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 _ 순례자의 마음으로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을 하다.

by 시원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렵지만 또 가보지 않았기에,

해보지 않았기에 오는 설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에 나를 온전히 맡겨보는 것,

예측할 수 없기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

예측할 수 없기에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에 그런 새로움에 나를 맡겨보려 한다.


2023. 10.10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적은 메모와

2023. 10. 11 프랑스 바욘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적은 메모



쉬운 마음이 되자.


걷기 여행의 첫 번째 다짐이었다. 친구 가족 없이 홀로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두려움 반, 설렘 반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말 내가 가나?' 라는 그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뇌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 처음으로 13시간 비행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콩닥콩닥 -

계속해서 설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새로움 속에서 오는 긍정적인 두려움은 오랜만이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났을 때 오는 두려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예측 불가능성'에 그대로 나를 맡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여러 개의 길이 존재하는데, 순례길 입문자들은 '프랑스 길'을 많이 택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걷는 길이기도 하고 가장 유명한 길이기도 하다. 나도 순례자 입문자로서 프랑스 길을 택해서 걷게 되었다.


순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순례자 사무실이 위치한 프랑스 생장에 가야만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도 발급 받아야 하며,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도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바욘으로 가서 생장까지 다시 한번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다. 파리에서 바욘으로,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기차는 새벽 5시. 아침 일찍 파리의 숙소에서 나와야 했다. 동이 트기 전, 파리 길거리에 홀로 나섰을 때 문득 두려움이 앞섰다. 익히 전해 들은 프랑스 파리 치안에 대해 생각하며 온갖 상상들은 하게 된다.


'혹시.. 뒤에서 나를 누군가가 갑자기 따라오면?'

'만약.. 갑자기 누군가가 나한테 돈을 달라고 위협을 하면?'


순례길을 시작도 하기 전에 오만가지의 상상들을 펼치며 거리에 나섰다.

안되겠다. 뛰자.


결국 나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전력질주. 100m 달리기도 이렇게 빨리 뛴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쫓아오는 이는 없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냅다 뛰었다.


헉헉 -

숨을 고르며 도착한 기차역은 어두운 거리에서 유일하게 반짝 빛나고 있었다.


휴 -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기차역 안으로 들어섰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틈 사이에서 홀로 배낭을 매고 서 있었다.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걷고 있는 나의 모습 사이에서 생기는 낯선 감각들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나 진짜 걸으러 가나봐'

그제야 실감이 났다.


한 손에는 카페 라떼를, 다른 한 손에는 크로와상을 들었다.

그렇게 바욘행 기차에 올랐다.


IMG_1175.jpeg 바욘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본 일출

생장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파리에서 바욘행 기차를 타고,

바욘에서 생장행 버스를 타며 드디어 도착을 했다.


내일이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론세스바예스까지 걸어가는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다.


그 걸음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부디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길 -


생장에 도착을 하니 긴장이 조금 풀린다.

이제서야 긴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생장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55번 알베르게에 오니 알베르게 자체가 기숙사 같아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거 같다.

재미있게, 안전하게 지내야지!


그리고 무지 덥다.

현재 30도.


2023. 10. 11일 생장에서


순례길의 시작점 프랑스 생장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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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고,

들리는 도시와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마다

쎄요(도장)을 찍게 된다.


첫 번째 도장과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의 첫 쎄요와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가방에 달고,

909km의 여정을 준비했다.




55번 알베르게에서 본 생장의 모습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뜻한다. 55번 알베르게에 도착을 하니 한 방에 2층 침대가 여덟 개 정도 놓여져 있다. 남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한 공간에 여러 명이 누워서 자게 된다. 처음에는 작은 문화충격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금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었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각자의 짐을 풀고 내일 떠날 준비를 한다.


어떤 이유로 왔을까 - 궁금하긴 하지만 순례자들의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일까.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며 긴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간단히 이름과 어디서 왔는지 정도만 묻는다. 그 이상은 묻지 않는다. 숙소 안에는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문다. 그렇게 순례길의 시작을 기다린다. 저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로.


10월 초였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뜨거웠다.

마치 이 길의 시작을 열렬히 환영이라도 하는듯, 30도의 열기가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출발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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