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_단순한 행복을 찾아서

단순한 일상, 단순한 행복

by 시원

내일이 기대되는 기분,

단순한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기분


이 단순함이

이 일상이

감사하다.


10월 15일



Day 4 Pamplona - Puente la Reina (24.6km)


산티아고의 아침이 밝았다. 난간이 없는 2층 침대에서 자다가 행여나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잠을 설쳤다. 나의 첫 까미노 가족인 구스타보와 같은 알베르게를 썼기에, 다른 알베르게에 있었던 크리스티나, 자신의 고향집에서 잠시 머물고 온 스페인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와 함께 순례길을 시작했다.


La Famila de Santiago!

까미노 가족이었다.


IMG_1807.jpeg 새로운 독일인 친구, 코비




'혹시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 거야?'


오늘 순례길을 시작한 순례자가 길을 물었다. 우리는 친절히 조개 표시가 되어 있는 까미노 표지판을 보며 걸으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처음 길을 시작한 순례자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혼자 걷기에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우리는 같이 걷게 되었다.


'그냥 우리랑 같이 걷자!'


오늘 순례길을 시작했다던 친구는 코비라는 친구였다. 어제 팜플로나에 도착을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아침에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온 친구였고, 나랑 비슷한 연령대였다. 대학교 졸업반이었으며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있는 독일 청년이었다.


코비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질문과 고민을 안고 순례길에 나섰다. 계속 음악을 전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자신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큰 다짐을 하고 순례길을 택했다고 한다. 어쩐지 길을 걸으며 자신을 잠잠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나와 닮아 있었다. 순례길에 오기 전까지 서로가 겪었던 짧은 인생의 굴곡들과 모습들을 나누며 길을 걸었다.


코비와 나는 신기하게 '고전과 책'이라는 취미가 겹쳤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고전을 읽으며 책을 읽었기에 코비가 관심 있어하는 고전들과 독일 문학가들, 철학자들을 이야기하며 걷게 되었다. 심지어 위대한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은 거의 독일인 아닌가.


괴테, 카프카, 헤르만 헤세, 니체, 쇼펜하우어.. 등등


각자가 읽었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신곡(괴테)', '데미안(헤르만 헤세)', '파우스트(괴테)'에 대해서 신명 나게 토론을 하며 걸었다. 여러 고전 책들을 이미 섭렵하고 있었던 코비에게 신이 나서 내가 읽었던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질문들도 자연스레 피어났다.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해?'

'우리는 무얼 보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거지?'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작은 아름다움은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인생이 왜 고통의 연속이라고 생각해?'

'가장 큰 고통은 내가 나의 내면을 바라볼 때인 거 같아.'

'그래서 인생은 결국 기존의 알을 깨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아닐까?'


까미노다운, 순례길다운 질문들이었다.


IMG_1843.jpeg 페르돈 고개 (용서의 고개)


여러 이야기들과 질문들을 하다 보니 페르돈 고개에 도착을 했다. 용서의 고개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용서와 화해를 하고 오는 장소라고 했다. 언덕에 도착을 하면 뻥 - 뚫린 경치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러 들판들과 듬성듬성 나 있는 산들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용서의 언덕이었지만 바람의 언덕과도 같이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을 뚫고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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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할아버지가 한 움큼 쥐어주신 스페인 호두


'이거 스페인서만 맛볼 수 있는, 지금 아니면 못 먹는 호두야!'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스페인 호두를 맛보았다. 스페인 할아버지는 나에게 스페인 호두를 맛보라며 주섬주섬 호두를 수집하셨다. 지금 아니면 맛을 보지 못하는 호두라며 스페인어로 나에게 계속 강조를 하며 한 움큼 쥐어주었다. 우리는 길 가운데 서서 마치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먹듯 호두를 까서 입속에 쏙쏙 넣었다. 잠시 스페인 호두의 맛을 보며 파란 하늘과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몸과 마음을 쉬어갔다.


이제는 몸이 익숙해진 걸까.


20km 중반대에 나의 몸은 자연스레 반응을 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발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걷기 모드'가 활성화되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보니 어느덧 푸엔 테 레이나까지 도착했다.


스페인 할아버지와 손녀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오늘까지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일주일만 휴가를 내어서 순례길을 걷고 있었기에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스페인 할아버지와 손녀도 잠시 시간을 내어 걷는 것이었기에 자신의 고향인 팜플로나로 돌아간다고 했다.


까미노 근처에 살고 있는 스페인 사람이나 유럽 사람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까미노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까미노가 근처라니!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알베르게에 짐만 풀고 Bar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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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가족과 함께한 이틀


IMG_1932.jpeg 까미노 가족과 함께한 만찬, 타파스.


우리의 만찬은 언제나 그랬듯 타파스와 와인이었다. 이틀 밖에 안 됐지만 마치 두 달은 함께 걸은 듯한 까미노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에게 따뜻함을 선물해 준 까미노 가족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스페인 타파스와 음식을 체험해봐야 한다며 손녀처럼 나를 챙겨주시던 스페인 할아버지.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순례길을 시작할 때 늘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활기찬 웃음으로 함께 했던 크리스티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에 부엔 까미노! (스페인어로 좋은 길 되시길 이라는 의미를 가진 인사말이다)를 외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까미노에서의 첫 인연이 아름답게 맺어졌다.




새로운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있는 와중에 다시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된다.

나의 까미노 친구, 소피였다.


'소피!'


팜플로나에서 하루 쉬고 오겠다던 소피는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서 다음 목적지까지 걸었다고 한다. 따로 걷지만 또 함께 걷는 산티아고에서 우리는 다시 숙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소피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만나게 된 다른 독일인 친구인 코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에 또 셋이서 함께 걷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까미노 가족과 까미노 친구.

우연의 연속이 만든 인연에 신기해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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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964.jpeg 아름다운 푸엔 테 레이나의 다리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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