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대한 심리적 분석-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갑질 현상은 종종 뉴스에 나오는 소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뉴스거리가 될 정도의 갑질은 그 경우가 좀 심할 때이고, 그렇지 않은 갑질은 대부분 은폐되거나 문제라고 의식조차 안 된다. 그리고 갑질을 뉴스로 접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분을 느낀다. 그런 갑질을 나도 비슷하게 당했거나 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인의 갑질을 보며 분노를 느끼면서도 반대로 나도 갑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 상사에게 갑질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편의점 알바생의 무심한 듯한 응대에 대해 반말로 훈계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고 할 때 그는 이제 갑질의 가해자가 된다. 갑질 행위와는 무관할 것 같은 우리들 대부분은 모르는 사이 무심코 갑질의 주체가 언제라도 될 수 있다. 이 말은 누구라도 갑질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갑질 행위는 맞상대가 존재하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을’이라 부른다. 이 양자를 갑을관계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갑을관계는 계약 관계에 있는 쌍방 간의 관계이지만, 갑질은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계약 관계가 아니어도 힘, 돈, 지위, 서열 등 온갖 형태의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갑질이 발생할 위험이 상존한다. 부모와 자식처럼 가족 내에서도 갑질 현상은 생길 수 있다. 학교, 직장, 사회, 정부 조직 그리고 심지어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서도 갑질 행태는 발견된다. 그렇지만 계약상 갑을관계와는 달리 갑질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내가 갑질에 대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갑질 행위의 원인을 분석해 보고 그 극복의 방법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
갑질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공공분야에서의 여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있고, 자치단체에서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특유의 친절한 접대 문화(오모테나시)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도 진상 고객을 일컫는 ‘카스 하라(customer harassment)’ 방지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고객센터 어디에서나 전화 음성을 통해 폭언이나 언어적 성희롱 등을 하지 말라는 안내를 듣고 있다. 이런 방식의 대중적 계몽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일은 이런 갑질 행위의 심리적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다. 갑질 행위의 배후에는 다음 세 가지 심리적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째, 갑질 행위 뒤에는 왜곡된 인정 욕구가 놓여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모로부터 인정받는 일이 어릴 적에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 상사 등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도 중요하다. 인정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나의 인정 욕구를 실현하는 길에는 타인의 인정이 반드시 관련되어 있다. 이것이 상호 인정이다. 그런데 갑질은 이런 상호 인정 관계가 깨질 때 발생하는 갈등 상황이다. 이정은 선생은* 이것을 ‘자신의 욕구가 타인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도 타인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거나 타인이거나 간에 인정 욕구의 대상은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인격과 몸에 대한 인정이다.
갑질의 가해자는 상호 인정의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다. 피해자의 인격, 권리, 자존감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정 욕구만을 강요하는 사람이다. 한때 유행했던 말 중에 ‘손님(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으나 그때는 이 말 속에 갑질 행위를 조장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왕과 신하,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상호 인정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왕 노릇, 주인 행세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정 욕구는 요구하면서 신하와 노예의 인정 욕구는 외면한다. 지금 시대에 왕과 신하, 주인과 노예 같은 계급 질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손님은 왕이라 생각하고 갑질하는 사람의 의식 안에는 여전히 계급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갑질은 왜곡된 형태의 인정 욕구에서 발생하는 일탈 행위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차원에서 갑질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집단적인 갑질의 한 형태로 나는 소위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시위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의 적대적인 말과 행동에서 갑질 행위에 가까운 현상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60대와 70대 노인층이 대부분인 이들의 유사한 갑질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 다수는 불편하고 싫어도 참고 견디어 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치 이념적 평가를 떠나서 나는 이들이 내는 목소리 안에서 집단적인 인정투쟁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 가족, 사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이들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우리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열패감에 이들은 우리 사회를 향해 ‘우리도 여기에 있으니 인정해 달라’는 외침처럼 들린다. 이런 왜곡된 인정 욕구가 불만스러운 사회를 향해 유형, 무형의 갑질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