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909km를 걸었다.
프롤로그 | 22살, 909km를 걸었다.
나는 아직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
22살, 909km를 걸었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배낭 하나와 두 다리만 믿고 떠났던, 2023년 10월. 어느덧 2026년 3월이 되었고, 여전히 산티아고에 들고 갔던 질문들은 마음 한 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인생에 답을 얻고자 걸었던 길 위에서 아이러니하게 답은커녕 질문만 품고 돌아왔다. 산티아고에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젊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패기와 무모함 덕에 도전할 수 있었던 길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나의 질문만을 품고 갔다. 스물둘, 나름의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어린 마음과 나이였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내가 겪는 아픔과 슬픔이 전부인 것처럼 모든 것이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스물한 살,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너무나도 큰 상처를 남긴 채 사랑이 나의 곁을 떠났다. 철석 같이 믿고 있었던 상대가 다른 이에게 동시에 마음을 주는 일을 목격했다. 그 일로 사랑을 부정했다. 그 무렵 가족의 죽음도 해당 시기에 겹쳤다. 연이어 오는 슬픔과 상실에 스물한 살의 나는 완전히 무너졌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얼 하며 살고 싶은지와도 같이 모든 인생의 방향키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나서 끊임없이 질문들은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나는 왜 살고 있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 늦은 사춘기가 온 듯한 기분이었다. 믿고 있던 신에 대한 존재까지도 질문했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던 시기였다. 삶에는 온통 물음표들만 가득했고, 그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했다. 그렇게, 배낭을 메고 909km의 여정을 떠났다.
왜 굳이 산티아고였을까?
산티아고를 걸으며 홀로 되뇌던 질문이었다.
산티아고가 우리를 불렀다고 생각해
길을 함께 걸은 친구가 건네준 말이었다. 그렇다. 산티아고가 나를 불렀다. 모든 것을 비우고 싶었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생에 '리셋' 버튼이 있다면 산티아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렇게 산티아고가 나를 부르고 있었고, 40일 동안 909km를 걸었다.
모든 것을 비우며, 나를 마주하며 걸었다. 길 위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홀로 걸었던 길 위에서 울고, 적막함 속에서 때로는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날은 깊은 고독감을 느끼며 홀로 길을 걸었다. 그렇게 걸으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한 권의 일기장만을 들고 갔던 산티아고는 두 권의 일기장이 되어 돌아왔다. 답을 찾기 위해 걸었던 길 위에서 오히려 답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걸은 모든 발걸음이 모여 나를 만들고 있었고,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결국 나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각자의 질문을 품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듯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스물둘의 길을 다시 꺼내 본다.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그 길을 말이다.
그때 품었던 질문들을 다시 펼쳐본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질문들일지도 모른다.
909km의 여정이 담긴 글이다.
40일동안 걸으면서 수집한 소중한 순간들과 인연들의 모음집이다.
'산티아고 길 자체가 인생 같아요'
인생이 길이고, 길 자체가 인생이었던 시간들의 기록이다.
아직도 나는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
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다.
좋은 길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