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부분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신은 자유롭게 살고 계신가요?

by krush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지만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는 듯, "학생"이라며 나를 불러왔다. 나는 조용히 이어폰을 내리며 기사 아저씨의 말에 듣는 시늉을 했다.


기사 아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스물 여섯이라고 대답하니, 아이고, 너무 젊어 보여서 학생인 줄 알았네 하며 껄껄 웃으셨다. 아직은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왠지 칭찬으로 말씀 하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기사님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보았다. 뭔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지만, 머리도 굉장히 깔끔하고, 여느 택시 기사 분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계신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기사님은 갑자기 본인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거 한번 봐" 라고 말하셨다. 핸드폰에는 4~7살 정도 보이는 여자 아이가 좋은 집 거실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누군가요?" 라고 물었다. 기사님은 "내 손주, 내일 보러 가려고"하며 웃으셨다. 왠지 아까 받은 칭찬에 대답할 때가 된 것 같아 나는, "손주요? 기사님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시지 않는데"라고 답했다. 기사님은 그런 칭찬 자주 듣는다며 본인 딸이 눈썹 문신을 해준 얘기를 하시다가, 다시 손녀 자랑을 이어가셨다.


잠깐이나마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손자 손녀를 아끼는 마음이 드는구나. 나도, 내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셨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기사님은 손녀가 이렇게 노래를 잘한다며 영상을 보여주셨다. 나는 정말 노래도 춤도 잘 하네요 하며 칭찬을 해드렸다. 그런 말을 너무 듣고 하시는 게 눈에 보여서,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랑 비슷한 기분이 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사님은 또 물었다. "학생은, 아니 청년은 뭐하고 사나?" 나는 대충 내 상황(대학원)을 설명 드렸다. 잠깐 '오오' 하시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기사님은 이제 딸 자랑을 시작하셨다. 따님이 둘이 있는데 결혼하고 어디에 살고, 차는 뭐고 집은 뭐고. 손녀 얘기를 하실 때는 어린 친구의 사진을 봐서 그런지 나도 칭찬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는데, 질문 하나 던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기사님의 의도가 보여서 잠깐 맞춰드리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따님 분들 덕에 좋으시겠어요"라며 맞춰드렸다.


기사님은 한참을 딸 자랑을 하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물으셨다. '그쪽 진로는 좀 별로 아닌가?'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네?" 라고 대답했더니 어차피 두뇌는 유전이며,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적당히 하다가 취직할 거면 빨리 취직 하는 게 낫다는 등 말씀하셔서, 나는 그냥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쉬운 일은 없죠". 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기사님은 본인 친척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연신 연설을 하셨다. 나는 또, "대단하신 분들 이네요"라고 대답했다.


기사님의 루틴에 질린 나는, 슬슬 집에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또 다시 말을 걸어오셨다. 내 학벌을 물어보시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택시 기사 일을 하게 된 경위와,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등 본인의 얘기만 계속 늘어놓으시다가 집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한 가지 칭찬을 한 뒤에 자신의 자랑을 여러가지 말하거나, 처음 보는 택시 승객의 진로를 꼬집다가도, 자신의 말의 정당성을 위해 본인의 이력을 얘기한다던가. 스스로 택시 기사라는 직업을 안 좋게 보면서도 나이 들고 '어쩔 수 없이'를 강조하며 본인의 직업을 이어가지 못해 하게 된 경위를 열심히 설명하거나 하는 것들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단순히 이 사람. 한 사람이 이렇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조금은 일반적이고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 마치 내가 살아온 길을 그대로 걷는 다면 생기는 일에 대한 암시 같은 것으로 느껴져, 마치 내 미래를 스포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다른가?' 나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에 돈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명예로우며, 얼마나 권력을 가지고 있고 라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런 사람 즉, 남들보다 뛰어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가? 이 사람은 정확하게 그 길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고, 자신의 자존심을 자기가 이뤄낸 업적을 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빗대어 지켜오고 있는데, 나라고 다른가?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과 누구를 가져다 대도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각자의 삶은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으며,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배움과 현실은 단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었고, 자라오면서 받았던 공부와 계급에 대한 압박,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계급론에 빗대어 나의 자존감을 채우고,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는 무시를, 나보다 잘난 이에게는 질투를 일삼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서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핑계를 대었고,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굳이 한마디라도 더 덧대어 나를 치켜세우고 내 자존심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했다. 택시를 타는 도중 들었던 불쾌감은 한 사람이 아닌, 나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 그리고 이 사회로 향했다. 나는, 우리는 배운 것과 다르게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남들의 기준에 빗대어 나와 내 주변을 재단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당장 집 밖을 나가서 우리는 당장 법이 허용하는 한 무슨 짓을 하던 사실 상관이 없다. 놀랍게도 사족 보행으로 돌아다니더라도 상관없다. 인간의 삶에는 사실 무한한 자유가 있다. 아무도 태어날 때부터 정상적인 걸음거리를 하라고 정해져 있지 않고, 아무도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다른 인간들의 눈치를 보며 그러한 자유들을 스스로 하나하나 박탈해 나간다.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물론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의 말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사회적 시선에, 우리 나름의 손익 계산에 따라 그 자유를 온전히 활용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삶을 살아갈 때에 남들의 잣대, 남들의 시선, 소위 말해 "일반적인" 우열을 따지며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것에 나 스스로와 그 가치를 의탁하며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자유의 일부분 밖에 누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어떤 것들을 제외하고, 남들보다 잘나고 남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환경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되어있다. 절대 남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도록, 자기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한 선택지 만을 고르며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남들을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일반적'이라고 하는 편견을 조금 내려 놓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취향을 쫓는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훨씬 넓어진다.

우리는 바닥을 기어 다닐 수도 있고, 걷다가 갑자기 달릴 수도 있고, 나이가 들고 사내에서 높은 직급에 올라 남들에게 어른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할 상황 같더라도, 어릴 때 신발 주머니를 돌리며 돌아다니던 시절처럼 총총 걸음을 하며 뛰어 다닐 수도 있다. 단순한 꽃과 나무의 모습에 감탄할 수도 있고, 쪽팔려서 울음을 참는 게 아니라 엉엉 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인', '내 지위', '나이' 등에 해당되지 않는 일을 대부분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시선과 남들에게 맞추는 것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와 같이, 내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등 분명히 손익을 따졌을 때의 이점들이 있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들에 너무 매몰되어 자기 자신을 그 길 하나하나에 맞추다 보면 앞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 많은 가능성들은 사라져버린다. 택시 기사 아저씨를 보고 나는, 그 사람의 말 하나 하나가 어느 순간 그 자유의 짐을 지기 무서워 던져버린 나의 마음가짐과 너무 닮아있고, 그 사람을 통해 나의 미래를 먼저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의 택시 운전을 하는 내가. 젊은 학생에게 할 법한 얘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가 마치 정상인인 척, 착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척, 마치 세상의 부조리한 무언가를 알아차린 지식인인 척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의 하루는 자유로웠는가? 자유를 주제로 쓰는 이 글 조차도 자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