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콘텐츠 기업 ‘SAMG엔터테인먼트’
“티니핑 인기가 많아서 좋긴 한데,
부모님들께는 좀 죄송하죠.(웃음)”
성공에 우연은 없다
파산핑, 등골핑, 거덜핑…. SNS를 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다. 국내 애니메이션 ‘캐치티니핑’에서 나온 수식어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캐릭터 상품이 무한 증식해 부모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다.
이 캐릭터를 세상에 내놓은 인물은 김수훈 SAMG엔터테인먼트 대표다. 그는 부산의 한 대학 전기공학과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특히 3D 애니메이션에 매료됐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를 보고 받은 충격이 계기가 됐다. 그 순간 그는 순수 국내 3D 기술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 대표는 2000년 직원 6명과 함께 삼지애니메이션을 설립했다. 훗날 SAMG엔터테인먼트로 사명을 바꾼 이 회사의 이름 ‘삼지(3G)’에는 ‘글로벌 그래픽 그룹(Global Graphic Group)’이라는 뜻이 담겼다. 세계적 그래픽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였다. 2022년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사명을 변경한 이유는 명확했다. 패션잡화 업체 ‘쌈지’와의 혼동을 피하고, 해외 시장에서 통용될 영문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상장에 성공했지만, 그 길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 이후 20년 가까이 작품을 선보이며 업계에서 입지를 다졌지만, 이른바 ‘대박’이라 부를 만한 히트작은 없었다. ‘오드 패밀리’,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 ‘미니특공대’, ‘파워배틀 와치카’ 등을 통해 기술력과 제작 역량을 축적해 온 시기였다. 전환점은 2020년 3월 캐치티니핑 첫 방영과 함께 찾아왔다.
김 대표는 그보다 앞선 2017년 남아물 중심이던 사업 구조를 여아물 시장으로 확장했다. 그는 여아 콘텐츠의 충성도와 캐릭터 수명에 주목했다. 남아 콘텐츠보다 소비자 이탈이 적고, 장기적으로 브랜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는 여아물 캐릭터를 만드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별을 박은 듯한 눈망울, 풍성한 머릿결, 섬세한 표정 하나까지 아이들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해야 했다. 기술적 완성도는 기본이었다. 여기에 감성을 건드리는 서사까지 갖춰야 했다. 김 대표는 “기술보다 더 어려운 건 감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유행에 민감한 캐릭터 산업에서 장기 흥행을 위해서는 세계관 확장과 이야기 축적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캐치티니핑은 시즌1을 시작으로 시즌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관은 점차 확장됐고, 이야기는 진화했다. 우주 어딘가 이모션 왕국의 공주 ‘로미’와 마음의 요정 ‘티니핑’이 만나 펼치는 이야기는 새로운 인물과 설정이 더해지며 서사를 넓혀갔다. 기세는 TV를 넘어 극장으로 이어졌다. 2024년 8월 개봉한 극장판 ‘사랑의 하츄핑’은 국내 관객 12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 이후 12년 만이다. 유아동 콘텐츠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제작 환경의 격차 때문이다. 2024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순위를 보면 1~4위는 모두 디즈니 작품이 차지했다. 글로벌 대기업과 국내 중소 제작사의 경쟁이었다. 제작비 격차는 더욱 뚜렷하다. 디즈니의 ‘겨울왕국’ 제작비는 약 1억 5000만 달러, ‘인사이드 아웃 2’는 약 2억 달러로 알려졌다. 반면 사랑의 하츄핑 제작비는 약 40억 원 수준이었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수십 배 차이다. 자본의 규모를 넘어선 성과였다.
김 대표는 영화 흥행 요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캐치티니핑이라는 지식재산권(IP)의 힘이다. 보통 원작이 탄탄하거나 감독, 배우들이 유명한 경우 관객의 기대감이 올라간다. 이미 TV 시리즈를 통해 검증된 사랑의 하츄핑의 세계관과 캐릭터는 관객 기대를 선반영 했다. 안정적인 팬덤이 흥행의 기반이 됐다.
둘째는 타깃층 확장이다. 영화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 마음도 사로잡았다. 사랑과 우정, 성장, 화해라는 보편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 성인 관객의 공감도 끌어냈다. 실제로 관람 후기를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 부모 관객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셋째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 확산 효과다. 온라인에서 생성·유통되는 밈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 수단이다. 캐릭터 이름을 변형한 별명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출근핑’, ‘야근핑’ 같은 패러디가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회사는 이를 통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입소문이 또 하나의 홍보 채널로 기능했다.
6개 주머니로 아이를 키운다
한국 출산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정점으로 2024년 0.72명까지 8년 연속 하락했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60년 내 한국 인구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고, 2082년에는 전체 인구의 약 58%가 65세 이상 고령층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는 높은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이 지목된다.
이 같은 인구 구조 속에서도 캐치티니핑이 흥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른바 ‘식스포켓 세대’의 소비가 컸다. 식스포켓 세대는 부모와 양가 조부모, 여섯 개의 지갑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경기 침체와 돌봄 공백, 가치관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한 명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양육 방식이 확산됐고, 그 속에서 태어난 ‘귀한’ 아이들을 위해 가족 구성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최근에는 이모와 고모, 삼촌까지 가세한 ‘세븐포켓’, ‘에잇포켓’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 흐름은 완구 시장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완구 업계는 1년에 두 번 대목을 맞는다. 바로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다. 이때 나오는 매출은 캐릭터 인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202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홈플러스는 캐치티니핑 수요 증가로 여아 완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월부터 캐치티니핑 완구 물량을 전년 대비 22% 확대했다.
당시 시즌5가 방영 중이었고, ‘오로라핑’ 관련 상품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홈플러스는 1200개 이상 물량을 확보했지만 영업 시작과 동시에 전국 매장에서 당일 완판됐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역시 일부 매장에서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할 정도로 수요가 몰렸다. 품귀 현상이 이어지며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웃돈이 붙는 사례도 나왔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자녀 관련 소비는 쉽게 줄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IP 굴리는 회사
애니메이션 시장은 구조적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글로벌 OTT 플랫폼 확산, 디지털 미디어 소비 증가, 3D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 산업의 외형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3860억 달러로, 2030년까지 연평균 5.4% 성장해 58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커졌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북미에 있다. 약 40%를 점유한 미국이 산업을 이끌고, 픽사 같은 대형 스튜디오가 IP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강력한 내수 기반과 글로벌 팬덤을 토대로 시장을 형성해 왔다.
과거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제작 납품’ 구조에 가까웠다. 제작사는 방송 편성을 목표로 시리즈를 만들고, 지상파에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복잡한 제작 공정을 거쳐도 수익은 제한적이었다. 방영 이후 케이블이나 IPTV로 넘어가기까지는 ‘홀드백’ 기간이 존재했고, 유통 속도는 더뎠다. 영상 자체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콘텐츠는 있었지만, 플랫폼은 없었다.
그러다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건 글로벌 OTT 플랫폼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플랫폼은 유통의 병목을 해소했고, 콘텐츠의 수명을 연장했다. 편성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국경의 제약도 낮아졌다. 김 대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뉴미디어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미국이나 일본과 정면 승부하기에는 자본과 인력에서 격차가 크지만, 플랫폼을 활용하면 동일한 화면 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K팝과 K드라마가 유튜브와 OTT를 타고 확산됐듯, 애니메이션 역시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장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때부터 애니메이션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IP 자산’이 된다. 방송 한 시즌으로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에서 반복 소비되고, 완구와 공연으로 확장되는 원천 자산이다.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단순히 편수가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IP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넓게 굴릴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는 뜻이다.
SAMG엔터테인먼트는 흥행 IP를 활용한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해 수익을 다각화하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방영 자체에 의존하지 않고 완구·라이선스·유통으로 수익을 연결한다. 콘텐츠는 출발점일 뿐 수익의 종착지는 아니다.
실제로 회사 매출의 약 80%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완구 사업에서 발생한다. 애니메이션은 TV나 극장에서 방영된 이후 캐릭터 상품 판매로 연결된다. SAMG엔터테인먼트의 완구는 정교한 설계와 높은 완성도로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캐릭터의 성격과 세계관이 제품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완구개발팀이 애니메이션 기획 초기 단계부터 제작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시스템을 갖춘 영향이 크다. 콘텐츠와 상품이 분리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의 사업 모델로 설계됐다.
그러나 흥행과 수익성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캐치티니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상장 이후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추진한 패션과 게임 사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빅배스(Big Bath)’를 단행했다. 잠재 손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재무 부담을 털어내는 방식이다.
2024년 2분기부터 본격화된 빅배스는 점차 효과를 보였다. 회사는 비주력 사업군을 정리하고 체화재고를 처리했다. 또 상장 당시 추진했던 유통망 내재화 전략도 성과를 냈다. 기존에는 완구 생산과 유통을 외주에 맡기면서 물류 대행 수수료 등의 비용이 발생했지만, 외주에 맡기던 생산·유통 구조를 직납 체제로 전환하며 물류비용을 줄였다. 그 결과 4분기부터 매출원가율과 판관비율이 각각 약 22% 개선됐다. IP 기업이 ‘꿈’이 아니라 ‘재무’로 말하기 시작한 셈이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김 대표에게 경영 철학을 물었다. 그는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나는 이 말이 내면의 열정을 따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애니메이션 외길 인생은 고집스럽고 우직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관객의 박수를 받았지만 시작일뿐이다. 흥행을 넘어 구조를 다듬기 시작한 지금, SAMG엔터테인먼트가 그려갈 ‘한국판 디즈니 왕국’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