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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하는 남자
Nov 26. 2021
한 시간 반이나 버스를 타고 달려간 곳은 서귀포에 위치한 숙소였다, 나름 적당한 가격에 조리 시설이 구비되어있는 숙소, 인테리어도 깔끔해 보이고, 근처에 먹자골목이나 시작도 위치해있다는 얘기에 덜컥 예약을 했더랬다.
그리하여 아직은 익숙지 않은 지도 앱과 숙소 앱,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동료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가며 길을 찾아보았는데, 숙소가 어디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대략 약도가 가리키는 근처까지는 간 것 같은데, 집주인이 보내준 약도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알 수가 없는 상황. 혹시 여기? 싶어서 찾아간 건물에는 심지어 우리가 배정받은 호수 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탄 탓에 몸은 지쳤고, 배낭은 무겁고, 익숙지 않은 신발 탓에 발도 너무 아파왔다. 그저 짐을 내려놓고 쉴 생각에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가 아니면 도대체 어딘인데!라고 화가 날 찰나, 지도를 다시 보고 다른 건물에 들어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잡은 숙소는 근처의 호텔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나는 아직 모르겠지만, 호털의 특정 호실을 사서 따로 꾸며 관리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호텔 상호로 알려주었으면 편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조금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냥 우리가 못 본 거였다. 조금 일찍 알아챘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나 힘들게 찾아간 숙소는 꽤나 깔끔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일단 세탁기가 눈에 보여 입고 있던 옷들은 죄다 세탁기에 때려 넣고 돌려버리고는 침대에 눕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켜 놓은 보일러가 전해주는 온기를 느끼며 한껏 몸을 늘어뜨리고는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오늘 저녁은 고기다. 제주에 왔으면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렇게 정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주변의 고깃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도 앱을 켜니 주변의 식당들이 뜨면서 손가락으로 찔러보면 별점과 함께 리뷰들이 뜬다.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편리해진 세상이다. 주변의 무수한 식당들 중 유독 별점이 높고, 리뷰 수가 많은 고깃집을 찔러본다. 다행히도 숙소에서 멀지 않다. 나의 아내는 배고픈 상태로 많이 걷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그 사실을 체득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던 탓일까, 찾아간 고깃집에는 아직 빈 테이블이 많이 있었다. 둘이 함께 쭈뼛대며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했다. 이곳은 돼지고기를 한 근 단위로 파는 근고기가 유명하다는데, 나와 아내는 둘 다 덩치에 비해서 소식하는 편이기에 다 먹을 자신이 없어 삼겹살을 주문했다. 재미있게도 갈비뼈가 길게 붙어있는 고기가 나왔는데, 일하시는 이모님께서 손수 자르고 뒤집어서 익은 고기는 옆으로 빼 주셨다. 소스도 멜젓과 갈치 속젓 그리고 쌈장에 양파절임 등 여러 가지가 나와 곁들일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갈치속젓과 먹는 게 가장 맛이 좋았다. 아내는 젓갈에 고기를 찍는 건 비려서 별로라는 평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가까이 위치한 시장으로 갔다. 올레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어제 간 동문시장만큼이나 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시장 안에 들어가 걷다 보니 한쪽에서 큰 소리로 호객을 하시는 분이 눈에 보여 우리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제주도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내부가 크고 넓어 많은 기념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옛날 옛적 수학여행이나 가면 볼법한 천편일률적으로 보아오던 기념품을 생각했지만, 요새 나오는 것들은 귀엽고 예쁜 것들이 많아 여기저기에 눈을 빼앗기며 힘겹게 앞으로 나가야 했다. 겨우겨우 기념품 가게를 빠져나오니 어느새 양손에는 짐이 늘어있다. 시장의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와플을 파는 가게가 보여 일단 줄을 선다. 얇고 바삭한 와플에 녹차 크림을 잔뜩 올려 먹으니 디저트로 꽤나 좋았다. 아내는 내일 여기에 꼭 다시 올 것을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지켜지는 일이 없었다. 끝내 이뤄지지 못하는 꿈이 있는 것처럼, 결국 지켜지지 못하는 다짐도 있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뚜레쥬르가 눈에 보여 들어간다. 캐나다에 살았던 한국인에게 한국에 흔히 널려있는 이 프랜차이즈 빵집은 꽤나 부러운 것 중 하나였다. 한국에만 있는 빵도 있으며, 나오는 빵의 느낌도 한국의 그것과는 달라 언제나 한국 빵에 대한 그리움을 달고 산다. 그 마음은 곧 충동이 되어 탐욕스레 빵을 봉지에 담아 나왔다. 숙소에서 나올 땐 빈 손이었건만, 들어갈 때가 되는 양손 한가득이다.
숙소에 들어오니 나오기 전 널어놓은 빨래와 보일러로 따뜻하게 덥혀진 방바닥이 우리를 맞는다. 내일 하루 더 이곳에 머무를 예정이라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