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이 되고 싶은 너와 나
감독 : 윤가은
출연 :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강민준
윤가은 감독의 2016년 작품 <우리들>을 보았다. 이 영화는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았는데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인상 깊었다. 윤가은이라는 이름을 처음 봤는데 이렇게 잘 만든 우리 영화가 있다니 하고 감탄을 했다. 그리고 차기작 <우리집>이 개봉했을 때는 극장에 가서 봤는데, <우리집>은 <우리들>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보는데 처음 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아쉬운 점들이 발견되긴 했으나 여전히 잘 만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순수하고 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본연의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악한지. 그럼에도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되지 못함으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4학년 평범한 여학생 선(최수인)은 조금은 가난한 집 아이이다. 아빠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제 때 돈을 받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면 꼭 술을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엄마는 김밥집을 하는데 그래서 어린 동생 윤을 돌보는 것은 거의 선의 몫이다. 선은 또래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 유행템, 유행어, 놀이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반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보라(이서연)라는 공부 잘하고,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학생은 여름 방학하는 날이 자신의 생일인데, 그날 청소당번이어서 선에게 대신 청소를 시키고 자기 생일 파티에 오라며 집 주소를 거짓으로 가르쳐준다. 그런 거짓말에 홀깍 속아 넘어가는 아이가 선이다.
바로 그날, 지아(설혜인)가 전학을 온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청소했던 선이 지아를 맞이했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자신을 친절하게 맞아주는 선이 고마운 지아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할머니가 교회 수련회를 가셔서 지아는 선의 집에서 숙식하며 선, 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같이 놀고, 그림을 그리고, 숙제를 하고, 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말이다. 오이 김밥을 좋아한다는 지아의 말에 선은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오이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엄마와 사이좋게 스킨십하는 모습을 본 지아는 질투가 나 심술을 부린다. 사실 지아는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와 살다가 다시 아빠와 살고, 각자 파트너가 생긴 부모 때문에 친할머니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매번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파기하는 엄마 때문에 속이 상한데, 선과 선의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선은 섣부른 위로의 말대신, 지아가 무심히 따버린 봉숭아 잎을 모아 빻아서 물을 들인다. 같은 손톱을 하게 된 선과 지아의 우정, 마음을 상징하는 대면이다.
억지로 영어학원을 다니게 된 지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선. 지아는 너와 함께 다니고 싶다며 학원비를 내주겠다고 하고, 선은 '네가 왜 내주냐'며 화를 낸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지아가 다니는 학원에 보라가 있었던 것.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윤을 놓쳤는데, 지아가 윤을 찾았다며 달려와서는 학원 친구가 찾아줬다고 데려왔는데 그 아이가 보라였던 것이다.
지아만 모르는 선과 보라의 어색한 표정,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나고 개학 당일 정식으로 인사하는 지아. 하지만 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악한지 알게 된다. 촌스럽다는 이유로,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싶어 진다. 그걸 즐긴다. 바로 4학년 아이들이 말이다. 학교폭력에 관한 시리즈물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통을 타인을 고통에 몰아넣으면서 해소하려는 악한 본성이 인간에게는 분명히 있다.
사실, 지아가 전학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집단으로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것만으로도 큰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바로 그 이유를 들먹이며 괴롭혔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아는 새로운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 아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 '보라'가 선의 얼굴을 본 순간 지아에게 어떤 말을 했겠는가.
선이 딱히 잘못한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선과 친하게 지내서는 다른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지아는 애매한 이유로 선과 거리를 두다가 결국엔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선에게 선물로 줬던 것을 빌려줬다고 얘기하고, 자신의 핸드폰을 자꾸만 빌린다고 이야기하고..
하지만 얼마 안 가 이토록 얄팍한 우정에 금이 간다. 항상 반에서 1등을 하던 보라가 지아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것. 그때부터 보라는 지아를 경멸하며 미워하며 따시킨다.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는 것을 빼앗긴 아이는 남몰래 혼자 엉엉 운다. 아이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선의 엄마는 딸을 위한답시고 보라와 지아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 선을 보낸다. 그곳에서 또 우연히 선은 보라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고, 자신에게 그렇게나 상처를 준 아이에게 선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넨다.
한 번 친구를 가져 본 아이는, 마음이 너무 착한 아이는 '보라'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쉽게 믿어 버리고, 보라와 친구가 되는 조건으로 지아의 비밀을 팔아버린다. (아.. 보라야..) 사람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며 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보라는 마찬가지로 선에게서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을 만큼만 선에게 곁을 내준다. 지아를 공격하고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선에게서 얻은 정보를 보라는 만천하에 공개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이에 선과 지아의 관계는 파국에 이른다. 보라에게 '내가 너에게 말한 걸 다른 친구에게 말하지 말라'는 선의 부탁은 공허한 울림이 될 뿐이다.
이에 지아도 만취한 아빠를 데리러 온 선과 우연히 맞닥뜨린 후 선의 아빠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소문을 낸다. 결국 둘은 육탄전까지 벌이는데..
이제는 지아, 선 모두 따돌림을 당한다. 선은 여태 그랬던 것처럼, 지아는 지난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만 피구 경기에서 자기 팀을 뽑을 때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는 지아로 바뀐다. 선은 바로 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호명되는 것일 뿐.
영화의 첫 장면에서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던 선은, 곧 금을 밟았단 이유로 경기에서 제외된다. 밟지 않았지만 밟았다고 여러 명이 우기는 것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엔딩에서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데 다만 그 주인공이 지아로 바뀌었을 뿐이다. 밟지도 않은 금을 밟았다며 내쫓는 것.
그때 선은 동생 윤과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만나면 싸우고 얻어맞으면서도 한 친구와 계속 노는 윤은 도대체 왜 그러냐는 선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놀고 싶으니까."
선도 다르지 않았다. 선은 지아와 놀고 싶다.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용기를 낸다.
"안 밟았어. 내가 똑똑히 봤어.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향형이냐, 외향형이냐, 감정형이냐, 사고형이냐에 따라서 사람을 좋아하는 정도, 사람과 사귀는 것을 얼만큼 중요하게 여기는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얼만큼의 비중을 두는지 차이가 있음을 본다. (물론 사람을 단순하게 그렇게만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 눈에 누군가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내향형에 가장 가까운 외향형이라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누구도 자신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반드시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다. 누군가 내 눈을 보아주고, 내 말을 들어주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때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가정에서 사회생활의 기초적인 것을 습득한 아이들은 곧 '또래집단'을 형성한다. 아이들에게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또래의 얼굴을 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다. 이 시절 우정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은 소중한 한 사람이 아니라, 무리 안에 소속되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준 친구를 배신하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 선은 지아에게 사랑을 받는 것 이상으로 지아를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아이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한다. 적에게 내가 가장 아꼈던 사람의 아픈 비밀을 팔아 버린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매우 둔감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주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이다. 나의 상상의 나래 속에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공인 포함)가 항상 들어가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성취를 통해 내가 동경하는 특별한 사람과 동등한 관계를 맺기를 꿈꾼다.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친구도 요즘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내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는 특정한 몇몇과 참된 우정을 나누는 것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한다. 많은 친구가 있어도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는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아이는 이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우리에겐 급우, 동료를 넘어선 친구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어떤 사람. 누군가에게는 '걔네들' 나에겐 '우리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싸운 후에도 다시 손 내밀고 싶은 그 사람만이 나와 '우리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