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_나의 첫 까미노 가족

각자가 걷는 길 위에서 함께 하는 것

by 시원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나

이렇게 인생이 단순해질 수 있나


단순한 인생이 - 일상이

평화로운 인생이 - 일상이

행복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그들을 까미노로 부른 이유는 뭘까?

나는 까미노가 그들을 부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까미노가 그들을 부른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을까

까미노로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10.14 (Zubiri - Pamplona)




Day 3 (10.14)

Zubiri ~ Pamplona (19.3km)


순례길의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차례대로 울리는 사람들의 알람 소리와,

부스럭부스럭 가방을 싸는 순례자들의 조용하지만 바쁜 움직임이 들린다.


순례길 하루의 시작이다.


간단히 바게트와 아침 사과를 먹고 가방을 싸며 길을 나섰다. 아담한 주비리 마을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팜플로나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제는 소피와 함께, 오늘은 혼자 길을 걸으며 침묵 속에서의 순례길을 누렸다. 조용한 아침을 울리는 소리는 나의 발걸음뿐이었다.


터벅터벅 혼자 걷는 길 위에서 평화로운 고요함이 들어섰다.


IMG_1601.jpeg 산티아고 길 위에서 발견한 반가운 한국어였다.


길을 걸으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고요함보다는 일상을 깨뜨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일상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대비가 되어 느껴진 하루였다.


내가 누리고 있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그들에게도 닿길 바라며 길을 걸었다.

평화를 빌며 말이다.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피어나고 있을 때쯤, 흥겨운 음악소리가 귀에 들렸다. 지친 발걸음을 잠시 위로하기 위해 음악 소리가 들리는 Bar에 들렸다. 기타의 선율에 어우러진 바이올린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층 더 까미노를 흥겹게 만들어주었다. 순례자들은 잠시 멈춰, 까미노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3일 차 밖에 안 됐지만 이미 익숙해진 반가운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잠시의 휴식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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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가족


Bar에서 나선 후 길을 걷는 와중 페루와 스페인에서 온 크리스티나와 구스타보와 함께 길을 걸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크리스티나는 나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은 한강 작가라고 소개해주었다. 당시에 한강 작가님은 노벨 문학상을 받기 이전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라며 한강 작가님을 아냐고 물었다.


크리스티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한국 역사와 문화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크리스티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여러 질문들을 던지며 반짝 거리는 눈동자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페인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참 신기한 인연이자 순간이었다.


구스타보는 이년 전에 사별한 아내의 꿈을 이루기 위해 까미노를 걷고 있었다. 아내의 사진을 꼭 간직하며 까미노를 걷고 있는 구스타보는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내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와 함께 걸으며 그의 마음에도 평안이 깃들길 바랐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하며 까미노를 걷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들을 신나게 나누며 걷고 있는 와중에 손녀와 함께 까미노를 걷고 있는 할아버지도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팜플로나. 우리가 오늘 가게 되는 목적지가 자신의 고향이며, 스페인 출신이기에 까미노는 매분기별로 나누어서 걷고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셨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했지만 구스타보와 크리스티나가 중간중간에 열심히 번역을 해주었다. 아마도 이때 스페인어에 귀가 트인 거 같다. 하나라도 더 알아듣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쏟아지는 스페인어를 들으며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마음은 통했다.


나의 첫 까미노 가족이 생겼다.

각자의 까미노를 품고 걷고 있는 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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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오후의 햇볕을 누리며 걷다 보니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팜플로나는 중세 나바라 왕국의 수도답게 웅장한 성벽과 성당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중간중간에 대도시를 들리게 된다.

팜플로나는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는 첫 번째 대도시였다.

아침에는 흐릿했던 하늘이 팜플로나에 도착을 하니 파란색 하늘로 색을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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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향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우리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짐을 풀고 오후 4시까지 팜플로나 광장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짐을 풀고 순례자의 오후를 잠시 만끽한 후, 함께 모여 순례자의 오후를 누렸다.


팜플로나 광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은 각자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하루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광장에 둘러앉은 젊은이들,

그 사이에 보이는 순례자들의 모습들이 도시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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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까미노 가족과 함께 먹은 저녁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모두가 다 나를 막내딸처럼 챙겨주었다.


스페인어로 소통을 하는 그들 사이에서 혹여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계속 번역을 해주는 크리스티나, 스페인의 타파스를 제대로 누려야 한다며 음식들과 음료들을 다 사주시던 할아버지, 늘 웃으며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던 구스타보까지. 진심으로부터 나온 행동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했고, 감사했다.


나의 존재만으로 환대받는 느낌이었다.

까미노에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듬뿍 부어주던 그들의 모습이 감사했다.


함께함의 즐거움과 감사

그리고 사랑을 느끼며 함께 걷는 까미노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결국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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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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