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2)

-재산 소유권과 로크의 단서 조항-

by 생각하며 놀자
로크초상화.jpg 로크의 초상화


둘째 조항은 이러하다. ‘부지런하고 공유물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유재산 소유의 권리를 가진다.’

이 말을 풀어보면 일하지 않고 게으르며,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재산이라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사유재산의 소유와 사용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로크는 “자선 행위가 없는 재산은 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돈놀이하며 불로소득을 취하는 고리대금업자나 은행가를 미워했던 이유도 로크의 단서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조건을 부동산 문제에 적용해 보자. 듣기에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건물주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왜 그들이 건물주를 선호하는가는 분명하다.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만을 탓할 수 있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시골에 농지를 사놓고 농사는 짓지 않고 땅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농지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는 것보다 개발 후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서 농사를 짓는 노동의 수고 없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헌법적 원칙마저 무시하는 것이다. 독일 헌법처럼 토지 공개념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은 토지 공개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공유 재산만이 아니라 사유재산도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소유하고 사용할 때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자선 행위는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산의 합리적 사용 방식이기도 하다. 그 사회적 책무는 소수의 재벌과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적어도 경제적 중산층 이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로크의 단서 조항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 해법은 아니지만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돌이켜보게는 할 수 있다. 집과 토지가 재산 증식의 수단에만 머물지 않도록 하며, 나의 재산 소유와 다른 사람의 자연권인 거주권 보장이 양립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두꺼비에게 소원을 빌면 헌 집 대신에 새집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집 하나 장만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세상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 본다.



경자유전.jpg



사족:

집 한 채가 소유 재산의 대부분이거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 국민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에게 집은 재산을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 가족의 생명,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다. 또 이들에게 집이란 쫓겨날 위험 없이 안정과 평온한 일상이 보장되는 곳이며, 자식들의 꿈이 영글어 갈 수 있는 인큐베이터 같은 안전한 공간이다. 원시 시대부터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팔아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집을 짓는다면 거기에는 사람과 삶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오용득 선생은* 독일어 어원 비교를 통해 건축하다(bauen), 거주하다(wohnen) 그리고 존재하다(sein) 사이에 의미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는 행위는 모두 우리의 삶과 관련되어 있고, 그 삶을 통해 우리의 존재는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변화한다. 집 장사가 짓는 집과 자기가 살 집을 짓는 것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존재론적 차이가 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집에는 소유욕은 존재할지 모르나 공감의 온기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화려하고 고급스러워도 거주가 불안한 월세나 전셋집보다는 누추하고 불편하더라도 내 집이 더 소중하고 절실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는 하이데거의 말을 바꾸어 보면 ‘공간은 존재의 집’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간 안에서 우리의 존재는 형성되고, 성장하고 변화한다. 공유하는 언어 공간 안에서 타자와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자기 존재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확보하기가 쉽다. 마찬가지로 집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살아 있는 생명의 공간이다.

집은 단순히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니다. 집이 제공하는 공간은 우리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세계이며, 울타리이며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 위에 삶의 설계가 이루어지고 미래를 기획하고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용기가 자란다. 상주할 집이 없다는 것은 곧 존재의 불안을 낳는다. 무주택자인 이들은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는 불모지에 내몰린 ‘던져진 존재’와 같다. 나에게 집이 필요한 만큼 타인의 집도 소중하고 그것을 소유할 권리가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존재론적 당위이기 때문이다.

*오용득, 「하이데거의 건축론과 집의 의미」, 대동철학 94권, 대동철학회, 2021. 01, 273-4쪽 참고.

**필자는 로크의 단서 조항을 명목적 조항(2개)과 도덕적 조항(2개)으로 나누어 보았고, 이글에서는 두 조항만을 언급하고 있다. 『근대철학자가 본 한국 사회』, 228-230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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