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소유권과 로크의 단서조항-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오너라. 너희 집 지어줄게”
이는 전래 동요로 아이들이 흙이나 모래로 손등을 이용해 둥근 집을 지으며 부르는 놀이노래이다. 그 가사의 유래나 의미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이 동요의 집은 새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얹은 두꺼비 등 모양의 둥근 초가집이었다. 아이들에게 집은 가족이며 성장기에 정서적인 안정을 확보해 주는 공간의 전부이다. 초가집이라도 내 집의 소유는 아이에게 중요하다. 그 집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살을 부대끼며 자라는 그곳은 텃밭과 같이 작은 생명들이 자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동요가 들려주는 동화 나라의 집들은 따뜻한 이미지에 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대지와 밀착된 공간들이었다. 소유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오늘의 집과는 사뭇 달랐다. 불과 몇십 년만에 평화로운 이미지의 집들은 사라지고 현실은 집 한 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걸어야 할 만큼 절박한 전쟁터와 같이 변해 버렸다.
서울의 자가 점유율은 2024년 기준 44%에 그치고 있다. 이 말은 서울에서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두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의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보유율은 더 낮을 것이다. 나는 부동산 문제에 문외한인데도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자연권과 재산권 이론과 관련이 있고, 지금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든 부동산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로크가 말하는 자연권은 자유, 생명 그리고 재산권이다. 이 세 가지 권리는 대부분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로크의 영향을 받아 선포된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나와 있는 천부적 기본권 역시 자유, 생명 그리고 행복 추구권이다. 로크가 말하는 재산권보다 더 확장된 개념인 행복 추구권에서 물질적 재산의 소유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나라 헌법도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사유재산의 소유 없이는 행복 추구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거주의 안정성을 확보해 주는 집과 토지이다. 로크는 이 사유재산의 토대를 노동으로 보고 있다. 노동력과 재산 소유는 불가분의 관계이니, 일해서 돈을 벌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주인 없는 산의 과일나무에 달린 열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 공동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무에 올라가 그 열매를 따는 순간 과일의 소유권은 나에게 속한다. 나의 노동력과 수고가 사적 소유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공동의 재산에서 사유재산으로 이행하도록 매개하는 것이 노동력이다.
로크에 의하면, 자기의 노동력(labor)과 몸(person)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의 자연권이다. 그러나 노동력은 시장에서 임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임금 노동자의 사유재산 형성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진다. 이론적으로는 무제한의 사유재산도 가능하나 로크는 그 유명한 단서 조항(proviso)을 붙여서 그 소유의 한계를 정하고 있다. 사유재산의 소유와 관련해서 두 가지 단서 조항**을 부동산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자.
첫째 조항은 이러하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충분하고도 양질(良質)의 것을 남겨 놓을 만큼만” 소유해야 한다.
이 말은 위의 예처럼 열매를 몽땅 따서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남겨 두어야 하고, 그것도 질이 나쁜 열매만 남겨 두지 말라는 조건이다. 이 조건을 부동산 문제에 적용해 보자. 누구라도 자신의 노동력 즉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역량(자기 자본, 대출, 갭투자 등)을 투입해서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또 그 행위도 정당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소유가 다른 사람의 소유를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자유, 생명, 재산권이라는 타인의 자연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로크는 누구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더라도 다른 사람도 주택을 소유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양과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양질의 주택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붙인 것이다.
1가구 1주택은 선하고 1인 다주택 소유는 악이라는 말은 아니다. 주택 소유의 문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다주택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제는 다수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나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주택 소유의 권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한 사람이 여섯 채의 주택을 소유할 경우, 다섯 명의 무주택자에게 돌아갈 소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또 새로운 주택 공급의 혜택이 무주택자에게 최대한으로 돌아가는 소위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이 보강되지 않는 한 무주택자의 소유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런 상황이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고, 공급의 불안정성을 높게 만들어 왔다. 다른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남겨 놓아야 할 몫까지 소유하는 일은 미필적 고의에 의해 타인의 천부적 자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로크의 첫 번째 단서 조항은 불평등한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여러 채의 집과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되 그 자유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안정적으로 주거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나 않는지 돌이켜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의 첫머리 ‘공감에 관하여’(Of Sympathy)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이와 상반되는 원리들이 있는데,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연민(pity)과 동정(compassion)의 감정을 느낀다.’
집을 소유하고 처분하는 일은 경제적 행위이고 이 행위를 적절하게 만드는 기본 원리를 아담 스미스가 왜 공감이라 했을까? 다른 사람의 행복 추구권(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나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재산 소유의 기회를 남겨주어야 하는 이유는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