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은 왜 하는가? (2)

-갑질에 대한 심리적 분석-

by 생각하며 놀자

둘째, 갑질 행위의 심리적 배경에는 공감력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든지 본성적으로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뇌에 있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신생아실에 나란히 누워있는 영아들이 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것도 공감적 각성 반응이라고 한다. 만일 사람에게 이런 공감력에 결핍이 생기면 마치 특정한 비타민이 결핍되었을 때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것처럼, 타인에 대해 공격적인 성향과 갑질 행위라는 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철학자 흄(D. Hume)의 말처럼 ‘사람의 마음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이 말은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어 모른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내 마음을 비춰보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을 것이니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반성적 공감의 힘인데, 이런 공감력이 결핍되면 돌이켜 보는 힘이 약해진다. 거울로 비유하자면 탁한 거울이 제대로 반사하지 못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류가 신앙의 시대와 이성의 시대를 거쳐 이제 공감의 시대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감의 시대를 말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공감력을 잃어가는 시대가 아닌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다. 파편화된 개인주의가 확대되고 생존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은 그 힘을 잃기 쉽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war of every man against every man)’가 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경쟁 상대인 타자는 인격을 지닌 동포 시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거되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 갑질 행위는 더 쉽게 발생한다.


셋째, 절제되지 않는 권력 욕구(권력의지)는 갑질 행위를 유발하는 일종의 심리적 강박감이다. 자신의 지위, 권력, 힘 등을 이용하여 자기주장을 상대방이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논리학에서는 위력에 의한 논증(argumentum ad baculum)이라 하며, 이는 심리적 오류의 한 종류이다. 갑질 행위 안에는 이런 위력에 의한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권력 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직권남용죄)’는 상급자의 위력이 갑질 행위가 될 때 묻게 되는 죄목이다. 대부분의 개인 간 갑질 행위도 권력, 힘, 지위 등이 갑의 권력 욕구 때문에 불균형 상태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 자기에게 부여되지 않은 권력을 남용할 때 갑질을 넘어 범법자가 되듯, 권력 욕구에 대한 과대망상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과 실질적인 권력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윤흥길의 단편 소설 ‘완장’에 나오는 건달 임종술이 저수지 감시원으로서 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갑질이라 볼 수 있다. 그가 갑질 행위를 하게 되는 배후에는 완장을 채워준 저수지 주인 최 사장과 자신을 동일한 권력자로 보려는 권력욕이 놓여 있다. 완장을 차기만 하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나 된 것처럼 갑질을 하는 이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런 절제되지 않은 권력 욕구가 우리의 의식 안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적 관점 취하기(mutual perspective taking)


갑질의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가해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누구나 갑질 행위의 피해자가 되기도 쉽고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갑질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어디서나 상담사와 전화 연결할 때 성희롱과 언어폭력 등 갑질을 예방하는 ARS 멘트를 먼저 들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갑질 행위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정보통신망법을 근거로 상담 내용이 녹음된다는 것을 고지(告知)하여 조심시키거나, 상담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라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감정적 호소를 하는 것도 갑질 예방의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일차원적이고 계몽적이고 은근한 위협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편치 않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개인의 차원에서 갑질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두 가지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하나는 갑질의 피해자 경험을 잊지 않고 회상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갑질의 피해자가 되어 본 경험들은 가지고 있다. 그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나 불쾌감, 고통 등을 잊지 않고 상기시키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는데, 갑질의 피해자 경험을 다시 비춰봄으로써 고통을 상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고통의 메아리’라고 부르고자 한다. 메아리는 가고 오는 쌍방향 운동이다. 나의 고통이 메아리 되어 타자의 고통으로 되돌아오거나 타자의 고통이 메아리 되어 나의 고통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는 메아리가 아니듯 내가 겪은 갑질 피해의 경험에 반향(反響)이 없다면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기는 어렵다. 갑질의 피해자가 외치는 고통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 볼 것을 제안한다.

두 번째는 공감력 회복과 역지사지의 정신을 살리는 일이다. 공감력 결핍이 갑질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배후라고 진단했다면, 공감력을 회복하는 일은 갑질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길이다. 공감력 회복과 역지사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공감력을 키우는 것은 역지사지의 실천을 쉽게 만들고, 반대로 역지사지는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한테서 잘 드러난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인정에서 상호 인정으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이는 마치 역할극(roll-playing)이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상호 인정을 경험함으로써 공감력과 역지사지의 역량을 기르게 하는 것과 같다. ‘상호적 관점 취하기(mutual perspective-taking)’도 쌍방향으로 역지사지하는 태도이다. 관점을 달리 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은 오래된 경험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정은, 『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하나』, 살림출판사, 2005.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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