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함이 모여서 만든 까미노의 기적
“함께”
까미노에서 함께 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국적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고, 목적도 다른데
까미노에 있다는 이유로 함께 한다.
그리고 같이 걸어간다.
산티아고까지, 어디까지 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함께 하는 것, 길 위에서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
까미노에 있다는 게, 모두의 발걸음을 이끈다.
10.13일 산티아고 일기장
(Roncesvalles - Zubiri)
Day 2 10.13
Roncesvalles - Zubiri (21.5km)
길 위에서 함께함
론센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 소피와 함께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비슷한 인생의 타임라인 속에 있는 우리는 고민의 모양도 닮아 있었다. 나는 휴학을 하고 인턴을 하다가 온 산티아고 길이었고, 소피는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 과정을 하기 전에 온 산티아고 길이었다.
내가 휴학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런 질문과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20대가 끝날 거 같았다. 두려웠다. 아직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하나의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압박감 속에 휩싸였다. 당시에 디자인과 영상을 전공하고 있었던 나는,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도 못 찾고 있었다. 자꾸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질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나를 잃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피도 비슷하게 학사 과정을 마치고 석사 과정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고요하게 관찰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맞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가고 싶은지와도 같은 고민을 품고 길을 걷고 있었다. 길 위에서는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지며 함께 걸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어?'
'어떨 때 정말 너답고 느껴?'
'너는 뭘 좋아해?'
단순해 보이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정말 내가 어떨 때 나답고 느끼는지를 물어보는 질문들이었다. '그러게..'라고 답을 하며 길고 긴 침묵이 이어질 때도 있었고, 눈을 반짝이며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나눌 때도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반짝이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담으며 길을 걸었다. 언젠가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돌아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말이다.
분명 어제 처음 본 사람인데, 마치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처음 본 사람과 이렇게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 혹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저도 나누지 못한 고민들을 어제 처음 본 사람, 혹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까미노의 기적이었다.
까미노였기에 가능했고, 순례자였기에 가능한 질문들이자 이야기들이었다.
까미노에 걸으러 온 사람들은 각자의 질문을 품고 걷는다.
다양한 사연들이 길 위에서 펼쳐지고 함께함의 기적을 체험한다.
그저 길 위에 함께한다는 이유로 그의 인생에 잠시 초대되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국적과 성별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까미노 친구로 길을 함께 걷는다. 순례길에서는 오롯이 '나'인 상태를 마주한다. 사회 속에서 걸친 여러 가면들을 벗어던지고 그저 '나'인 상태로 순례길을 걷는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질문들을 품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주한다.
따로, 또 같이 걷는 순례길이다.
주비리로 가는 길 가운데서도 소피와 나는 함께함의 기적을 체험하며 걸을 수 있었다.
혼자 걸으러 온 길이었지만, 함께 걷는 길이었다.
걸으며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부엔 까미노- 를 건네며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신기한 순간들을 함께 걷고 있었다.
총 7시간 걸어야 하는 여정 속에서 빛과도 같은 휴식의 순간이다.
길을 걷다가 사과나 바게트를 하나 사서 수분과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중간중간에 발도 숨을 쉬어야 하기에 양말과 신발을 벗은 채로 발을 환기시켜준다.
순례자의 오후
주비리에 도착을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0분.
이제 순례자의 주 업무인 걷기를 마치고 다음 임무에 나설 차례였다.
순례자의 하루는 단순하다.
걷고, 먹고, 씻고, 잔다.
정말 인생에 필수적인 요소들만을 채우며 사는 삶이었다.
하루의 주된 일정은 걷기 뿐이다. 걷기 임무를 완수한 순례자는 잠을 잘 수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알베르게에 가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하루 묵을 곳을 정한다. 오랜 시간 동안 걸은 순례자는 장시간 함께 걸은 옷들을 다 빤다.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게 다 두 세트뿐이었다. 두 세트의 양말, 속옷 그리고 상하의. 그래서 빨래는 필수적이었다. 열심히 손빨래를 하고, 햇볕이 좋은 날에는 빨래집게로 옷들을 걸어서 시원하게 말린다.
빨래를 마친 순례자는 몸의 피로를 녹이기 위해 씻으러 간다.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후에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서서 자리가 있는 바(Bar)에 들어가 순례자식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순례자식 간식은 대부분 맥주와 또르띠야 (스페인식 오믈렛이다. 순례길에서의 최애 간식이자 아침 대용으로 많이 먹은 음식이다)이다.
단순한 일상과 루틴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단순한 행복이자, 가장 큰 행복이었다.
단순해질수록 삶이 더 행복해졌다.
주비리는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아담했지만 순례자들로 북적북적 채워진 마을이었다.
어느 바(Bar)에 가도 순례자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껴서 순례자의 오후를 만끽했다. 동석하게 된 같은 테이블에는 덴마크, 미국, 브라질, 핀란드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내가 함께하고 있었다. 국적만 다양한 게 아니라 연령대도 다양했다.
어딜 가든 까미노 막내였던 나는 자연스레 20대 막내 당첨이 되었고,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한 테이블에 함께했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기소개부터 까미노에 오게 된 이유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유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를 가진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어울려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낯선 설렘으로 다가왔다. 까미노에 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과 고민들을 가지고 굳이 몇 백 킬로를 걷겠다고 나선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국의 땅에서 말이다. 순례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상함들을 마구 뽐냈다. 신기하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이 유별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질문들이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각자의 질문들을 품고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들과 함께 위안을 얻기도 한다.
각자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는 순례길이었다.
편안했다.
까미노였기에 가능했고, 우리 모두 순례자였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며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빛을 온전히 누리며 여유롭게 순례자의 오후를 만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