처음 느낀 종류의 해방감이었고 나는 금세 그 거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거리를 쏘다니며 되뇌던 수많은 밴드들의 노랫말들, 고민했던 많은 상념들은 자동 재생되는 그 풍경들과 함께 아직도 내 정신의 큰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슬프게도 지금은 그 당시 홍대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몇 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변화가 빠르진 않았어서 당시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를 보면 그 시절의 모습과 분위기가 잘 나와 있다. 여하튼 나는 그 시절 그 거리에서 인생을 배웠고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것이 앞으로 하게 될 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