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발 닿는 대로 걷다가 숨어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만난다.
사람도 없고 한적한데 분위기가 고급스럽다.
휴대전화 한켠에 저장해둔다.
그리고 다음 번 사람들이 '어디 좋은데 없나?'라고 물어보면 살며시 꺼내든다.
승률은 100%.
어디서 이런 곳을 찾았느냐고 경이로운 표정으로 내 눈을 쳐다본다.
소스 좀 알려달라고 내 입을 쳐다본다.
- '내 영업 비밀인데 이곳은 내가 걷다가 발견한 곳인걸'
생각하며 대답 대신 씩 웃고 만다.
이렇게 나만 알던 소중한 장소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느덧 입소문을 타고
SNS에 노출되고 바이럴이 생성된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안에 모든 일이 이뤄져서
다음 번 가보면 발 디딜 틈 없이 복작복작하고 시끌시끌하다.
늘어나는 인원 수용도와 비례해 사그러드는 나의 관심.
- '이젠 나 없이도 잘 지내시겠네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이 장소에 대한 내 역할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장군 김유신이 천관의 집쪽으로 다시 가지 않았듯, 나도 두 번 다시 발길을 그리로 돌리지 않는다.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한 병원이 있다.
이번에도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들어선 곳인데
아! 너무 좋았다.
의사 한 명이 이런 인테리어를 했을 것이라고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아늑함,
귓가를 간지럽히는 영어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영상의 재잘거림,
무겁지는 않지만 나른하게 만드는 얕은 공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취향이 진하게 배여있는
마치 니치향수같은 깊숙한 맛이 있는 병원이었다.
의사를 만나보았다. 깔끔한 옷 매무새에 어딘지 모르게 진료실도 아늑하다.
이 의사가 멋쟁이인 것일까?
몇 주 후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가본다. 이번에도 같은 옷차림에, 대신 편안한 신발.
한 번 더 진료차 가봤다. 이번에도 같은 옷차림.
내가 이렇게 몇 주간 병원을 탐방하는 동안 이번에도 손님이 늘었다.
- "오늘은 예약이 다 차서요... 다음 번 예약을 잡으시려면 다음 주 중순은 되셔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예약 잡기가 어려워졌다. 아쉬워서 입맛을 쩝 다신다.
내가 포근하게 누리던 잔잔하고 아늑했던 공간이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체취로 채워들어간다.
병원 입장에선 잘 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만 알던 공간이 뺏긴 느낌이라 못내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만 알고 싶은 것'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나만 아는 매장은, 고객 수가 적기에 사장이 나의 작은 행동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일까.
나의 작은 결제가 그 사장에게는 의미 있는 주문이 될 수 있고,
나의 작은 질문이 사장에게 개선의 여지를 줄 수 있으며,
나의 작은 의견이 사장에게 희망 또는 절망을 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불특정한 한 인간이 내게 기대는(dependent) 느낌을 좋아했던 것일까?
또는 그 공간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존재감으로 꽉 채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장악력에 대한 싸움이 아니었을까.
이 공간에 대한 본능적 욕심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나만 아는' 공간을 개발하러 나간다. 그리고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살짝 소개해주고 싶다.
그 공간이 나의 존재감과 취향으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그래서 나의 지인들도 그 곳에 들어섰을 때 자연스럽게
- "아, 000가 떠오르는 공간이네, 분위기가 참 닮았어."
라고 나를 느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