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윤 Mar 18. 2024

02_중심 잡기

그래 떨어지면 어때 다시 걷지 뭐


따스한 볕이 들어오기 시작한 일요일 아들과 일요일 산책에 나섰었다. 

한참 크던 나이라 집에 있는 것을 몇 시간 이상 견디질 못한다. 장미덩굴이 가득한 아파트 경계 담벼락을 걷던 아이가 갑자기 인도의 경계석에 올라 양팔을 벌리고 걷는다.  떨어지지 않으려, 미끄러지지 않도록 작디작은 입술을 아금박스럽게 다물고 걷고 있었다. 아마 속으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 너는 벌써 삶의 중심을 잡는 법을 연습하고 있구나.’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이고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 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많게는 일 년에 몇 번, 짧게는 이삼 년에 한 번, 길게는 10년에 한 번 정도.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중심이 흔들리는 경험을 숱하게 한다. 흔들리는 무게중심. 그게 삶이 가진 속성일 수도 있다. 평탄한 꼴을 못 보고, 인생은 자꾸 나를 흔들어 댄다. 내가 흔들리는 것인지 세상이 흔들리는 것인지. 세상은 평온한데 나만 느끼는 어지럼증에 불과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 내면은 어쨌든 그런 흔들림을 경험하고, 가끔은 인생이란 놈한테 욕도하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 같지 않은 돈 욕심 많은 담임을 만나 1년 넘게 마음고생했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여름날 물놀이를 가서 세상을 등 졌을 때, 그토록 원했던 토익점수가 노력과 무관하게 1년 넘도록 그 점수가 그 점수였을 때, 좀 더 나은 직장을 잡으려고 대학원에 갔더니 IMF가 터졌을 때, 늘 취업문턱에서 몇 번이고 좌절할 때, 취업이 안되어 위촉연구원 생활시절  직장 내 정규직들과 차별, 아버지께서 치매판정을 받고 다발성 뇌경색이 발병했을 때, 건강하던 아내가 암선고를 받던 날도 내 삶의 무게중심은 흔들렸었다. 이런 흔들림의 경험이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 매 순간순간이 깨달음의 변곡점이 이었던 것 같다.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은 내가 어떻게 살지를 역설적으로 깨우쳐 따스한 사람이 되게 하였고, 오르지 않던 토익성적은 쉰이 넘은 지금 까자 내가 영어공부를 하게 하고, 늘 성과는 나중에 찾아온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으며, IMF는 기고만장할 뻔한 나의 자만감을 겸손으로 만들었고, 면접 탈락의 쓰디쓴 맛을 보게 했지만, 지금은 외부 면접관으로 일할 때 지원자들의 본심과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안목을 갖게 해 주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암선고는 나와 아내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고, 아내는 수술 후 완치되어 운동을 하는 더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가족들 간의 희생과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삶은 늘 나를 흔들어 깨우치게 만든다. 잠든 사람을 깨울 때 우리는 약간 흔들어 주지 않던가. 조금씩 흔들려야 성장하는 것 같다.  그 흔들리는 삶의 변곡점 위에 설 때면 간당 간당한 긴장을 품고 양팔을 벌리고 심호흡을 해보자. 무언가 또 깨닫는 게 있겠지, 중심만 잘 잡고 떨어지지만 말자고, 침착하게 해 보는 거라고 내 심장에 귓속말로 읊조린다.


그날도 그랬었다. 인도의 경계석 위에 양팔을 벌리고 걷던 모습을 보고 아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늘 중심을 잘 잡기를 바란다. 아들아, 많이 걸어 보렴. 안 가본 길을 걸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경험은 없단다. 늘 삶에서 중심만 잘 잡으면 된단다. 행여 떨어지면 다시 올라서서 걸으면 되는 것이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03_운동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