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은 내가 선택한 끝 모를 지옥
감독 : 맥조휘, 유위강
출연 : 양조위, 유덕화, 황추생, 증지위
이 영화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는데 잘 얻어걸려서 재밌게 본 영화 중에 하나다. (tmi - 남동생이 군 휴가 나왔을 때 같이 봤던) 그냥 양조위, 유덕화 나오니까 보자고 했던 거 같은데 너무 재밌게 잘 만들어서 보고 나서 둘이 한참이나 얘기했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도 다시 봐야지 하고 본 게 아니라, 진도명 배우 이름으로 검색하다가 무간도3에 진배우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무간도3을 봤는데 아무래도 전편을 봐야 이해가 될 것 같아서 2편을 보고, 본 김에 1편도 다시 본 것이다. 무간도2,3도 나름 괜찮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무간도1이 가장 수작인 것은 사실인듯하다. 이걸 미국의 대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라는 초대형 스타를 데리고 리메이크해서 만든 영화가 <디파티드>이고, 우리나라의 박훈정 감독이 연출한 <신세계> 역시 이 영화 무간도에 대한 오마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무간도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는 영화의 오프닝에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죽어서 가는 지옥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을 무간지옥이라고 부른다고.
진영인(양조위)은 경찰 학교에 입학했으나 중간에 차출되어 경찰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우고 조직폭력배 한침(증지위) 밑으로 들어간다. (어둠의 세계로 잠입한지는 10년이 되었으나 한침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은 3년 정도라고 한다. 이전 7년의 시간은 무간도2가 그리고 있다) 그가 경찰이 보낸 스파이라는 것은 오직 두 사람만 알고 있는데 한 사람은 이미 사고로 사망했고, 오직 황추생 한 사람만이 진영인의 신분을 보증해줄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무간도3에선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유건명(유덕화)은 한침이 경찰 내부에 심은 대여섯 명의 조직 첩자 중에 한 명이다. 똑똑하고 냉정한 성격이라 경찰내에서도 승승장구, 한침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오른다. 두 사람은 현재 자기의 조직과 보스의 눈치를 보며 살얼음판 걷듯, 위험하고 불안하게 정보를 빼내어 자신이 속해있는 원조직에 보낸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틀어지는 것이 반복되자 한침과 황추생은 자신의 조직 내부에 적의 첩자가 있음을 느끼고 그가 누구인지 찾으라는 명령을 진영인과 유건명에게 각각 전한다.
한침의 뒤를 밟다가 극장에서 유건명과 한침이 만나는 것을 보고 진영인은 유건명의 뒤를 쫓지만 갑자기 전화가 오는 바람에 스파이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유건명 역시 한침에게 내부 첩자가 모스 부호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둘의 정체가 언제 드러날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유건명은 황추생의 뒤를 밟고, 한침은 유건명에게 정보를 얻어내 역시 황추생이 있는 곳으로 조직원을 보낸다. 황추생은 진영인을 먼저 보내고 한침의 조직원과 싸우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만다. 진영인도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봉착하지만 진영인을 친형처럼 따르는 아강이 그의 정체를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해줘서 진영인도 무사히 살아남는다. 그러나 경찰과의 싸움에서 다친 아강도 곧 죽는다.
유건명은 자신의 팀으로 하여금 황추생을 쫓게 한 이유를 경찰조직에 납득시킬 수 없어 의심을 사고, 한침 밑에서 개취급 받는 일도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 조직을 배신한다. 한침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고, 유건명만 믿고 일에 착수했던 한침은 유건명이 쏜 총에 죽는다.
한침이 죽으니 진영인이 계속 조직에서 스파이 노릇을 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기에, 진영인은 유건명을 찾아와 신분을 증명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이 쓴 글자가 있는 황봉투를 유건명의 책상 위에서 발견하고 유건명이 바로 경찰 내부에 잠입했던 한침의 첩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영인이 자신의 정체를 알았다는 사실을 유건명 본인도 바로 알게 되고.
진영인은 유건명을 코너에 몰아붙이며 그가 자수할 것을 요구하지만 유건명 외에 여럿을 첩자로 심었던 한침의 또다른 스파이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진영인을 죽인다. 그리고 자신을 살렸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그를 살려둘 수 없는 유건명은 한침의 또다른 첩자도 죽여버린다.
어찌되었든 진영인의 신분은 복권되고, 순직 처리되어 안장되지만 진영인은 허무하게 죽고, 유건명은 여전히 살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진짜 경찰인 것처럼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 없는 결말이다. 그래서 여운이 남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첩보물을 매우 좋아하기도 하고, 양쪽에 심은 첩자라는 컨셉이 처음이기도 했고, 이야기의 논리가 탄탄하고 두 배우의 얼굴과 연기를 보는 맛도 좋아서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이고, 다시 봤는데도 참 재미있었다. 이런 장르가 논리가 허술하면 정말 꽝인데 극본을 잘 썼고 유건명과 진영인 두 사람의 심리도 잘 드러났고, 극의 긴장감도 적절한 연출도 잘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무간도2는 진영인과 유건명이 왜 스파이가 되었나에 대한 스토리라 1편의 프리퀄이라고 보면 되고, 무간도3는 진영인의 죽음 이후, 유건명의 삶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그래서 무간도라는 제목의 의미가 실로 무엇인지가 정확해지면서 무간도라는 하나의 시리즈가 완결된다고 보면 된다.
나는 사실 CIA같은 스파이들의 삶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스파이라는 게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서가 동경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국가에서 뽑은 엘리트 중에 엘리트가 임무를 부여 받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인다. 그러나 스파이는 본질적으로 라이어다. 일단 나는 엘리트가 아니라 거기서부터 자격미달이지만 항상 연기하면서 누군가를 속여야하는 삶을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먼저 미쳐버릴듯. 후속작을 보면 왜 이들이 스파이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데 한 사람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고, 한 사람은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해서이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어렸기 때문에 그 시작이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이상화된 정의감, 정의감과 한 쌍인 부채의식, 그리고 충동. 누군가가 부추기긴 했어도 결국은 내가 선택한 지옥이다. 들어가긴 내가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나의 힘으로 나올 수 없는 지옥.
누군가 대단한 사명감 운운하며 나를 비행기 태워도 차분히 실상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고된 일일수록 끝나지 않기에.
디파티드도 신세계도 무간도만은 못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