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_ 온전한 고독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마주한 고독

by 시원

온전한 고독

혼자됨을 느끼며 걸었다.


끝없는 자연, 바람 그리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부엔까미노

무엇이 그들을 순례길에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까미노는 늘 함께하겠지


중간에 나도 아 내가 왜 까미노에 온다고 했지 - 라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이내 자연을 보며 용서가 되었고, 그리고 걸으며 울컥했던 순간도 있었다.

뭔가 자연 앞에 겸손했다고 해야 하나


2023.10.12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Day 1 10.12 (Saint Jean-de port - Roncesvalles) 25KM


온전한 고독


배낭 속에 설렘을 싣고 출발하던 첫 발걸음을 잊을 수 없다.

새벽 공기와 고요함, 고독함 그리고 정적.


이 날은 설렘이 앞섰던 걸까? 새벽 6시 30분에 간단히 알베르게에서 시리얼과 우유를 먹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순례길에서의 첫 여정이기도 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대장정이었기 때문에 동키 서비스 (가방을 맡기면 다음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가방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 를 이용했다. 가벼운 보조 가방을 하나 꺼내서, 점심과 중간에 먹을 간식들을 주섬주섬 담으며 배낭을 쌌다.


순례길의 출발점, 생장에서 론센스바예스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론센스바예스까지 가려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했다. 해발 1400m의 산맥을 걷다 보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게 된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이라니!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출발을 했다.


겨울 까미노는 해가 늦게 떠서 아침 일찍 나가면 어두컴컴한 거리만이 나를 반기고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날이니 혹여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새벽에 부랴부랴 나섰다. 새벽에 나온 거리에는 고양이들의 눈동자만이 반짝 빛나고 있었고, 순례자 동지들은 찾기 어려웠다.


어두운 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건 헤드랜턴 하나뿐이었다. 숲길을 헤치고, 밤하늘의 별들과 헤드랜턴의 자그마한 빛을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섰다. 김동률의 <출발>과 여행 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벗 삼아서 새벽의 고요함을 누리며 순례길에 나섰다.


<별이 진다네>의 귀뚜라미 소리 속에서 여행 스케치의 노래가 나오는 순간 별들이 노래를 부르며 나와 함께 걷는 것 같았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 하늘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늘은 주황색, 노란색, 하늘색과도 같이 여러 색깔들을 머금고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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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출발 _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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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에서 주어 담은 풍경들


피레네 산맥을 넘다 보면 겸허해지는 마음을 품고 걷게 된다.
산을 오르며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을 바라볼 때에도,
사람들과 걸으며 부엔까미노를 외칠 때에도,
자연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품고 한 걸음씩 내딛는다.




8시간의 여정을 거쳐서 론센스바예스에 도착을 했다.


끝없는 자연 속에서 외친 무수한 부엔까미노.

온전한 고독감을 누리며 길을 걸었다.


까미노에 오면 자연스레 친구가 생긴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동행을 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홀로 걷게 되니 조용히 길을 거닐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원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고독함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자연과 함께 생각들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론센스바예스에서 무사히 순례자로 등록을 하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섰다. 론센스바예스는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다.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넘은 고생한 순례자들을 위한 수도원이 순례자의 숙소로 쓰인다. 론센스바예스 안에는 몇 백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순식간에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북적이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짐을 풀고, 무사히 론센스바예스까지 도착한 나에게 수고한 의미로 바로 세르베자! (스페인어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8시간 동안 걸은 나의 발과 몸을 위로하듯이 맥주의 시원함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아, 이게 행복이지.


맥주를 쫙 들이켜고, 지친 다리를 의자에 올려 길게 뻗었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빛 아래, 살랑이는 바람이 조용히 볼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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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필연이 된다.


나만의 인연에 관한 철학이다. 우연으로 만나지만 결국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 사이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론센스바예스에서도 우연의 만남이 겹쳐서 인연이 된 까미노 동지를 만나게 된다.


론센스바예스에서는 순례자 저녁을 제공한다. 나도 순례자 저녁을 신청하였기에,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도착을 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저녁을 먹게 되고, 코스처럼 순례자 메뉴가 나온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와인. 완벽한 순례자 저녁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다가 같은 테이블에 있는 한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20대 여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의 또래를 찾는 게 어려웠기에 본능적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20대 여성, 나의 또래와도 같은 친구에게 눈길이 갔다. '뭔가 나랑 잘 맞을 거 같은데' 라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무작정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 너 이름이 소피지? 아까 저녁 먹으면서 들었어.
나는 시원이라고 해! 혹시 몇 살이야?'


소피 입장에서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갑자기 누가 달려와서 인사를 하지를 않나, 몇 살이냐고 물어보지를 않나. 순례길에서 나와 같은 20대 여성을 만나는 건 귀한 일이었다. 첫날이기는 했지만 길을 걸으며 한 번도 혼자 걷고 있는 20대 여성의 까미노 동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와 함께 걸을 까미노 친구가 생겼다. 그렇게 소피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피는 독일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들어가기 전에 까미노를 걷고 있는 친구였다. 소피도 자신과 같은 20대 여성을 처음 만났기에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신나게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전공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까미노에 왔는지, 내일은 어디로 가는지와도 같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며 복도에서 삶을 나눴다. 이후에 구스타보라는 멕시코 친구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까미노의 밤을 누렸다.


론센스바예스에서 처음 만난 소피와의 인연은 까미노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알고 보니 우리의 인연은 순례길의 시작부터 우연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인연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인연은 순례길의 시작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소피는 나와 같은 날, 파리에 도착을 했다.

파리에서도 같은 호스텔을 썼다. 같은 호스텔이었지만 다른 방이었기에 마주치지는 못했다.

둘 다 똑같이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바욘으로 갔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넘어갈 때에도 똑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었다.


작은 우연들이 겹쳐져서 결국 우리의 인연은 론센스바예스에서 닿게 되었다.

매번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린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인가 봐' 하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까미노에서의 첫 인연이 시작되었다.



까미노의 첫날이 저물었다.

무사히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온전한 고독함을 누리기도 하고,

우연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까미노가 나를 또 어디로 이끌지 기대하며,

수 없이 골아대는 순례자들의 고단한 몸을 대변하는 코골이 속에서 천천히 잠을 청해 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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